지난해 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40대 중반 정도로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는 지인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가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가 있다며, 암환자 등 아픈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의료기기를 고가로 대여 혹은 판매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기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본지가 2015년 보도했던 의료기기 ‘스키오(SCIO)’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됐다고 했다.

암을 비롯해 수많은 질병을 고칠 수 있고, 이 기기를 발명했다는 외국인 박사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기기 이름도, 회사 문을 닫고 도주했다는 대표 이름도 모두 같다는 제보였다.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제보를 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취재에 들어가 좀 더 자세히 묻자, 지인이 얽혀있다며 한발 물러서 취재는 중단됐다.

그 해 다른 제보자로부터 비슷한 제보를 또 받았는데, 그 역시 상황을 파악하길 원할 뿐, 좀 더 적극적으로 취재에 들어가는 걸 원치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스키오에 대한 제보 메일을 또 한 통 받았다. 20대인 제보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무래도 스키오라는 제품을 구매하려 하는 것 같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아는 선에서 해당 기기의 문제점에 대한 답신을 보내자, 그는 아버지를 만류할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전해왔다. 다행히 한 명의 피해자는 막을 수 있었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스키오는 퀀텀헬스코리아라는 곳에서 지난 2012년에 수입허가를 받고 국내 들여온 제품이다. 대표인 제이슨 리라는 사람은 이 기기를 암 등 16가지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홍보하며 전국 병의원 및 한의원 등에 판매했다.

스키오를 도입한 의료기관들도 따라 홍보하며 환자들에게 고가의 비용을 받고 치료(?)했다. 그러나 스키오는 그저 환자가 스스로 생리적 파라미터를 조절할 수 있는 바이오피드백 장치로 허가를 받았을 뿐이고, 암 등 특정질환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연구조차 한 적이 없었다.

문제는 생체리듬을 측정하는 정도의, 사용해서 해가 되진 않겠지만 치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기기로 한 번 치료를 받는데 수십만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기는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는데, 시애틀타임즈가 2005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 백혈병환자는 스키오(미국 판매명은 다름)로만 치료를 받다가 결국 사망했다. 이 기기를 도입한 미국업체 역시 암 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홍보하다가 지난 2009년 미국 FDA로부터 검사를 생략하고 무조건 자동압류(Detention without Physical Examination, DWPE) 조치를 받았다.

이런 내용을 포함한 본지의 보도 후 식약처가 해당 업체에 대해 조사했으며, 신고수입필증 등 각종 서류가 위조됐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식약처의 한 차례 방문 이후 대표와 임원들이 회사 문을 닫고 도망가 더 이상 조사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나중에 경찰로부터 전해 들었다.

또 식약처가 퀀텀헬스코리아에 6개월의 전수입업무정지, 스키오 수입업무 2개월 정지 등 각종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이미 그 처분을 받아들일 당사자들은 도망간 뒤여서 유명무실한 처분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 년에 한 두차례는 스키오에 대한 제보가 들어온다. 제보를 받고 추가 취재를 하려고 하면 제보자들은 더 이상의 협조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보복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때문이리라.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있다면 벌써 노벨상을 탔을 게 분명하다. 스키오도 마찬가지다. ‘너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나 비법’, ‘세상이 인정하지 않은 기술’ 따위는 없다.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는 기기 또는 기술이라면, 홍보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줄 것이다.

아픈 이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경제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다치게 하는 농단은 이제 제발 사라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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