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한 지붕 두 가족’, 최근 대한의사협회의 모습이다. 정기대의원총회를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듯했던 내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노환규 전 회장 불신임 정국에서는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가 대립했다면 이번엔 비상대책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노 전 회장을 배제하는 비대위가 구성될 때부터 집행부와의 갈등은 불가피했던 문제다.

하지만 최근 비대위의 행보를 보면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3월 30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구성을 의결했지만 비대위가 발족된 건 20일 뒤인 4월 19일이며 위원장은 그로부터 또 일주일 뒤인 4월 27일 선출됐다.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한 달 뒤에나 그 모습을 갖춘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대위의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비대위 구성을 의결한 임총에서는 노 전 회장을 배제하고 향후 대정부 투쟁과 협상을 진행한다고만 정했을 뿐이다.

대정부 투쟁과 협상을 위해 구성됐다는 비대위는 발족한 후에도 한참동안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내놓은 입장이 집행부가 보건복지부와 논의한 의정합의 결과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9일 이행추진단 2차 회의를 열고 5월 중순까지 원격의료 시범사업 모형을 확정하고 5월말에는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이틀 뒤인 12일 비대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5월말 원격의료 시범사업 착수 보도는 의료기관의 시범사업 참여가 아니라 기존 원격의료 시스템의 개인정보 보안성에 대한 정보 보안전문가 자문단 선정을 5월말까지 마무리 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내용을 의협 측 이행추진단 단장인 최재욱 상근부회장이 확인해 줬다고도 했다.

하지만 복지부와 의협 집행부는 비대위의 주장을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며 5월말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한 게 맞다고 했다. 의협을 대표해 복지부와 협상을 진행한 결과물을 의협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 셈이다.

문제는 비대위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반대할 경우 의정합의 결과에 포함된 나머지 과제들도 무효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원격의료 시범사업 거부’라는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열린 회의에서는 참석한 비대위원들 다수가 의정합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자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가 보인 일련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지금 비대위가 할 일은 단편적인 입장 표명으로 내부 혼란을 가중시키는 게 아닌, 어디를 향해 어떻게 걸어가겠다는 로드맵이다. 도대체 비대위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