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정수] 사업의 목표를 극대화시키되, 소요를 최소화시키는 것은 예산 운영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정부사업 등에서 입찰을 통해 기업 간 치열한 신경전을 유도하는 이유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추진되고 있는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사업(NIP)에선 이런 묘미(?)를 찾기 어렵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NIP 도입을 발표한 한국MSD의 ‘가다실’과 GSK의 ‘서바릭스’ 두 자궁경부암 백신의 입찰가격을 어떻게 결정할지 결론짓지 못하고 있다.

NIP는 일반적으로 다수 백신에 대해 동일한 입찰가격이 제시된다. 정부 사업 특성 상 한정된 예산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9년 DTaP 백신의 NIP 도입 당시 GSK의 ‘인판릭스’는 시중에서 2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었지만, 다른 경쟁 백신과 동일하게 4,000원대의 입찰가격이 적용됐다.

반면 2014년 소아 폐렴구균 백신의 NIP 추진과정에서는 도입백신인 화이자의 ‘프리베나13’과 GSK의 ‘신플로릭스’에 이례적으로 각기 다른 입찰가격이 제시됐다. 여러 상황이 고려됐겠지만, 관련업계는 혈청형(프리베나13은 13가, 신플로릭스는 10가) 차이가 주요 이유였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자궁경부암 백신 NIP에 소아 폐렴구균 백신 때와 같이 각 제품 간 다른 입찰가격이 제시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단 시장 상황은 상당히 흡사하다. 두 제품만 존재한다는 점, 두 제품 사이에 포함된 혈청형 수가 다르다는 점, 두 제품의 가격에 차이가 난다는 점, 한 제품이 시장에서 우위를 보인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러나 꼭 같은 상황이라고 단정 짓기도 애매하다. 가다실과 서바릭스의 혈청형 수는 각각 4가와 2가이지만, 이번 사업 목적인 ‘자궁경부암’만을 놓고 보면 이와 관련된 혈청형인 16, 18형은 두 백신에 모두 있다. 가다실에만 포함된 6, 11형은 허가사항에서 생식기사마귀 발병원인으로 기술돼있다.

앞서 폐렴구균 백신의 경우 19A 등 프리베나13에만 포함돼있는 3개의 혈청형은 침습성 질환, 급성 중이염, 폐렴 등 NIP의 시행 목적과 연관이 있다. 즉 NIP 목표 질환과 관련해 프리베나13은 혈청형 수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가다실도 그렇다고 보기엔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지난해 11월 국회예산정책처도 ‘2016 예산안 분석 종합’ 자료에서 ‘자궁경부암을 국가에방접종에 편입할 때 2가 백신으로 자궁경부암 예방이 가능하므로 가격이 더 낮은 2가 백신을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가다실이 8만원대, 서바릭스가 6만원대로 다소 가격차이가 있다. 때문에 동일가로 도입가격이 제시되면 MSD가 입찰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MSD가 시장주도권을 고스란히 포기할지는 의문이다. 이번 NIP에서 정부가 예산 운용의 묘미를 어떻게 이어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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