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 성장과 쇠퇴의 중요한 기로에 있다고 말하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황휘 회장은 업계, 정부, 언론 관계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꼭 '축하만' 해야 했을까.

지난 27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주최·의료기기협회 주관으로 열린 ‘제9회 의료기기의 날 기념식’에서 황휘 회장은 축사를 했다. 축하를 위한 자리에서 축사를 한 게 흠이 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날은 업계 종사자들을 비롯해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관리지침, 유통 등을 담당하는 식약처·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더구나 손명세 심평원장은 축사에서 의료기기 업계를 향한 심평원의 규제 일변도 행정을 반성한다고까지 말했다.

사실 심평원이 의료기기 산업 발전만을 위한 기관은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기존 치료재료와의 대체가능성이나 보험적용 여부, 상한금액 등을 정하는 게 심평원이다.

임상현장에선 필요한 의료기기의 시장진입을 규제하게 되는 일도 적지 않고, 그로 인해 의료계와 업계의 질타를 받은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날 손 원장은 심평원의 역할에 대해 구구절절한 변명을 하지 않고, 반성한다고 했다. 또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외국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는 현실의 변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더욱 힘을 내야 한다며, 심평원이 낮은 자세로 협력에 임하겠다고 했다.

의료기기업계가 늘 불만을 제기해 온 급여 문제에 대해, 관련 부처 수장이 개선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자연스레 다음 순서인 황휘 회장의 축사가 기대됐다. 그간 황 회장은 업계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정치적 리스크 등으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우려하면서 협회 정기총회 등을 통해 의료기기가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건강보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구매대행 업체인 간납업체를 타깃하며 제도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겠다고도 했었다.

특히 지난해 협회장 선임 당시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업계의 힘으로 끌어내리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단상에 오른 황 회장은 축사 대부분을 식약처장과 심평원장, 언론인, 기타 협회장들을 호명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데 썼다. 그리고는 정부와의 협력도 "잘 되고 있다"고 했다.

황 회장은 "정부 역시 제도개선, 규제개혁으로 산업진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국제조화를 넘어 규제수출을 통해 우수한 우리 제품의 세계 시장진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그간의 소통을 통한 규제 발굴 및 해결방안 상호 제시는 민·관 협치의 훌륭한 사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부기관의 수장이 하는 말은 공신력을 가진다. 그렇다면 이날 황 회장이 심평원장이나 식약처장에게 직접 건의하거나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는 건 없었을까?

물론 이날이 규제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손 원장의 말도 당장 어떤 규제를 풀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늘상 주장해 온 규제 개선에 대해 다시 한번 각인을 시키는 한 마디는, 앞으로의 협회의 행보에 보다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와 직접 소통하는 실무 담당자들이 있었고, 그 말을 기록으로 남길 언론도 있었기 때문이다.

황 회장이 앞서 심평원장의 축사를 들었다면 준비된 원고라도, 덮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황 회장은 주어진 축사만 읽었다. 그리고 행사는 참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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