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을 150여명의 학생들이 가득 메웠다. 그들은 서남의대 재학생들이었다.

바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의대생들에게 방학은 바쁜 학사일정을 잠시 쉬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짧지만 금쪽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이날 의협 회관에 모인 서남의대 학생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서남의대 학생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해 뜻을 모아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남의대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안그래도 부족한 기초의학교실 교수 두명이 학교를 떠나고, 임상실습을 하는 교육병원이 조만간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대로면 당장 2학기부터 전 학년에 걸쳐 모든 교육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서남의대 학생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은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본과 1학년을 시작한 2013년도부터 이미 부실의대로 지정돼 정상화 문제가 논의됐던 것으로 안다. 기초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진이 부족해 과목의 모든 세부 분야를 한 명의 교수가 가르치고, 일부 과목은 전공자가 아닌 교수가 강의를 맡는 것은 예사였다고 들었다. 의학도서관이 없어서 필요한 의학 서적을 자비로 구입해야만 했고, 의학 논문을 찾으려면 다른 학교 친구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는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 서남의대의 상황은 너무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 졸업을 목전에 앞둔 필자가 인턴기자의 신분으로 마주한 그들의 상황은, 아직도 변한 것이 없었다. 폐교와 정상화라는 양 극단의 선택지를 두고 탁상공론이 오가는 동안 정작 중요한 학생들의 교육권은 내팽개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작년 명지병원이 새롭게 교육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품었으나, 재단의 부족한 자금력 문제로 인해 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당사자인 서남의대 학생들은 어떤 심경일까.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중복응답설문조사 결과, 90%가 구 재단이 제시한 정상화 방안을 지지했다. 다시 말해 서남의대를 폐과하고 다른 의대에 편입하는 것을 현 상태에서 최선의 대안으로 지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학생들의 뜻대로 문제가 간단히 풀릴 것인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미 대학 소재 지역에서는 폐교를 반대한다는 성명이 나왔고 예수병원과 명지병원도 각각 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해 학생들은 오는 8월 24일 교육부 사분위 회의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이다.

만일 학생들의 바람대로 서남의대가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가 더 불투명하다. 학교를 잃은 의과대학생들을 다른 어떤 학교에서 받아주게 될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이 전무하다고 알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의대 신설도 거론되고 있다. 서남의대 학생들의 앞날이 정치논리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의사양성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도 없이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의대를 설립했던 정부, 여건이 되지 않으면서도 의대부속병원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무리한 욕심을 부렸던 병원과 구 재단, 그리고 지역상권을 위해 아직까지도 부실의대의 폐교를 반대하고 있는 지역사회. 이들이 위한 것이 적어도 서남의대 학생들이 품었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날 시위에는 병원실습을 앞둔 본과 학생들이 많았지만, 나이 어린 예과학생들도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뙤약볕 아래, “무용지물 임시이사회 즉시 물러나라!” “참을 만큼 참았다! 더 이상 미루지 말라!” 같은 무거운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있음에도 주변 친구들과 장난스런 눈길을 주고받기를 멈추지 않던 어린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한때 품었을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함께 꿈꾸어보았다. 서남의대 학생들이 부실의대 학생이라는 오명을 벗고 든든한 의사 동료가 되어 만나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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