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합의문 둘러싼 내부 반발에 “침착해지자” 목소리 나와
박종훈 고대안암병원장 “후유증 크겠지만 전면 부정 시 협상력도 잃어”
한정호 교수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부추기진 말아야”

‘전공의 패싱’ 논란을 낳은 대한의사협회와 정부·여당 간 합의를 두고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 사이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의사비상대책위원회는 병원 복귀와 의대생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응시를 결정했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전공의들이 모여 회의하던 서울시의사회관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 5일 밤 11시 50분쯤 한 의대 교수가 회의장에 들어와 무작정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자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한 전공의와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전공의는 교수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의료계 내에는 여전히 강경한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의사를 대표하는 법정단체인 의협이 정부·여당과 합의한 만큼 이를 되돌리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많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이 때문에 ‘명분이 없다’며 단체행동을 유보하고 병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현 상황에서 파업과 국시 거부 등 단체행동을 이어가면 전공의와 의대생들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장은 지난 4일 청년의사 유튜브 방송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 출연해 의정 합의문에 대해 “괜찮은 합의문”이라며 “코로나19가 안정화되려면 꽤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내년까지는 넘어갈 것이다. 그동안 의협은 나름의 전략을 충분히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번 합의문만 보면 정부의 완패”라고도 했다.

박 원장은 “내년 대선 정국에 들어가면 여당이 이 문제를 다시 끌고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파업으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정책에 문제가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는 효과도 있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이어 “(의약분업 사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의사들 사이에는 ‘정부는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그렇다 보니 이 정도 문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거셀 것”이라며 “후유증이 굉장히 클 것이다. 의협 집행부가 전면 부정당하면 앞으로 협상력도 잃게 된다. 이런 합의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박 원장은 “의료계 리더십이 형편없어서 의대생과 전공의가 전면에 나서고 선배 의사들이 뒤로 빠져 있다”며 “전공의와 의대생은 배우는 사람들인데 왜 그들의 전쟁으로 만드는가. 의협이 지금까지 뭐하고 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다시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전면에 서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을 이어가도록 부추기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SNS 등을 통해 “2주만 더 버텨 달라”는 등의 글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6일 본지와 통화에서 “의협이 정부‧여당과 합의하고 대전협도 병원으로 복귀하기로 한 상황에서 의사 국시 거부를 고수하면 의대생들만 피해를 입는다”며 “본인들은 나서지 않으면서 옆에서 의대생들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지금 본과 4학년이 의사 국시를 보지 않으면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같은 사람만 의사가 된다. 그리고 정작 내년에 정부와 투쟁할 의사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자살폭탄테러는 적에게 피해라도 입히지만, 혼자 방에서 자해를 하는 것은 같은 편에게 도덕적 타격만 줄 뿐”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면 상대방을 기뻐하겠지만 내부는 분열하고 무너질 뿐이다. 분노를 이성으로 정제해 미래로 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