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품귀 현상과 같은 문제를 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활성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나왔을까.

지난 4일 타이레놀 품귀 현상 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동일성분 의약품에 대한 대국민 인식전환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내용의 약사 출신의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의 보도자료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최근 방역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후에 발열, 오한 등 이상반응이 나타날 경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면 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논란은 방역당국이 타이레놀이란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타이레놀을 찾는 소비자가 급증했고 일부 약국에서는 타이레놀이 모두 동나는 등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자 서 의원은 “성분이 아닌 특정 회사의 제품명을 언급함에 따라 제품이 부족하게 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열진통제가 필요한 국민들이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의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타이레놀 몰아주기’란 지적이 일었고. 기자가 만난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 또한 “국내 산업 육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후 방역당국은 이러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국내 제약사들의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 목록을 공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 의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서 의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처방과 조제에 이르기까지 제품명이 아닌 성분 중심으로 국민의 인식이 전환돼 국민보건의 잠재적 위협을 없애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인식전환 캠페인 등 정부, 관계기관, 관련 직능단체 등이 함께 대국민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이상반응을 겪는 국민뿐만 아니라 특정 성분의 의약품이 필요한 환자가 해당 성분의 의약품을 적시에 구매할 수 있는 총체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타이레놀 품귀 현상 문제를 성분명 처방 도입 문제로 치환했다.

그렇다면 정말 서 의원의 주장처럼, ‘특정 제품명을 알 수 있도록 처방, 홍보하는 것 자체가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이고, ‘처방과 조제에 이르기까지 제품명이 아닌 성분 중심으로 국민의 인식이 전환되면 국민보건의 잠재적 위협을 없애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까.

우선 타이레놀과 같은 일반의약품을 구매하는 것과 전문의약품을 처방받는 것을 동일시하는 점부터가 맞지 않다. 일반의약품을 사러 약국에 가는 국민들 중 대개 특정 성분을 콕 찝어 구매하는 경우는 타이레놀, 판콜A, 신신파스, 우루사, 아로나민골드, 박카스 등 극히 일부 유명 브랜드에 국한된다. 그 보다 “열이 나고 몸살 기운 있을 때 먹는 약 좀 주세요”, “어깨가 쑤시고 아픈데 파스 좀 주세요‘라는 경우가 더 많다. 약사가 복약지도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반면 전문의약품 처방은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고 난 뒤 그에 걸맞다고 판단하면서 이뤄진다. 환자들의 선택권보다 앞서 전문가의 판단이 선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의사들이 성분명 처방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하느냐를 따져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성분명 처방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나오는 반박은 (대체조제의 대상이 되는) 국산 제네릭 의약품을 신뢰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국내 제약산업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지만, 이 또한 일부 제약사에 국한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최근 불거진 임의제조 문제만 봐도 제네릭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또한 제네릭 품질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건 비단 의사들만이 아니다. 국민도 매한가지다. 더구나 최근 환자들은 한층 ‘똑똑’해졌다. 의사들에게 (제품명을 거론하며) 특정 의약품을 요구하는 일도 적잖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간과한 채, 특정 의약품을 거론해 품절 문제가 불거졌으니, 이제 성분명으로 부르고 제도도 바꾸자고 하면 누가 납득을 할 수 있을까. 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활성화가 아무리 약계의 숙원사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더구나 현재는 팬데믹 상황이다. 득실을 따지기보다 힘을 모아야 할 때, 특정 이슈를 그것도 의료계와 약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이 시기에 꺼내든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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