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1년 전쯤, '청년의사' 사무실로 두툼한 서류뭉치가 우송되었다. 60대의 어느 환자가 보낸 것이었는데, 박 아무개라는 의사를 고발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자료들을 읽고 그 환자와 전화 통화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그 의사는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남발'하여 환자를 현혹했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부분까지 '비보험'이라 속여 큰돈을 받아 챙겼고, 영업정지를 당하고 고소를 당하면서도 맞고소와 로비로 대응하며 '건재'한 사람이었다. 그 환자는 자신의 피해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의 사례까지 모아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어느 단체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이 입은 금전적 피해만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도 했다.

당시 과문한 나로서는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병명 자체가 생소했고, 진단 및 치료 과정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물론 없었다. 나름대로 알아본 바로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사안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르긴 해도 의협을 비롯한 곳곳에 도움을 청했을 그 환자는, '청년의사'로부터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연락은 끊어졌다. 이후 의사들만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가끔씩 그 의사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기는 했지만, 의약분업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2주 전, 일간지 사회면에 비중 있게 다뤄진 기사의 제목은 <'만성 오진' 의사 배상 판결>이었다. 환자에게 8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었고, 패소한 주인공은 앞의 박 아무개라는 의사였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든 의사들에게는 아프게 느껴지는 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

바로 며칠 전에는 인터넷 처방전 발급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민 아무개라는 의사가 라디오 생방송 중에 당한 '봉변'을 놓고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는 '히포크라테스의 배신자들'이라는 책을 내서 비윤리적인 의사들을 질타하는가 하면,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의료사고 전문의사'라는 직함을 사용하며 각종 언론 매체에서 각광받던 인물이었다. 사건의 개요는 생방송 중에 어느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다 갑자기 "그 문제의 사기꾼이 민○○이다. 방송국이 그런 사기꾼에게 법률 상담을 받게 해도 되는가? 방송국은 출연자를 제대로 골라라"라고 말하는 바람에 방송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민 아무개에 대한 글은 인터넷에 이미 '도배'되어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은 수년 전부터 있어 왔고, 일부 의사들은 '그는 의사 자격이 없다', '의사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까지 말해 왔다.

문제의 '방송사고' 이후 KBS 라디오의 인터넷 게시판은 갑자기 이용자가 늘어났는데, 민 아무개를 두둔하는 글들을 올린 '네티즌'들이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IP추적을 통해 밝혀지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해프닝은 계속되고 있다.

이건 사실 여부와 논리적 타당성 등을 모두 떠나서, 속된 말로 '망신'이다. '어느 집단이나 불량품 5%는 있기 마련'이라는 농담으로 자위해 보지만, 다른 집단에 비해 유달리 '한통속'으로 여겨지는 의사들로서는 진정한 의미의 '질 관리(quality control)'가 아쉬워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자정(自淨)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환부를 도려내는 심정으로, 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더 많은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의료계의 자정은 가혹할 정도로 강도 높게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진짜 '히포크라테스의 배신자들'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의사들뿐이다.

박재영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