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지난 19일, 규제개혁위원회는 '지식정보화 사회 구현을 위한 규제개혁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지식정보화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보고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보건복지부 소관 내용 중에 포함되어 있는 '원격의료 허용을 위하여 의료법령 정비(2001년 하반기)', '사이버병원 및 사이버약국제도 도입여부도 중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 '의사외의 보건의료인과 가정간에 발생하는 행위인 Tele-care를 의료행위로 인정' 등의 사항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 개념조차 확실치 않은 '원격의료'라는 단어의 뜻을 규제개혁위원회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의료행위에서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간과하여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다.

정보화가 과연 인류의 행복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의료진간의 정보 교류가 원활해지고 불필요한 반복검사의 관행이 사라지고 환자들이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등의 정보화는 그리 멀지 않은 시일 안에 가능해질 전망이다. 일부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의사와 환자의 만남을 '극히 제한적으로' 원격진료가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획기적인 진전이 단시일 내에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 의료행위는 비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날로그 적'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리는 행위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정부도 '위법'이라고 말하고 있고, 대부분의 의사들도 '어불성설'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와 같은 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갖고 있는 구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치한' 논란을 더욱 황당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나 않을지 두렵다.

이미 소위 '인터넷 병원'들이 무수히 난립해 있다. 사람들이 인터넷 병원에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 더 정확하게는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건강'을 빙자한 탈법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박약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번 보고에는 의사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해야 마땅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화상 진료나 전화 상담 등에 대해서도 진료비를 지급하겠다는 계획, EDI 청구 절차 개선으로 진료비 청구 및 심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계획, 전자처방전과 전자의무기록의 공식 인정 계획 등은 반가운 일이다.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의사나 환자에게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서 벌어졌던 정부의 졸속 행정을 수없이 경험한 의사들로서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칫 의사들 고유의 책임과 권한을 침해하게 되지는 않을지, 가뜩이나 위태로운 의료보험 재정을 더 나쁘게 만들지는 않을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 사기꾼들의 범법행위를 부추기지는 않을지, 정확한 진단보다는 '비방(秘方)'만을 찾는 국민들의 관행을 바꾸지 못한 채 의사와 환자 사이를 더 멀게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은 꼬리를 문다.

또한, 규제개혁위원회의 존립 근거가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있다면, 이런 이야기에 앞서 이미 수없이 지적된 바 있는 의료기관과 의사들에 대한 각종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먼저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재영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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