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아다나 도착한 순천향대부천병원 재난의료팀
전기·수도 시설 파괴로 질병 우려…의료용품 부족
김호중 교수 "점점 열악해지는 환경, 의료 지원 절실"

“재난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지진 현장이 이렇게 참혹할 수 있나 싶다. ‘매몰’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재난의료 전문가인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는 튀르키예 대지진 참사 현장을 이 한마디로 설명했다.

지난 6일 새벽 4시 튀르키예를 강타한 대지진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5일 기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사망자만 4만명 넘게 발생했다. 끔찍한 재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전 세계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구호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를 향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구조대와 긴급구호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순천향대부천병원은 지난 14일 국내 병원 중 가장 먼저 의료진으로 구성된 재난의료팀을 튀르키에 지진 피해 현장에 파견했다. 김 교수와 김세아 간호사가 재난의료팀으로 현장을 찾았으며 사단법인 ‘아시아희망나무’와 공조해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가 향한 안타키아는 대지진의 피해로 많은 건물들이 매몰됐다. 일부 생존자들은 매몰된 가족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떠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사진제공: 김호중 교수).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가 향한 안타키아는 대지진의 피해로 많은 건물들이 매몰됐다. 일부 생존자들은 매몰된 가족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떠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제공: 김호중 교수).

지난 14일 튀르키예로 입국한 순천향대부천병원 재난의료팀은 곧바로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하타이주 안타키아로 이동했다. 안타키아는 시리아 국경과 인접한 지역으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촌이 조성돼 있다. 우리나라 정부 구조대가 활동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안타키아는 시리아와 인접해있으며 매우 위험한 지역”이라며 “대지진 현장을 목격하며 ‘이게 바로 지진이구나’ 싶은 느낌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안타키아의 생존자와 구조대들은 최근 튀르키예 서쪽에 위치한 아다나, 앙카라, 이스탄불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에 대한 민심이 악화되며 약탈이 발생하는 등 치안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키아를 떠날 수 없다는 생존자들도 있다. '매몰된 가족을 두고 현장을 떠날 수 없다'고 버티는 이들을 현지에서 활동하던 목사들이 설득해 이주하도록 돕고 있다. 김 교수도 함께 생존자들을 설득했다.

김 교수는 "아다나의 이주센터를 방문했을 때 많은 사람이 울고 있는 광경을 봤다”며 “가족이 매몰돼 있기 때문에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에 현지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목사들과 함께 현지인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김호중 교수는 의료품은 물론 유아를 위한 기저귀, 여성을 위한 생리대 등 일상용품이 부족하다고 전했다(사진제공: 김호중 교수).
김호중 교수는 의료품은 물론 유아를 위한 기저귀, 여성을 위한 생리대 등 일상용품이 부족하다고 전했다(사진제공: 김호중 교수).

순천향대부천병원 재난의료팀은 한국에서 가지고 간 의료품과 현지에서 구매한 구호품을 이주민에 전달하며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진 피해를 경험한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구호품 등을 결정했다.

현지에서 의료행위를 하려면 튀르키예 정부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허가가 떨어지면 이주촌·난민촌 생존자들 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돌볼 계획이다.

의료 물품도 부족하다. 김 교수팀이 가져온 의료물품들도 현장에서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임시로 허가해 현장에서 배포되고 있다. 유아와 여성들을 위한 기저귀, 생리대 등 일상용품도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교수는 “음식이나 물은 충분하다. 아다나에서 생후 41일이 된 유아 생존자를 봤는데, 아이들을 위한 기저귀 등 아기용품과 여성들을 위한 생리대 등 생활용품이 많이 부족했다”며 “가장 큰 문제는 '거주'다. 단기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 전체가 지진으로 타격을 입으며 이주민들은 당장 '주거'의 문제에 처해 있다. 단기간 내 복구가 어려운 만큼 지낼 곳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사진제공: 김호중 교수).
도시 전체가 지진으로 타격을 입으며 이주민들은 당장 '주거'의 문제에 처해 있다. 단기간 내 복구가 어려운 만큼 지낼 곳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사진제공: 김호중 교수).

지진 발생 이후 구조대들은 매몰된 생존자를 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골든타임'인 72시간을 훌쩍 넘긴 후에도 기적처럼 구조된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엔 매몰 정도가 심각해 구조를 포기한 곳도 있다. 이제는 의료 지원과 구호에 적극 나서야 할 시기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의료 지원에 있어서는 단·장기적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장 매몰로 인한 부상치료도 중요하지만 복구 상황이 길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이나 추운 날씨로 인한 질환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특히 안타키아의 경우 전기와 상하수도 시스템이 모두 파괴돼 수질 오염 등으로 인한 질환이나 감염병 유행에 유의해야 한다.

김 교수는 “안타키아는 전기·수도가 다 망가졌기에 감염병이나 수질 오염으로 인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구조된 이들에 대한 빠른 수술적 처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열악한 보건 환경, 수인성 질환, 감염병, 추운 날씨로 인한 질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사진출처: 순천향대부천병원)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사진출처: 순천향대부천병원)

순천향대부천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들도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 의료진 파견과 구호품 전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연세의료원은 현장 상황을 파악한 후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의료진을 파견할 예정이며 경희의료원은 의료물품 지원과 파견 인력 구성을 결정했다.

김 교수는 현장에서 허가를 받은 후 의료구호 등에 나설 수 있는 만큼 현지 상황을 미리 파악한 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의료진 파견이 단기간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에서 협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우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고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지인들은 한국인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태극기를 보면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온다”며 “의료물품 지원도 좋지만 직접 와서 돕는다면 현지인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태극기를 달고 활동하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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