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대한암학회 공동기획②] 암 치료 제한하는 제도
국내 전문가들, "폐암·유방암·담도암 등 현행 표준 치료에 역행"
"암 환자의 치료 접근성 후퇴는 물론 연구 환경에도 악영향"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개발 등 정밀의료의 발전으로 암 생존율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암 치료와 진단에 있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검사의 중요성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최근 보건당국은 지난 2017년부터 시행해 온 NGS 검사의 선별급여 기준을 개정하며 환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본인부담률을 높였다. 국내 암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청년의사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국내 암 전문 다학제 단체인 대한암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개정된 선별급여 기준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과 향후 국내 암 치료 환경에 미칠 여파를 두 편에 걸쳐 정리한다.

전문가들은 표적항암제 등이 비급여인 상태에서는 NGS 검사의 비용효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를 근거로 NSG검사 분인부담률을 높인 건 문제 있다고 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전문가들은 표적항암제 등이 비급여인 상태에서는 NGS 검사의 비용효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를 근거로 NSG검사 분인부담률을 높인 건 문제 있다고 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지난해 말 개정된 NGS 선별급여로 인해 폐암을 제외하면 모든 고형암과 혈액암에서 본인부담률(5080%)이 증가했다. 표적치료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은 폐암을 제외한 암종에서는 NGS 검사가 비용효과적이지 않다는 정부의 판단에서다.

EGFR, ALK, ROS-1, NTRK, MET, RET, BRAF V600E 등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폐암 환자는 초치료부터 각각의 변이에 따른 표적항암제로 치료하는 것이 표준치료법이지만, 그 외 암 등의 환자들은 면역요법이나 전통적인 화학요법,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가 권장된다.

즉, 치료가 가능한 표적 변이가 있다면 표적치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게 공히 인정 받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이런 폐암 치료 패러다임을 의식해 폐암 환자들의 본인부담률은 늘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내 폐암 치료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청년의사와 대한암학회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의 응답자 총 200명 중 폐암을 주로 보고 있다고 답한 40명의 전문가들은 70%(28명)가 NGS 선별급여에 대해 현행 50% 본인부담률보다 더 낮춰야 한다고 답했다.

40%(16명)는 환자부담률을 30%까지 낮춰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30%(12명)은 현재의 암 산정특례 비율과 마찬가지로 환자부담률을 5%까지 낮춰야 한다고 했다.

임상 현장에서 만난 폐암 전문가들은 현 NGS 검사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치료제와 연계되지 않은 급여 환경으로 인해 NGS 검사의 비용효과성이 떨어질 뿐더러 동반진단으로 인정되지 않아 중복된 진단 검사로 쓸 데 없는 재정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현재 국내 폐암 환자들은 NGS 검사로 MET이나 RET 변이를 발견한다 해도 치료제를 급여로 사용할 수 없다.

MET억제제로 허가 받은 '타브렉타(성분명 카프마티닙)'와 '텝메코(성분명 테포티닙)', RET억제제로 허가 받은 '가브레토(성분명 프랄세티닙)'와 '레테브모(성분명 셀퍼카티닙)'가 여전히 비급여 약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약제 급여 환경으로 인해 환자들이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NGS 검사의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또한 약제 허가 시 동반진단기기도 함께 허가 받았다면, 실제 임상에서 NGS 검사로 표적 변이를 발견한다 해도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허가된 동반진단기기로 진단을 받아야 약제 급여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환자는 이중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 최적의 치료 시기를 놓칠 뿐더러 진단검사에 들어가는 건강보험재정은 재정대로 낭비되는 형국.

익명을 요구한 국내 폐암 전문가는 "환자에게서 조직은 무한정 채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현재 폐암의 경우 다빈도 변이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PCR 검사를 수행하는데, 그러다 보니 일부 환자들에선 조직이 남아 있지 않아 결국 NGS 검사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는 표적치료가 발달하고 있는 다른 암종에서도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유방암과 담도암이다.

그림1. 유럽종양학회(ESMO) 호르몬수용체 양성 전이성 유방암 암 치료 가이드라인
그림1. 유럽종양학회(ESMO) 호르몬수용체 양성 전이성 유방암 암 치료 가이드라인

HER2 양성 유방암에 이어 가장 환자 수가 많은 호르몬수용체 양성(HR+) 유방암에서도 표적항암제의 사용은 이제 표준요법으로 자리잡았다. 내분비요법과 함께 CDK4/6억제제의 병용요법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으며, PI3K억제제와 PARP억제제 개발로 인해 환자들에게서 PIK3CA, gBRCA 변이에 대한 진단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그림1).

또한 최근에 개발된 AKT억제제와 경구용 SERD(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는 ERS1, PIK3CA, AKT1, PTEN 변이 등의 진단을 전제로 치료가 이뤄지고 있어 이 모든 유전자 변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NGS 검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그림1).

담도암도 마찬가지다. 수술이 불가한 담도암 치료에 면역요법과 화학요법 병용이 1차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면, 2차 치료는 유전자 변이에 따른 표적치료와 면역요법이 권고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림2).

그림2. 유럽종양학회(ESMO) 담도암 치료 가이드라인
그림2. 유럽종양학회(ESMO) 담도암 치료 가이드라인

IDH1 변이가 있다면 '이보시데닙'과 같은 IDH억제제 단독요법, FGFR2 융합이 있다면 '페미가티닙(제품명 페마자이레)' 혹은 '푸티바티닙'과 같은 FGFR억제제 단독요법, BRAF 변이가 있다면 '다브라페닙(제품명 라핀나) + 트라메티닙(제품명 매큐셀)' 병용요법, MSI-H/dMMR 환자라면 '펨브롤리주맙(제품명 키트루다)' 단독요법, HER2/nue 과발현 환자라면 '트라스트주맙 + 퍼투주맙(제품명 퍼제타)' 병용요법이 권고된다.

이 모든 변이를 하나씩 다 확인할 수도 없을 뿐더러, 현재로서는 NGS 검사 말고는 진단 방법이 없는 변이들이 많아 담도암 역시 NGS 검사는 필수의 영역에 포함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NGS 검사에 대한 본인부담률의 증가는 앞서 설문 조사의 결과처럼 '환자들에게서 효과적인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정경해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정경해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정경해 교수는 이번 NGS 검사의 선별급여 개정을 두고 "시대를 역행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 상황에서 NGS는 한 번에 여러 유전자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정부가 이런 기준을 가지고 NGS 검사를 바라본다면, 추후 혈액으로만 시험하는 ctDNA가 보편화됐을 때 이를 임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NGS 선별급여 개정은 임상 현장뿐만 아니라 연구 환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KOSMOS-Ⅱ 연구(진행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체 변이 근거 맞춤 약물요법 한국 정밀의료 네트워크 연구-Ⅱ)의 지연이다.

KOSMOS-Ⅱ 연구는 대한종양내과학회와 대한항암요법연구회가 국내 암 진료 현장에 정밀의료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기획한 연구 사업이다.

NGS 검사와 분자종양보드(Molecular Tumor Board, MTB)를 통해 실용적인 국가 차원의 정밀의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목표 환자 수(1,000명)의 절반 정도 등록을 마쳤지만, 최근 들어 연구의 진행 속도는 현저히 감소한 상황이다.

해당 연구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임상에서 먼저 NGS 검사가 선행돼야 하는데, 작년 12월 환자 본인부담률의 증가로 인해 등록하는 환자의 수가 급감한 것.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

MTB 일원으로 해당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는 "KOSMOS-Ⅱ 연구의 최종 목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허초 승인 절차의 간소화"라며 "신뢰할 수 있는 분자종양보드(MTB)를 통해 권고된 치료법이라면 기존의 수개월에 걸친 허초 승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정부에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최근 개정된 NGS 선별급여로 인해 KOSMOS-Ⅱ 연구의 진행이 지연되고 있다"며 "당초 1년 내 연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이 상황이 계속 된다면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 정도는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