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료법학회 학술대회서 “이대론 안돼” 우려 쏟아져
12가지인 처벌특례배제사유…“교통사고처리법도 12가지”
모호한 필수의료…"의사가 신인가. 의료 불확실성 고려해야"

대한의료법학회는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에서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대한의료법학회는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에서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 중 하나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내놓았지만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의료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료법학회가 ‘필수의료 분야 법적 책임에 대한 재구성’을 주제로 지난 15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지하소강당에서 개최한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이같은 지적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세부 내용이 그 취지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단국대 법대 이석배 교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조항들이 “정제되지 못했다”고 했다. “꼼꼼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대표적으로 처벌 특례 적용 배제 사유를 담은 제4조 2항의 단서조항을 꼽았다. 이 조항은 보험이나 공제에 가입한 경우 의료과실이 발생해도 환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을 규정했다. 하지만 처벌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 단서조항으로 12가지를 열거했다.

정부가 마련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 중 제4조 2항

제4조(처벌의 특례) ② 의료행위등으로 제1항의 죄 중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의료인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45조의2제1항의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의료인이 「의료법」 제21조제1항 및 제3항에 따른 기록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열람 또는 사본 교부 요청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경우
2. 의료인이 「의료법」 제22조제1항에 따른 진료기록부, 조산기록부, 간호기록부, 그 밖의 진료에 관한 기록(같은 법 제23조제1항에 따른 전자의무기록을 포함하며, 추가기재·수정된 경우 추가기재·수정된 진료기록부등 및 추가기재·수정 전의 원본을 모두 포함한다. 이하 “진료기록부등”이라 한다.)을 기록·작성·보존하지 아니하거나 진료기록부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기재·수정한 경우
3. 의료인이 「의료법」 제38조의2제2항, 제6항 및 제9항을 위반하여 영상정보를 촬영·보관하지 아니하거나 변조·훼손한 경우
4. 의료인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 제4항에 따라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조정절차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
5. 「의료법」 제24조의2제1항에 따라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수술, 수혈, 전신마취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6. 진료기록과 다른 의약품이 투여되거나 용량 또는 경로가 진료기록과 다르게 투여되어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7. 환자나 수술 부위를 착오하여 다른 환자나 부위를 수술한 경우
8. 약제에 대한 필수적인 과민반응조사를 하지 아니하고 약제를 투여한 경우
9. 혈액형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혈액을 수혈한 경우
10. 유효기간이 경과하거나 변질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11. 1회용 의료기구를 재사용하여 감염시킨 경우
12.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의학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한 의료행위등을 한 경우

단국대 법대 이석배 교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처벌특례배제사유 중 중과실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단국대 법대 이석배 교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처벌특례배제사유 중 중과실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료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2항 단서에 기계적으로 “맞춘 것 같다”고 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처벌 특례 배제 사유도 12가지다.

특히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경우 ‘도로교통법’상 운전자 중과실에 해당하는 반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처벌 특례 적용 배제 사유에는 중과실로 보기 어려운 내용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제4조 2항 단서 1호부터 4호까지는 사고 후 조치와 관련되는 것으로 행위와 관련 없는 사후 조치가 특례 배제 사유로 정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1호부터 3호까지는 의료법에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고 했다. 5호에 대해서도 “수술 시작 전부터 다르게 설명한 경우라면 몰라도 수술 전 판단과 다르게 수술이 시작된 후 다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까지 처벌 특례를 배제하는 게 타당한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진료과에 따라 중과실에 해당할 수 있는 사례들은 다양하다”며 “처벌 특례 배제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동일하게 열거 방식으로 규정하는 게 합리적인 방법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너무 성의 없이 만든 12가지다. 차라리 중과실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법원이 의료의 특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법원이 의료과실을 가릴 때 의료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의사는 신이 아닌데 ‘이걸 놓쳐서 환자가 죽었으니 과실’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며 “의료영역이나 진료과마다 표준진료지침이 있다. 이를 토대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했다.

중상해와 사망의 경우 처벌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 부분도 문제로 꼽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가 원하는 목적인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 유인책이 되기는 어려워보인다”고 했다. 또한 법안 적용 대상을 의료인으로 한정한 부분과 미용성형 분야를 제외하려는 시도,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일반의료와 필수의료 등에 대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의료법학회장인 울산의대 김장한 교수는 정부가 공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초안대로 입법이 추진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료법학회장인 울산의대 김장한 교수는 정부가 공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초안대로 입법이 추진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반의료와 필수의료, 어떻게 다른가

중앙대병원 응급의학과 기동훈 교수도 일반의료와 필수의료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법안을 제정할 때 "의료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기 교수는 “필수의료로 불리는 의료행위를 했을 때 의도하지 않은 사망 또는 중상해 발행 확률이 높은 것이지 일반의료를 했을 때 그 확률이 없다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발표한 초안대로 법이 제정되면 일반의료 분야에서 “소극 진료와 해당 과 기피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법학회장인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장한 교수는 “이대로는 안 된다. 이 법(의료사고처리특례법 초안)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법무부가 제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필수의료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법적 책임 면책 범위도 좁게 설정했다”며 “제외 사유도 매우 복잡하고 경우에 따른 적용이 복잡해 실무에서 요건을 활용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필수 분야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필요하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충적 손해배상 책임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민사소송으로 결정된 손해배상액 중 공제보험 보장 금액을 초과한 부분은 공단이 배상하는 방안이다(관련 기사: 의료사고 초과 배상액 공단 연대책임 제안에 법조계 “글쎄”).

국회입법조사처 김주경 입법조사연구관도 필수의료 정의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관은 “통상 국민건강보험법상 급여인 의료는 다 필수의료라고 이해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필수의료는 그중 일부이거나 조금 다른 의미여서 혼란을 준다”며 “어떤 분야가 더 필수적이냐는 논의는 치료 시급성 외에도 질병 중증도나 복합성, 후유장애의 영구성 등을 고려해야 하고 임상적 해결 가능성, 비용효과성 등도 고려해야 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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