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젊은세대가 본 한국의료
젊은의사協 서연주 대표 “어두운 미래”
“최선 다해도 처벌 위협…소명감 사라진다”

의사들 사이에서 “한국 의료가 망해간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니다. 의료체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고난도, 고위험 환자를 많이 보는 대학병원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대학병원에 남아 환자들을 진료하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의사가 줄고 있는 상황이 한국 의료의 현실을 대변한다는 지적이다. 30년 가까이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해 온 교수나 이제 막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밟기 시작한 젊은 의사가 느끼는 위기감은 비슷했다. 청년의사는 대한정형외과학회 정홍근 이사장과 젊은의사협의체 서연주 공동대표를 각각 만나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가 바라보는 의료현실에 대해 들었다.

필수의료 분야를 전공하지 않으려는 젊은 의사들이 늘고 있다. 전공을 했더라도 그 현장에 남지 않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도 한다. 일부 과에 국한됐던 기피 현상이 바이탈(vital)을 다루는 분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예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는 의사들도 늘었다. 지난 2014년 3,341명이던 신규 전문의 수는 2023년 2,807명으로 10년 사이 534명이나 줄었다(관련 기사: 신규 전문의 수가 줄고 있다…“차라리 GP 하겠다”).

이는 예견된 일이며 의료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더 심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젊은 의사들이 바이탈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금전적 보상이 적어서만은 아니다. 바이탈 과를 선택하는 순간 형사처벌 등 각종 위험부담도 짊어지게 된다는 거부감이 크다. ‘명예’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필수의료 분야에 남는 젊은 의사들이 줄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필수의료 분야에 남는 젊은 의사들이 줄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젊은의사협의체 서연주 공동대표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4명이 사망했고 여론은 들끓었다.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고 이들 중 의사 2명과 간호사 1명은 구속됐다. 구속된 의료진 중에는 암 투병 중이던 의사도 있었다. 5년 뒤인 2022년 12월 이들은 모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과 2심도 모두 무죄였다(관련 기사: '무죄, 무죄, 무죄'…5년 만에 막 내린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의사들은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충격에 휩싸였다. 서 대표도 그랬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서 대표는 이제 막 의사면허를 취득한 새내기 의사였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신생아 4명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의료 환경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혼자 당직을 서면서 트라우마를 감내해야 했을 전공의가 마치 나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전공의와 교수를 줄줄이 묶어서 끌고 가는 정부 행태와 대한민국 현실, 그리고 그걸 조장하는 언론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보기로 했다. 바이탈 과인 내과를 선택했으며 의료 환경과 제도를 바꿔보고자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전공의 중심으로 진행된 의사 단체행동 당시 서 대표는 대전협 부회장이었다.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에도 대학병원에 남아 분과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으면서 젊은의사협의체 구성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쪽 눈을 잃는 큰 사고를 당하고도 6개월 만에 현장으로 복귀한 이유도 젊은의사협의체 출범을 늦출 수 없어서였다. 서 대표는 현재 여의도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펠로우)다.

이런 그도 바뀌지 않고 나빠지기만 하는 의료 현실에 “이제는 정말 답이 없는 게 아닐까” 싶어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세부분과 전문의 과정을 밟던 동료들이 대학병원을 떠나 미용·성형 분야로 진출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서 대표는 필수의료 현장에 ‘아직’ 남아 있는 젊은 의사들마저 떠나지 않도록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의사 수를 늘려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사라자지 않는다고 했다.

젊은의사협의체 서연주 공동대표는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젊은의사협의체 서연주 공동대표는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동료 의사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랬더니 ‘심평의학’이 좌지우지하는 의료 환경에서 내 몸 갈아 넣어 환자들을 살리고 치료해도 불가피하게 생기는 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 게 한국 의료라고 하더라. 진료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자를 지목해 형사처벌까지 끌고 가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유일할 것이다. 문제 있고 비도덕적인 의사들을 자정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부풀려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사기를 꺾는 요인이다.

바이탈과를 선택하는 의사들은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생명을 살린다는 소명 자체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지만 형사처벌 관례가 그런 사기를 다 꺾어 버렸다. 그래서 ‘그냥 위험한 일’이 돼버렸다. 바이탈과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고 바보 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대안은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이다. 그래서 미용성형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보상받으려는 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 아닌가.

- 중증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대학병원에 남으려는 젊은 의사가 줄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교수들도 관두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누가 그 자리에 가려고 하겠나. 미국 등 선진국은 희소성과 가치에 따라 고난도 고위험 환자를 치료하는 분야에 더 많은 보상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그렇지 않다. 젊은의사협의체 내에서도 “우리나라 의료, 특히 필수의료 분야는 답이 없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한국 의료는 빠르게 발전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앞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내려오는 길만 남은 것 같다.

-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리셋도 필요하다. 어느 한 부분만 고쳐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여러 해결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돼야 실타래를 풀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더 빠른 속도로 나빠질 것이다. 의대생 때도 한국의료가 붕괴되고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더 빨라져 체감할 정도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죽고 있지 않나.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안전한 사회망을 만들기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

-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의대 정원 확대다. 동시에 필수의료 분야 지원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일부 수가를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틀을 다 뜯어고치겠다는 강한 의지와 책임지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보건복지부 차원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복지부가 안을 내놓아도 기획재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 소용없다.

-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의지가 강해 보인다. 이에 반대하는 의료계에 대해서는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는 의사가 많아져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신설한다고 해서 필수과를 선택하는 의사가 늘지 않는다. 의사들이 본인 의지로 바이탈과를 선택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용성형 분야 진출 의사만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필수과는 더 망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로 적대적일 필요가 없는 문제다. 정부도 생색내기 쉬운 ‘숫자’에만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지난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대응 논리가 빈약해 보인다.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올바른 의료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쉽다. 의사는 기득권층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환자와 의사 관계도 무너진 상황에서 정치권도 의사 의견을 따라가면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당사자를 빼놓고 얘기해서는 안된다. 당사자인 의사들도 우리 얘기만 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자각할 때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책 변화나 정치적인 움직임 등 사회에 관심을 갖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또 심도 있게 연구해서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대안을 마련하고 꾸준히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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