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비의료인 유죄 판결 파기환송
의료법인 명의 쓴 비의료인 의료법 위반 기준 새로 제시
"의료법인 악용해 실제 탈법한 사정까지 모두 가려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사진 출처: 대법원 공식 유튜브 계정 실시간 중계 화면 갈무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통해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사진 출처: 대법원 공식 유튜브 계정 실시간 중계 화면 갈무리).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를 이용해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비의료인이 실제로 의료법인을 악용해 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까지 가려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의료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으로 기소된 A의료법인 이사장 B씨에게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비의료인 B씨는 지난 2006년 A의료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C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다가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원심은 모두 비의료인인 B씨가 의료법에서 규정한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위반해 의료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C병원이 A의료법인 명의지만 사실상 B씨 개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했다는 사실 외에 "의료법인을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의료법인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 공공성과 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은 의료인만 의료법인 재산을 출연하거나 임원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비의료인도 의료기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의료법인에 출연하거나 임원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따라서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은 비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재산을 출연하거나 임원 등 지위에서 주도적으로 개설·운영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위반했다고 평가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기본적인 사정 외에도 "비의료인이 외형적 형태만 갖춘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것처럼 가장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봤다.

또한 적법한 절차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상당 기간 정상적으로 운영했다면 설립 과정이 미흡하거나 운영 과정에 위법 행위가 있다는 정황만을 근거로 "의료법인이 탈법적 수단을 위해 악용됐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이유로 "비의료인이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A의료법인 이사장인 B씨 역시 C병원을 개설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법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A의료법인 개설·운영 과정에서 "의료인 재산 출연을 일부 가장하거나 (고용된) 의료인이 일정 기간 고액 급여를 받았다는 점"만으로 "탈법과 일탈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B씨가 재산을 출연한 과정이 A의료법인 설립 허가에 영향을 미쳤고 B씨나 배우자의 고액 급여 수령이 합리적 범위였는지 추가로 심리해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은 이를 위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에 따라 비의료인 B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환송해 재심리하도록 했다.

이번 상고심에서 새로 B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반우 김주성 변호사는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비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는 법리를 개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을 넘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까지 적용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법인형 사무장병원 처벌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법인은 있는데 기본 재산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 실체가 없다면 개인 사무장병원"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비의료인이 개인 재산을 출연해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그 명의로 의료기관을 운영한다면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법리를 뒤집고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 기존 법리만 따라 유죄를 선고해 온 판결이 사실상 잘못됐다는 판단"이라면서 "앞으로 관련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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