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바른시민회의·한반도선진화재단 의료개혁 머리 맛대
박종훈 교수 “우리나라 의료 리셋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이종태 교수 “기초의학 교수 부족, 의학교육 불가능”

의학계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키'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의학계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키'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의대 정원 확대만 추진할 게 아니라 '리셋' 수준으로 의료체계 전반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필수의료 문제는 의학 교육부터 건강보험에 이르기까지 큰 틀에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과 바른사회시민회의, 한반도선진화재단이 19일 ‘건강보험과 의료개혁 없는 의료인력 조절은 안된다’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의료개혁 긴급토론회에서 의학계는 정부 정책이 의대 정원 확대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과 지역의료 붕괴가 개선된다면 찬성하고 싶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지역·필수의료 문제 발생의 원인이 의사 수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은 진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박 교수는 “해마다 진료과목별 전공의를 선발하는데 전공의 정원과 지원자 수는 1대 1로 거의 비슷하다. 진료과목별 기피가 발생하는 게 핵심이지 의사 수 부족이 문제는 아니다”라며 “어느 지역에서도 20~30분 이동해 도시로 나가면 의료기관이 다 있다.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지역에 의사가 없는 이유는 환자들이 지역의료 이용을 꺼리기 때문”이라며 “지방 명문 의대들이 수두룩하다. 수도권 병원 의료진보다 의료수준이 상당히 높음에도 지난 2000년 건강보험 통합 이후 권역별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면서 지역 의료를 기피하는 문화가 정착했다. 이는 정책 실패로 인한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비만해질 대로 비만해져 곧 쓰러지기 직전에 놓인 의료를 유지하기 위해 의료인을 늘리자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의사 인력을 무작정 늘리기보다 의사인력계획을 위한 거버넌스부터 구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과학기술인재를 교육시켰지만 상위 수천 명이 의대로 오는 상황이다. 그렇게 와서 의·과학이 발전하지도 않았다. 의대생 1등부터 10등까지 모두 피부과를 택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 의대 정원 1,000명을 증원하면 상위권 대학 이공계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몰린다. 미래과학인재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5년 주기로 의료발전계획을 제시하도록 돼 있지만 한 번도 정부가 담보한 미래의료 청사진을 본 적이 없다”며 “정부가 지향하는 의료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의료 전반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의료 수요에 대한 평가에 준해 의사 수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학교육도 마찬가지다.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기반 의학교육 등 교육과정 개편부터 교육의 질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초의학 교수 등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학교육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인제의대 예방의학과 이종태 교수

인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정책연구소장은 “기초의학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국 의대 7개 기초의학 과목 교수가 지난 2018년 대비 2022년 80여명 줄었다"며 "학생 수만 늘리면 교육이 될 거라는 정부 생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상의학 전임교수들은 번 아웃 됐다. 진료와 연구, 교육 등 모든 분야에 투입되다 보니 최근 조사해보면 31~40세에서 심각한 번 아웃을 호소하고 있다”며 “특히 30대 교수들의 번 아웃이 심각하다. 그러니 대학병원을 떠난다”고 했다.

양질의 의사 양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평가기준이나 연구중심병원 지정기준은 너무 병원 쪽으로만 쏠려 있다. 기초의학이나 의대 임상실습 교육에 투자하도록 평가기준에 반영돼야 한다”며 “사회에서 필요한 의사가 왜 부족한지 묻기 전에 이런 의사 양성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고도 했다.

의사 인력 수급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독립적인 상설 자문기관으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의료계 대표가 과반 이상으로 둔 독립적인 상설 자문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며 "의사의 공급과 분포 관련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의사인력 수급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의사와 전문의, 세부전문의의 현재와 미래 부족·과잉을 예측하는 등 의사 인력 계획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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