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K의료원이 조만간 급여 중단이 있을 수 있다고 구성원들에게 선언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던 대학병원이 무너지고 있다. K의료원 상황이 그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대학병원에 해당하는 일이기에 조만간 제2, 제3의 K의료원이 나오리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것이 전공의 파업에 의한 진료 중단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일까. 만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강행 여부와 상관없이 전공의들이 복귀하고, 병원이 정상화되면 대학병원이 살아날까. 필자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병으로 죽을 운명인데 갑작스레 넘어지면서 외상이 심해진 것이고 이렇게 되면 병으로 죽는 것인지 외상으로 죽는 것인지 모를 뿐이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필자는 단군 이래 대학병원 경영이 가장 좋았던 시기에 병원장을 했다. 환자는 넘쳐나고 경영 수익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늘 뭔가 모를 불안감은 있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정의롭지 않은 시스템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대학병원은 의료 시스템의 최상위에 있으면서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1, 2차 의료 기관의 생태계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중증 질환의 입원 위주 진료를 해야 했는데, 전달체계를 깡그리 무력화시켜가면서 중증 여부에 상관없이 밀려드는 모든 환자를 수용하려고 애썼다. 1, 2차 의료기관에 대한 고민,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에 대한 배려, 이런 것은 없었다. 그것도 비급여 진료에 기반을 두는 과잉진료를 해 가면서 말이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의료를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만든 장본인이었기에 언젠가는 철퇴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시기가 언제냐고? 2028년 전후라고 봤다. 그때쯤 되면 허둥대면서 문제를 찾으려 할 것이고, 대학병원을 희생양으로 삼겠지. 그렇게 예상했다. 그렇다면 대학병원들은 사악한 집단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정책의 실패가 초래한 참담한 결과의 최종 희생양이 되는 줄 모르고 기고만장했을 뿐이다.

정부는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저수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건강보험 정책을 지난 수십 년간 손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손해가 나는 구조를 개선하려 하지 않았고, 저 보험료를 유지하기 위해 방치했다. 그리고 대학병원은 그 혼란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터득한 것일 뿐이다. 전공의들의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서 대학이 부를 축적했다고? 솔직히 전공의들의 희생 덕을 가장 많이 본 집단은 국민이 아니던가. 그동안 저렴한 보험료로 세계 최고의 의료를 누리지 않았던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필자가 현 상황이 해결돼도 대학병원은 폐허가 될 거라 예상하는 것은 바로 의대 증원 이슈에 가려진 의료 개혁안 때문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함께 의료를 개혁하겠다고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방치했던 이슈들을 과감하게 실행하겠다고 한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나 보다. 무척이나 용감하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역사를 쓰겠단다. 복날 개 때려잡듯이 단박에 하겠단다.

분명 우리 의료를 리셋(reset) 할 필요는 있으나 현 정부가 추진하듯 단박에 해결한다면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좋은 보약이 있다 치자. 한 10년에 걸쳐서 복용하면 분명 보약인데 10년 치를 한꺼번에 먹여봐라. 배 터져 죽지. 서서히 시장의 변화를 끌어내면서 해야 할 할 개혁안을 당장 시행하겠단다. 전달체계를 정상화하고, 비급여와 급여의 혼합 진료를 없애고. 대학은 전문의 중심의 중증 질환 중심 진료 기관으로 재편하겠단다. 말이야 백번 옳은데, 이러한 개혁은 점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 혁명하듯이 하면 될 일이 아니다.

개혁의 깃발 아래 병원을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 전문의 중심이 되려면 말이 쉽지, 그 인력이 어떻게 구해질까. 수도권 쏠림은 더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확보한 전문 인력의 인건비를 감당은 할 수가 있을까. 비교적 저가의 노동력이었던 전공의 인력을 몇 배의 인건비가 드는 고가의 전문 인력으로 대체해서 견딜 정도의 수가 구조였던가. 중증이든 경증이든 닥치는 대로 검사하고 치료하던 관례를 깨고 정의롭게 재편한다고? 개혁안대로 한다면 각종 검사와 진료는 매우 제한 될 것인데, 투자된 금액은 회수되지 않고 고정비는 그대로이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은 전공의 부재로 인한 진료 공백이 문제지만 이런 개혁이 의대 증원 이슈와 함께 진행되고 있으니 전공의 부재로 인한 현실적인 벽의 저 너머에는 바로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학병원의 르네상스 시대는 가고 암흑기가 언덕 너머에 기다리고 있다. 개혁은 실현 가능성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치료는 했으나 환자는 죽었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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