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학생과 전공의가 학교와 병원을 떠난 지 어언 4개월이 지났다. 사태의 발단이 된 의대 증원은 일단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이 확정 단계에 들어섰으나,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대한의사협회는 직역별 대표들을 모아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를 조직했다는데, 정작 중요한 당사자들은 참여를 안 하는 것 같다. 대학은 대학대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휴진을 하네, 마네 하면서 파행적이다.

정부는 청문회에서 장관이 밝힌 것처럼 이 사태가 그리 오래 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파업은 의료기관의 특성상 3~4주 이상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으니 강하게 밀어붙이면 길어야 한 달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공의나 학생이나 강력한 지도부가 없었으니 더욱 자신했을 것이다.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이번에도 정부가 적당한 선에서 접을 것이라 본 것 같다. 전 대한의사협회장의 입에서 ‘의사를 이길 정부는 없다’는 호언장담이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해결의 기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지 않는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들리는 말에 의하면 병원을 빠져나간 전공의 가운데 수련 과정으로의 복귀를 거부하고 실질적인 사직을 원하는 전공의는 주로 필수의료 분야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가 필수의료 분야 전공 외면 현상을 해결하려는 조치였는데, 결론은 더 악화시킨 꼴이다. 한편, 모든 전공의의 생각은 아니겠지만 일부 전공의는 스승을 중간착취자쯤으로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교수들의 집단행동을 전공의 부재로 인해 일하기 어려워지니 전공의를 불러들여서 편하게 진료하고 싶어 하는, 그저 그런 탐욕스러운 인간들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이번 조치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제대로 갈라치기 한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실한 의대 교육과 과도한 의사 양성으로 인한 문제보다는 젊은 의학도에게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사란 직업은 자기 전공 분야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라는 점이 아닐까 한다. 자존감이 없는 조직은 희망이 없다. 자존감이 낮으니 시대정신을 기대할 수 없고, 시대정신이 없으니 비전도 사명감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를 위해서, 약자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양보할 줄 아는 인재상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고민한다고 하는 이슈들, 그러니까 중증 필수 분야 전공자의 부족, 지방 의료 인력의 부족은 사명감이 없다면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이슈가 아닐까. 의사를 많이 배출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인데 이렇게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혼란이 야기됐다면 이제는 전면에 섰던 사람들의 능력을 의심해 볼 만하지 않을까.

베트남전이 떠오른다. ‘별일 없어, 순식간에 제압하면 반년이면 끝날 거야. 이건 정의야’ 그렇게 참전한 전쟁에서 미국은 근 10년간 발목이 잡히고, 엄청난 재원과 미군들의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깨끗하게 철수했다. 왠지 이 상황이 네오콘(neocon)에 의해 밀어붙여진 베트남전을 떠오르게 한다. 딱히 해결점은 보이지 않고, 물러날 수도 없는 늪에 빠진 양상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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