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영구적인 실명으로까지 이어지는 희귀질환인 시신경척수염범위질환(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 이하 NMOSD). NMOSD는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염증질환으로 임상적으로 시신경염, 척수염 및 맨아래구역증후군 등이 '재발' 경과를 보이며 발현한다.

특히 NMOSD는 한 번의 재발로도 심한 신경학적 결손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 및 적극적인 재발 방지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NMOSD의 치료는 크게 재발 시 신경계기능의 회복을 돕는 급성기 치료와 근본적으로 재발을 막는 장기적인 면역억제 치료로 나뉜다. 2019년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NMOSD 재발을 막기 위해 승인된 면역억제 치료제는 없었다. 대부분 후향적 연구들을 바탕으로 '아자티오프린', '미코페놀레이트모페틸' 및 '리툭시맙'이 임상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국내에서도 허가초과 사항으로 이들 약제가 사용되고 있다.

2019년 이후에는 질환 병리에 부합하는 선택적인 표적을 갖는 약제들이 개발되면서, 현재 국내에도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 아스트라제네카)', '엔스프링(성분명 사트랄리주맙, 로슈)' 등이 도입됐다.

하지만 NMOSD 적응증을 가진 이 두 가지 약제 중 현재 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품목은 없다. 2021년 2월 식약처로부터 NMOSD 적응증을 최초로 획득한 솔리리스는 급여 신청서를 제출한 지 2년이 다 되도록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이하 약평위)조차 올라가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엔스프링이 8월 약평위를 극적으로 통과했지만 9월 말인 현재까지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은 개시도 못한 상황이다.

이 두 가지 신약의 보험급여가 계속해 미뤄지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급여기준에 대한 정부와의 협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약제 모두 적응증 상으로는 NMOSD 1차 약제로 사용될 수 있지만, 장기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 부족과 무엇보다 비싼 약제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솔리리스는 당초 '2번 이상 재발 또는 리툭시맙 투여 후 재발한 환자(3차 이상)' 치료에 급여기준 설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언급된 '아자티오프린(1차)', '미코페놀레이트모페틸(2차)', '리툭시맙(3차)'을 모두 사용하고 재발한 환자에서 솔리리스를 사용하도록 급여기준을 조정한 것이다.

이 같은 급여기준은 솔리리스의 가중평균가를 전제로 급여 신청한 엔스프링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하지만 허가초과 사항으로 사용되고 있는 미코페놀레이트모페틸, 리툭시맙과 엔스프링을 모두 보유한 로슈 측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특허도 끝난 자사의 품목이 결국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해 낸 신약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

엔스프링이 소위원회 단계에서 극적으로 급여 트랙을 바꿔 솔리리스보다 먼저 약평위를 통과했지만, 지금까지도 약가협상으로 넘어가지 못한 데에는 이 같은 속사정이 있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가 급여 절차에서 뒤로 밀려난 솔리리스의 급여기준을 엔스프링 다음(5차 이상)으로 설정코자 고려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이를 위해 최근 심평원은 전문가 자문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반대 의견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급여기준으로 정해놓은 차수는 약제 비용이 가장 저렴한 순서와 동일하다. 이는 신약을 배제하고 허가초과 약제들만 따로 봐도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된 비교 연구들에 따르면, 리툭시맙은 아자티오프린 및 미코페놀레이트모페틸보다 재발 방지 효과면에서 우수하고, 부작용의 위험성도 낮으며, 신경학적 결손의 개선 효과도 높았다.

때문에 현재 전문가들은 아쿠아포린-4 항체 양성 환자에게 아자티오프린 또는 미코페놀레이트모페틸보다 리툭시맙을 1차 재발 방지 치료 약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리툭시맙은 급여기준이 '아자티오프린 또는 미코페놀레이트모페틸 경구제에 부작용이 있거나 반응이 없는 경우'로 제한된 상황. 정부가 근거 기반의 의사결정이 아닌 재정에 치우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 받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로슈가 최근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스프링을 4차 이상 치료에 사용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에 따라 10월 중 건보공단과의 약가협상도 개시될 전망이다.

하지만 솔리리스의 급여 향방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정부가 엔스프링과 동일한 '4차 이상'으로 솔리리스 급여기준을 제시하고 아스트라제네카가 이를 받아들여 약평위를 통과한다 해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엔스프링으로 인해 약가협상 과정에서 솔리리스에 대한 약가 인하 압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연간 치료비 솔리리스 약 5억원, 엔스프링 약 2억원).

솔리리스가 NMOSD 외에도 이미 급여 등재된 다른 적응증을 가지고 있고, 또한 아스트라제네카가 투여 빈도를 개선한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로의 세대교체를 준비 중이라는 점에서 자칫 NMOSD에 대한 솔리리스의 급여를 전략상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재정 절감은 중요한 문제고, 신약의 가치 인정도 간과돼선 안된다. 하지만 실명의 위기에 놓인 희귀질환 환자들이 2년 가까이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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