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미나 교수
"K의료 주역? 수업포기 속출, 생존경쟁이었다"
"2천명 증원하면? 한국의료 과거로 후퇴 예고"

서울의대 83학번인 김미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5공 시절 도입된 졸업정원제가 의대 교육 현장에 불러온 문제를 지적했다(ⓒ청년의사).
서울의대 83학번인 김미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5공 시절 도입된 졸업정원제가 의대 교육 현장에 불러온 문제를 지적했다(ⓒ청년의사).

졸업정원제로 모든 의대의 입학정원을 30% 일시에 늘렸던 시절이 의대 정원을 2배로 증원해도 문제없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모델로 등장했다. 의대교육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오해와 편견이다. 졸업정원제란 제5공화국이 들어서자 대학의 졸업 정원은 묶어두고 입학 정원을 30% 늘려서 데모하면 졸업 못하게 하는 제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40년 전 서울의대 정원이 2배였을 때 교육받은 분들이 K 의료를 세계 정상급으로 발전시킨 주역이니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으로 교육의 질이 저하될 리 없다고 장담했다. 졸업정원제가 지난 1981년 처음 실시할 때 모든 학과에 일괄 적용했지만 1983년 8월 의학과는 교육여건을 고려해서 입학정원을 100~130% 내에서 자율조정하도록 개정한 것은 모르는 듯하다.

대통령이 꼭 집어 언급한 ‘1983년 서울의대’를 입학해서 6년 만에 졸업한 의사로서 경험담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입학동기가 260명으로 현재 서울의대 입학정원의 2배가 되었던 것이 맞다. 의예과 2년 동안 데모와 수업거부로 학사경고는 기본이었고, 입학동기 40~50명은 유급을 당해서 본과에 함께 진입하지 못했다. 본과 1학년은 매년 봄 중간고사 기간에 자살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수업량이 살인적이어서 데모는 꿈도 못 꾸었다. 매년 두 자리수가 유급을 당해도, 선배들이 그만큼 내려와 졸업할 때까지 260여명이 강의를 듣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의대에 이 숫자가 들어갈 강의실은 일제시대 지어진 강당이 유일해서 본과 2학년부터는 병원 강당에서 수업을 들었다. 계단식 강당에서 앞자리 절반까지 간신히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교수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뒷자리 학생들은 강의는 신경도 안 쓰고 딴 짓을 했다. 본과 수업은 예과와 달리 같은 학년이 한 강의실에서 하루 종일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고등학교와 달리 지정된 자리가 없어서 선착순이었다. 매일 새벽 버스 첫차를 타고 등교해서 도서관 문 열기까지 줄 서서 자리잡고, 강의실 자리까지 잡아야 그날 수업을 제대로 들었다.

수업 포기자가 속출했다. 학생숫자 대비 교육 용량이 부족해서 못 따라오는 학생들이 도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부학을 비롯한 모든 실습은 조별로 이루어졌는데 실습조 당 1~2명만 실습을 하고, 나머지는 항상 참관 또는 방관을 했다. 의사면허시험도 사법고시처럼 자발적으로 준비해서 응시했던 당시 서울의대생들은 합격률이 낮은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잘 가르치기 보다 떨어질 학생은 졸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 의대의 합격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울산의대 교수가 되어 강의할 때 40명 학생들 모두 수업에 집중해서 질의 응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울산의대는 1993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해서 2006년까지 11차례 합격률 100%의 신화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4년 내내 나를 괴롭힌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여자화장실이 너무도 부족했다. 쉬는 시간 10분도 지키지 않고 연속되는 강의 사이에 화장실에 가려면 3층 강의실에서 1층까지 뛰어갔다 와야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동기들은 쉬는 시간에 달리기하던 나를 기억한다. 점심식사도 전쟁이었다. 한 끼에 400원이던 구내식당 배식줄은 매일같이 식당을 벗어나 도서관 앞까지 이어졌다. 연건동 캠퍼스 내 기숙사는 우선배정 조건을 모두 충족해도 특별한 연줄이 있어야 입주할 수 있었다. 개교 이래 학생 전원에게 2인 1실을 제공해서 먹고 사는 걱정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숙사는 울산의대 경쟁력을 높이는 1등 공신이다. 정원이 120명이 되면 지금 기숙사 건물 2동이 더 필요한데 건축비에 앞서 캠퍼스 안에 지을 땅이 없다.

입학동기와 졸업동기에 1년이라도 동급생이었던 친구들까지 합치면 동기가 몇 명인지 알 수 없다. 이중 많은 수가 유급을 거듭하다가 제적당하거나 다시 복학해서 십수 년 걸려서 졸업을 했다. 우리 동기들은 인턴, 전공의, 임상강사, 교수에 임용되는 과정이나 석박사 대학원 입학과 학위 취득할 때마다 언제나 역대급 경쟁을 하고, 기약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그 중 일부는 역경을 딛고 K 의료의 주역이 된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평생 겪을 피말리는 경쟁을 피해 미국, 캐나다로 가서 수련을 받고 교수가 되거나 개업한 동기가 여럿 있다. 당시는 졸업 전 상당수가 미국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했다. 이 시험의 인기가 수십 년 만에 치솟고 있다니 우리나라 의료가 과거로 후퇴하는 예고인 듯하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 모든 의대에서 1학년은 현 정원의 2~4배가 되어 40년 전 30% 증가와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자고 먹고 화장실 가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동기들과 살인적인 생존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의료선진국의 교육현장에 뜬금없는 ‘의대생으로 살아남기’ 무한도전이 펼쳐지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초과분만큼 낙오자는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의사 증원은 요원하고 학생들은 두고두고 희생양이 될 것이다.

신입생 선발이 코앞에 닥친 지금 정부가 교육 역량을 일시에 늘릴 대책도 없이 의대 교육의 질저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모한 낙관이거나 미필적 고의로 한국의 의료교육과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결국 피해는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를 말리기는커녕 부추기는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은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다. 지금 의대 입시 열풍이 뜨겁다니 누구라도 나서서 실상을 알려야 할 것 같다. 내년에 의대에 입학하는 것이 인생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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