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명예·자부심 잃고 자괴감 느끼는 현실"
"'공공복리'로 인권 제한하는 사회에 상실감 클 것"

젊은 의사 미복귀를 비난하기 전에 그 이유를 헤아려달라는 의료계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젊은 의사 미복귀를 비난하기 전에 그 이유를 헤아려달라는 의료계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정부 의대 정원 정책에 반발해 의대생과 전공의가 대학과 병원을 떠난 지 4개월이 넘었다. '왜 환자를 버리고 떠나느냐'는 비난 속에 이들이 '왜 떠날 수밖에 없는지' 헤아려 달라는 의료계 호소도 이어졌다.

지난 3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의료개혁, 국민이 말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의료계 인사들은 국민을 향해 의대생과 전공의 미복귀 결정에 대한 이해를 요청했다. 서울의대 비대위가 펴낸 '의료개혁, 국민이 말하다'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모전 수상작을 담은 책이다. 녹색소비자연대·한국소비자연맹과 함께 했다.

이날 축사에 나선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대한민국 의료와 국민 건강을 위해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부탁드린다. 젊은 의사 마음을 조금만 더 따뜻하게 헤아려 달라. 그러면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되돌아올 수 있다. 필수의료도 살아난다"고 했다.

황 회장은 "젊은 의사들이 요구하는 건 돈이 아니라 명예"라면서 "사회가 말하는 의사의 사명감 뒤에는 명예가 있다. 지금 정부는 수천억원을 들여 의사의 명예를 짓밟으면서 사명감을 외친다. 이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했다.

황 회장은 "그런데도 의사를 범죄자 집단처럼 다뤄 각종 명령을 내려 명예와 자부심으로 살아온 젊은 의사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가 미복귀를 선택한 이유를 국민이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청년의사).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가 미복귀를 선택한 이유를 국민이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청년의사).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도 "의료로 세계 최고가 되길 원하나 현실이 녹록지 않아 전공의들이 상처받고 과연 (병원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며 "이들이 왜 (사직하고 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국민 여러분도 생각해 달라"고 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을 '불법적인 파업'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라처럼 (의사 파업을) 합법화하고 노동권을 존중했다면 전공의들이 (사회가 보는 것처럼) '무책임'하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비극적인 사태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적인 회원국은 전공의가 파업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며) 이들의 자유"라면서 "(이런 나라들처럼) 전공의가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안전하다"고 했다.

안 원장은 "공공복리를 내세워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다르게 적용하면 환자와 국민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지금 이런 논리가 횡행하면서 의료계를 압박하니 전공의들의 상실감이 무척 클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희생이 크다며 정부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희생이 크다며 정부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 역시 "이번 사태로 의료계도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대생과 전공의 희생이 너무나 커 안타깝다"고 했다.

이 회장은 "지난 5개월간 정부는 지하철역, 라디오, 텔레비전 심지어 아파트 엘리베이터 광고판까지 동원해 의료인은 의료개혁을 반대하는 반개혁 세력으로 매도했다"며 "이런 현실을 보면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는 의료개혁은 누구보다도 의료인이 원한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를 적이자 굴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며 "의료계가 원하는 것은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합리적인 논의와 합리적인 의사결정 그리고 합리적인 정책 추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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