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MSD가 최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의 13개 적응증에 대한 보험급여 기준 확대를 일괄 신청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타격도 문제이지만, 이처럼 다양한 적응증에서 동시에 의학적 타당성과 임상적 수요, 비용 효과 및 재정 영향을 평가해야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

심평원은 지난 10월 암질환심의위원회 심의 결과를 통해 13개 적응증에 대한 동시 검토가 아닌 적응증별로 순차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하나의 약제가 다수의 적응증을 가지게 되는 신약 개발 트렌드는 이미 임상 현장에서 치료 패러다임마저 바꾸고 있다. 예컨대, 초기 바구니형(Basketet) 및 우산형(Umbrella) 임상시험을 통해 개발된 약들은 결국 질환이 아닌 환자 개인이 가진 유전자 특성에 따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면역항암제의 경우 이제는 거의 모든 암종, 모든 치료 단계에서 백본(backbone)으로 사용되는 기본 약제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 키트루다만 봐도 유방암, 폐암, 흑색종, 두경부암, 방광암, 신장암, 직결장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식도암, 피부암 등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하고, 진행성 단계를 넘어 최근에는 초기 환자에서의 수술전 또는 수술후 보조요법으로 쓰임새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약을 쓰는 패턴은 변하고 있는데, 약제 급여를 검토하는 정부의 시각은 바뀌지 않으니, 결국 그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온전히 환자의 몫이 된다.

정부가 계속 적응증별 검토를 고수한다면, 제약사들은 시장성 등을 감안한 전략적 선택에 따라 우선순위가 높은 적응증부터 급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환자가 적거나 시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되는 적응증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키트루다의 경우 국내 임상 현장에서 특히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등 부인암에 대한 대한 급여 니즈(needs)가 크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유방암, 폐암 등과 같이 시장이 큰 암종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MSD가 키트루다의 일괄 급여 신청을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의 전략적 선택으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정 소외 암종의 환자들이 급여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내 임상의들 요구가 있었기 때문.

실제로 가천대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영생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인암 중에서도 다른 무엇보다 자궁경부암 치료에 키트루다 급여가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사람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 HPV)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NIP)과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자궁경부암의 예방 및 조기 발견에 집중하며, 환자들이 비교적 초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진행성 단계에 발견되는 환자들은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차 치료 기회를 놓쳐도 2차에 사용 가능한 치료 옵션이 있는 다른 암종과 달리 자궁경부암은 환자들이 처음에 키트루다를 사용하지 못하면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다"며 "키트루다의 경우 완전반응(CR)이 오는 환자에서 2주기만 더 쓰고 약제를 중단할 수 있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타격도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심평원이 10월 발표한 암질심 심의 결과에 자궁경부암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MSD가 급여 신청한 13개 적응증 중 식도암, 자궁내막암, 직결정암이 우선적으로 심의 안건으로 올랐지만, 그마저도 재심의 결정이 내려졌다.

급여 신청을 진행한 제약사도, 임상의들도 어째서 이 3개 적응증이 가장 먼저 심의 안건으로 올랐는지 이유도 모르며, 심지어 동의도 못하는 상황.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심평원이 13개 적응증을 순차적으로 검토한다면, (중간에 급여기준 설정에 실패하는 적응증이 일부 나온다 하더라도) 결국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하는 매 적응증마다 제약사와 공단이 약가 조정을 수시로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뻔히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평원과 제약사 간 논의는 없다.

이번 키트루다의 일괄 급여 신청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제약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변화하는 신약 개발 트렌드와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새로운 방식의 급여 프로토콜이 이번을 계기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기대한 것이다.

키트루다는 시작에 불과하다. 키트루다와 같이 다수의 적응증을 가진 약제는 앞으로도 수없이 개발될 것이다. 정부가 기존 사고의 틀을 깨지 않는다면 '재정 건전성'과 '치료 접근성',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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