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순 기자의 '꽉찬생각'

2003년 초겨울 어느 날 미국 뉴저지주 시청 앞에 산모들이 모여들었다.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앞둔 산모들은 모두 “Save Ours Doctors(우리들의 의사를 보호하소서)”라는 조그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산모들이 이런 시위를 하게 된 것일까. 산모들의 출산을 도와줄 산부인과 의사들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산부인과는 출산에 반드시 필요한 의료분야이지만, 의료사고 발생률도 매우 높은 분야다.

당시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에서 조사한 결과, 산부인과 의사 중 76.5%가 의료사고로 인한 고소를 경험했고, 그 충격으로 유타주 산부인과 의사 중 50.5%가 산부인과 진료를 포기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보고 산부인과 의사들에 대한 소송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책임보험을 지원해 주었다. 그러나 모든 주가 동일한 수준으로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주는 의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책임 보험료의 100%를 지원했지만, 인근 뉴저지주는 예산 부족으로 70%만 지원했다.

결국 소송을 당하면 자기 돈으로 손해액의 30%를 물어줘야 하는 뉴저지주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소송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로 대거 이동해서 진료했고, 산모들도 의사를 따라 펜실베이니아주로 이동해서 출산해야 하는 불편이 생겼으므로 이러한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의료는 불확실성과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세계 각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 보호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의 의사를 보호하는 정책에 소홀해서 이를 전공하려는 의사가 부족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산모들의 출산 부담과 아동 진료 부담을 감소한다는 명분으로 진료비를 원가 이하의 일정액으로 규제하는 포괄수가제(DRG)를, 응급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응급의료 수가도 낮게 책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낮은 수가의 혜택을 받았지만, 의사들은 수십 년간 의료소송 부담 증가와 낮은 수익이라는 이중 불이익을 받게 됐다. 필수의료 의사 부족 이유로 꼽히는 대표적인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기만 하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증가하고, 병원이 부족한 지방과 농어촌 지역에서 개업하려고 할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의사 등 필수의료 분야는 물론 농어촌 지역 등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하려면 정책 실패부터 먼저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의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소신 있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를 전공할 수 있도록 의료보호 대책과 정당한 수가체계를 시행하라고 말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건강 보호와 증진이다. 의사를 늘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의미다.

현재의 의대 증원이란 정책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인지 돌아봐야 한다. 필수의료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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