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는 병원②] 전문의 중심 병원의 조건
입원전담전문의로 갖춘 “가장 잘 버티는 시스템”
“파괴적 리더십 중요”…“전공의 피교육생으로 봐야”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데는 의료계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를 추진한다는 정부를 못미더워한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 이후 ‘선심성’ 정책들을 ‘진정성 없게’ 쏟아내고 있다고 본다.

정책을 의료현장에서 실행하고 유지하는데 드는 재원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되려면 연간 인건비만 최대 1조3,000억원 이상 추가 지출해야 한다는 추계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전문의 중심 병원, 지속가능할까…인건비만 50% 증가).

전공의 사직으로 전문의 중심 병원을 경험하고 있는 수련병원들은 고민이 깊다. 전공의에 기대야만 유지되는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더 채용할 전문의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들에게 지급할 인건비도 걱정이다. 전문의 평균 임금이 전공의의 2~3배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현재 의료수익으로는 전문의 중심 병원을 감당하기 힘들다.

이 고민을 먼저 한 대학병원들이 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공의를 배정받지 못한 분원들이다. 청년의사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전공의 없는 병원’을 먼저 경험한 병원들이 말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을 정리했다.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4, 하이펙스 2024)’에서 ‘전공의 없는 병원, 정상 운영의 조건’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다.

(왼쪽부터) 김수정 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 김태완 인천사랑병원 이사장,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교수,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는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에서 '전공의 없는 병원, 정상 운영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왼쪽부터) 김수정 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 김태완 인천사랑병원 이사장,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교수,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는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에서 '전공의 없는 병원, 정상 운영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사회: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
패널: 김수정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장(혈액종양내과), 김태완 인천사랑의료재단 인천사랑병원 이사장,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정재훈 교수는 “이미 몇몇 병원들이 (전공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고 전공의 사직으로 논란이 되는 지금, 오히려 수익이나 매출이 증가한 병원이 있는 것을 봤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전공의를 어떤 인력으로 대체하느냐에 따라 비용도 달라진다. 그리고 비용 문제로 전공의 없는, 전문의 중심 병원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병원 사정에 따라 전공의 대체 인력은 전문의나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전문의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20년 개원한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없이 출발했다. 지난해에야 전공의 정원 5명을 배정받았지만 이들도 사라졌다. 처음부터 전공의가 없었던 병원이기에 타격은 없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이 전공의 없이도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입원전담전문의를 ‘제대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개원할 때부터 입원의학과를 설치했다. 입원전담전문의만 29명이다(관련 기사: 전공의 없는 시대 먼저 겪은 대학병원의 생존법).

하지만 전공의가 없는 대학병원 대부분은 PA 간호사를 활용한다. 인건비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PA 간호사 제도화를 위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사회자: 현재로서는 전공의 없는 병원 운영이 매우 어렵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용인세브란스병원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김수정: 우리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은 아니다. 현재 상태에서 가장 잘 버티는 시스템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환경이 달라지면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 의료를 이끄는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리더십, 환자들이 그런 유연성을 가졌는지, 복합적인 문제다. 결국 유연성 여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 병원은 아직 젊은 병원이니까 유연하게 대처해서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

사회자: 경영 상태는 어떤가.

김수정: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이제 개원 5년 차인 시점으로 현재 수지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는 단계이다.

사회자: 더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가.

김수정: 입원의학과 로드맵을 꾸준히 세우고 있다. 밤에만 근무하는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인 '녹터니스트(nocturnist)' 모델도 개발할 계획이다. 당직의사는 근무시간이 낮일 수도 있고 밤일 수도 있지만, 야간근무 의사인 녹터니스트는 밤에만 근무한다.

문재영: 전공의 없는 병원이 성공하려면 입원의학과가 있어야 하고 수평적 의사소통과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특히 리더십이 중요하다. 교수들이 대학병원에 남는 이유는 연봉을 적게 받더라도 후학을 가르치고 싶어서다. 그런데 전공의를 받지 못하게 되면 교수로서 자긍심을 잃을 수 있다. 이때 리더십이 다독이고 새로운 제안을 하면서 수평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부 혁신과 고민이 필요하다.

김수정: 리더십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리더십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병원 내 핵심 위원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지원이다. 의사 결정 과정이나 업무 흐름을 따라서 논의하는 단계부터 수평적 소통이다. 결론은 같아도 과정이 달라지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 방식이 달라진다. 우리 병원이 개원 후 5년 동안 다른 병원과 가장 달랐던 부분이다.

사회자: 세종충남대병원은 입원전담전문의가 몇 명이나 되는가.

문재영: 없다. 우리는 PA 간호사를 활용하고 있다. 교수 번아웃 등을 방지하기 위해 업무량을 덜어내는,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PA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중소병원들은 이미 전공의 없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사랑병원은 어떤가.

김태완: 종합병원도 불안한 시스템이긴 마찬가지다. 전문의가 부족해 2명이 번갈아 가며 당직 서고 콜 받고 그러는 과들이 있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환자가 나빠졌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이 환자를 원활하게 전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다들 버티고 있다. 어디서 둑이 하나 무너지면 시스템이 셧다운될 수 있다. 전체 종합병원의 80%가 적자다. 종합병원도 유지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문재영: 환자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가 같이 고민돼야 전공의 없는 병원도 운영될 수 있다.

사회자: 전공의 1명을 전문의 2명으로 대체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이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있다면.

정재훈: 상급종합병원에서 전공의가 담당하는 많은 업무를 전문의에게 어떻게 넘겨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전공의는 피교육자와 노동자라는 이중 신분을 가지고 있다.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가급적이면 전공의를 노동자로 인식하기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피교육자로 보는 게 중요하다.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에서는 전공의 없는, 전문의 중심병원에 대해 논의했다(ⓒ청년의사).
청년의사 주최 HiPex 2024에서는 전공의 없는, 전문의 중심병원에 대해 논의했다(ⓒ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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