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 한성존 전공의 대표 “침묵하지 말아 달라”
“1년 뒤 돌아갈 생각 없다. 언제 돌아갈 지 기약 없어”
“9.4 의정합의 무시한 복지부, 신뢰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걸 걸고 나왔다. 우리를 지켜주기보다는 함께 싸워주는 게 더 필요하다.”

대정부 투쟁을 하면서 ‘전공의 복귀’를 강조하는 선배 의사들을 향한 전공의의 쓴소리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제22차 서울시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열린 정책 심포지엄에서 “선배 의사들에게 바라는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전공의 입장에서 본 의대 증원 문제점’에 대해 발표했다.

한 위원장은 선배 의사들을 향해 침묵하지 말고 같이 싸워달라고 호소했다. 한 위원장은 “(선배 의사들의) 싸움 방식이 집단 휴진일 수도 있고 우리(의대생·전공의)에 대한 지원일 수도 있고, 많은 관심을 보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형태든 침묵하지만 말아 달라”며 “우리가 앞에 나가서 싸우고 그 옆 반 발짝 뒤에 있어도 상관없지만 옆에 서 있어만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전공의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것보다는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중점으로 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또한 “우리(의대생·전공의들)는 모든 걸 걸고 나왔다. 우리가 가진 게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전부를 걸고 나왔다”며 “행정명령, 행정처분도 어느정도 각오하고 나왔다”고 했다.

"내년에는 복귀? 언제 돌아갈지 기약 없다"

저조했던 개원의 휴진 참여율에 대해 “제일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배들은 전공의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생각을 하고, 마음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록 여의도 집회나 대한문 집회에 모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분들도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았을까 한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지난 14일 진행된 집단 휴진에는 개원의의 14.9%만 참여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의료뿐 아니라 의학교육 현장에도 큰 혼란이 예상된다는 지적에는 “정부가 이(의대 정원 증원)정책을 추진할 때 준비해 놨어야 한다”며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의예과 1학년생들이 추후 “학습권을 침해받는 상황이 오면 침묵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번 싸움이 1년보다 더 긴 장기전이 될 것으로 봤다. 한 위원장은 “1년 뒤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돌아갈 지 기약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이 사태가 해결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해결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0일 서울시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선배 의사들에게 "침묵하지 말고 함께 싸워달라"고 호소했다(학술대회 중계화면 갈무리).

“9.4 의정합의 무시한 복지부, 신뢰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에 대해서는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지난 2020년 9월 4일 체결한 의·정 합의문에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이를 “무시했다”고 했다.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근거도 없으며 지난 6일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됐다고도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보건복지부나 다른 정부 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며 “전공의들은 정부가 먼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협의에 나서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공의에게 “전문가이거나 피교육자보다는 노동자로서 책임만 강조”하는 현 수련체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서울아산병원과 전공의 계약을 체결할 당시 계약서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하며 연속 근무 후 휴게시간도 없이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전공의법'은 주 80시간과 36시간 연속근무를 허용한다. 긴 근무시간으로 전공의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한 위원장이 이날 공개한 2021년 계약서에도 시급 8,810원으로 당시 최저임금 8,720원보다 90원 많다.

한 위원장은 “전공의들이 과중한 업무를 적은 임금을 받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의료이익 적자는 증가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의 인건비 등으로 1조원에서 5조원까지 든다는 추계들이 나오는데 정부는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위원장은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대정부 7대 요구안에 담긴 내용에 대한 중요도를 조사한 결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주장은 후순위였다”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백지화하라는 것과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게 전공의들의 주된 목소리”라고 했다.

그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과도한 배상과 의료진에 대한 보호가 없으니 젊은 의사들은 본인을 보호할 수 없는 의료 환경에 몸을 맡기기 무서워한다”며 “전문가로서 우리가 선택한 전공에 대해 전문성을 갖춰 미래 의료 전문가로 성장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의료를 가장 잘 들여다보고 있는 건 족쇄가 채워져서 의료와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고 자세히 바라보는 우리 의사들이지, 멀리 떨어져 팔짱 끼고 위협적인 태도로 대하는 정부가 아니다”라며 “의료 정책을 만들거나 개혁을 하려면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비대위원장은 의료를 가장 잘 아는 건 의료에 족쇄가 채워진 의사들이라며 정부에 현장 전문가 의견을 들어달라고 했다(사진출처: 한성존 비대위원장 발표 자료).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비대위원장은 의료를 가장 잘 아는 건 의료에 족쇄가 채워진 의사들이라며 정부에 현장 전문가 의견을 들어달라고 했다(사진출처: 한성존 비대위원장 발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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