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보기에도 억세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와 환자의 어깨를 누른다. 동시에 팔과 다리를 부여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결박한다. 남은 한 사람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리스턴이다. 그는 키가 190cm나 되는 거구로 카트에서 칼을 집어 들면서 청중에게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외친다. "신사 여러분, 시간을 재세요(Time Me, Gentlemen)!"리스턴은 지혈대로 꽁꽁 묶은 병든 다리를 잡고 무릎 아래서 칼질을 시작한다. 칼을 놓았다 다시 잡는 몇 초도 아끼려고 칼을 쓰지 않을 때는 마치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처럼 피 묻은 칼을 입
UCL에 입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 런던으로 간 리스터는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8세 많은 에드워드 팔머라는 사람과 함께 살았다. 팔머 역시 퀘이커교도였고 서젼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1794~1847)의 조수였다. 로버트 리스턴,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에든버러 의대를 나왔고, 19세기 초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서젼이 된 인물이다. 리스턴의 명성은 엄청나게 짧은 수술시간에서 얻었다. 그것이 무슨 특기가 되느냐고 되묻겠지만 아직 수술 마취를 하지 않던 시절에는 서젼의 빠른 손놀림은 환자들에게 엄
“과학 방역이 아니라 ‘침대 방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의료 현장에서 나온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 온 ‘과학 방역’을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에 빗대어 그 실체가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때부터 전문가들은 재유행을 예고했다. 그리고 재유행이 시작됐다. 두 달 가량 대응체계를 정비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재유행이 시작된 지금, 현장은 더 혼란스럽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다시 코로나19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의 노령화지수가 152.0을 기록했다. 이는 14세 이하 유소년 100명 당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가 152명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들여다볼 부분은 노인 인구의 건강 상태다. 건강한 노인 인구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노인 인구에 대한 부양 부담은 천양지차다. 대표적인 노인 질환 ‘골다공증’을 진료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제1 과제는 바로 노인 ‘부양 부담’의 쓰나미를 야기할 수 있는 골다공증 골절을 막아내는 것이다.골다공증은 고령 인구에서 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연령 관련
지난 2020년 1월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인류는 백신과 치료제로 반격을 준비했다. 변이를 거듭하며 나타난 오미크론은 인후두부 감염으로 전염력은 강하지만 치명률은 낮았다. 이에 정부는 정면 돌파로 코로나19 대응책을 변경했다. 코로나19가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하며 거리 두기 완화와 실외 마스크 착용도 해제했다. 짧지만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자영업자도 오랜 불황을 마감하는 듯 기지개를 켰다.아뿔싸. 코로나19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더위가 시작
죠셉 리스터는 1827년 런던 동쪽의 웨스트햄( Upton House, West Ham, Essex)에서 조셉 잭슨 리스터(Joseph Jackson Lister; 1786~1869)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리스터는 대를 이어 와인을 사고파는 일을 했고 집은 부유했다. 하지만 여느 부자집들과 달리 집안 분위기는 검소하고 엄격했다. 독실한 퀘이커(Quaker; 종교친우회) 교도였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들은 여가 시간에 운동이나 연극 구경을 오락거리로 삼았다면 이 엄격한 퀘이커교도 집안의 가장은 공부나 과학 연구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매우 공격적인 진행 양상을 보이며, 재발 역시 잦은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성인 환자의 5년 생존율이 35.5%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다.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재발의 강력한 예측 인자인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MRD)을 치료하는 것이다. 미세잔존질환은 환자의 재발 및 사망 위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NCCN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가이드라인에서도 완전관해 도달 후 미세잔존
지난 7일 오후 회진 준비를 하던 중 메시지를 받았다. ‘흉부외과의사 연봉이 의사 중 최고, 평균 4억7,0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의 첫머리부터 이해 안되는 문구였다. 장난하나? 흉부외과 의사가 번아웃 직전이고 기피과인데다 박봉에 시달리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기사를 찬찬히 보았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기사였다. 흉부외과 의사가 전체 의사 중에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그 금액이 4억7,000만원이라고 기사는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오후 회진을 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 교수에게 “고등학교 때 성적이
초고령사회가 이제 3년 앞으로 다가왔다. 국내 노인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75세 이상의 후기고령 노인이 빠르게 증가해 2040년에는 전체 노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75세를 넘기게 된다.노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질병의 개수가 증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노인이 건강 문제와 함께 돌봄이 필요하다. 이미 노인 대부분이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11%가 보청기가 필요하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다 해내기 어려운 노인도 12%에 달한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의료기관 이용 어려움으로 이어진다.노인 중 연
1867년에 에든버러의 외과-산과의사인 제임스 심슨(Sir James Young Simpson, 1st Baronet; 1811~1870)은 영국내의 병원에 입원하여 ‘팔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 2,000여명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300 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을 들여다보니 환자들의 사망률은 41%였고 주된 원인은 바로 감염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병원 밖에서 절단 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사망률이 11%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200명의 조사 결과)! 병원 박에서 수술을 받으면 사망률이 4
모든 수술이 죽음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어떤 환자들은 감염 없이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운의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요행에 가까웠다. 요행만 믿고 수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술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일부 환자의 수술 자리에서는 ‘크림’ 같은 노란 고름이 생기기도 했다. 이 역시 좋은 징조였다. 고름은 있어도 환자가 나빠지지 않았다. 비교적 잘 나았다. 의사들은 이 고름을 ‘좋은 고름’이라 불러 반겼다.세균, 세균을 공격한 백혈구, 혈액, 단백질 성분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고름인데, 의사들은 왜 이 고름을 반겼을까
나는 요오드팅크라는 이름을 초등학교 시간에 처음 들어보았다. 가축이 새끼를 낳으면 탯줄을 자르고 그 자리에 발라주는 소독약으로 기억한다. 이름이 특이해 기억에 오래 남은 것 같다. 하지만 가축이 새끼를 낳는 일은 본 적이 없어 요오드팅크를 볼 기회는 없었다(아쉽게도 지금까지 요오드팅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때 ‘빨간약’과 요오드팅크가 어떻게 다른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요오드 팅크는 1839년에 처음으로 소독제로 쓴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특히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부상병들의 상처 소독에 널리 썼다.
‘고름 짜기’는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종기를 눌러 속에 들어있는 고름을 밖으로 빼내는 방법이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아프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관건은 딱 한 번의 힘으로 모든 고름이 분출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고통도 덜하다. 아주 어릴 때는 아프다고 발버둥을 치고 목이 쉬도록 울어 댔지만 좀 크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한번은 종아리 아주 깊은 곳에 종기가 났는데, 나는 베개를 잡고 이를 악물었고, 어머니도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고름을 뺀 적도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악성 종기의 마지막 기억이
리스터는 누굴까? 한마디로 말하면 외과 의사들의 수술에 ‘소독법’을 도입한 사람이다. 의사들의 손을, 수술 기구, 수술 부위를 소독한 후 수술을 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은 그 일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150년 전만 해도 소독을 하고 수술하는 의사는 없었다. 때문에 의사들이 칼을 댄 자리에는 감염이 생기고 환자는 패혈증으로 죽는 일이 허다했다. 아무리 외과의사가 정성을 다해 수술을 했다 해도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수술은 ‘러시안 룰렛’ 게임 같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이런 위험한 외과 수술을, 지금처럼 안전한 수술로
전세계를 고통에 빠뜨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변화와 혁신을 불러왔다. 특히 바이오헬스산업은 펜데믹 이후 2020년 기준 전년대비 54% 수출 증가를 기록하는 등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세를 보였던 코로나19 진단검사 관련 품목 등 관련 분야에서 기존과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산업 전반에 걸쳐 다소의 조정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선 바이오헬스가 저성장 추세
지난 2008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가 있다. 해외여행을 간 자녀가 부모를 외국 공항에 버리고 귀국한 사건이다. 이는 21세기 ‘신(新) 고려장’으로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시 문제의 원인이 ‘고령화’임을 파악한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웠다.장기요양보험제도를 마련해 고령자 돌봄 기능의 요양원 모델을 만들었고, 요양보호사제도를 도입해 간병 모델을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요양원의 간병기능은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경우, 월 60만~70만원으로 부모를 모실 수 있다.같은 시기 정부는 요양병원 기
존 스노와 헤어진 후 우리는 리젠트 거리(Regent St.)를 따라 북쪽으로 갔다. 길은 어느덧 포틀랜그 플레이스(Portland Pl.)으로 이어져 BBC라디오 방송국(BBC London Radio)을 지나쳤다. 계속 북쪽으로 걸어 가니 마침내 길 가운데 동상이 하나 보인다. 여기가 리스터 동상이겠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달려 갔는데, 아니다.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Wladyslaw Sikorski)라는 폴란드 군인의 동상이다. 아니 폴란드 군인 동상이 여기 왜? 잘 아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함
올해는 2003년 5월 우리나라에 ‘의료기기법’이 만들어진지 꼭 19년째가 되는 해다. 해마다 의료기기산업 분야의 발전을 보아왔지만 최근 2년은 의료기기의 국가적 ‘보건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의 건강과 일상, 경제,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는데 진단이 첫 번째 솔루션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폭발적 진단검사의 수요와 관심은 기술개발의 속도를 높이고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게 했으며, 과학과 바이오 인재들이 의료기기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디
의료기기법이 2003년 제정되고 이듬해 시행된 이후 의료기기산업은 변화무쌍한 변혁을 이루고 있다. 의료기기산업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가상·증강현실, 로봇, 기타 첨단과학기술 등 흔히 일컬어지는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과의 호환성 및 활용성이 높음에 따라 수많은 후속 연구그룹의 생성과 타산업의 핵심인재들이 유입되는 현황이다. 대내외 의료기기산업의 환경 변화는 점차 질병에 대한 진단 및 예방 그리고 다채로운 치료 옵션을 추가하는 수요로 이어지고 있으며 환자 맞춤 및 표적치료를 행할 수 있는 치료기기에 대한 관심과 기대
최근 모 지방 국립대학교병원에 수술할 의사가 없어 신장이식기관 지정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의사가 없다. 의사 부족이 중소병원을 넘어 이제는 대학병원까지 위기로 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상을 가졌지만, 막상 필요한 곳에 의사가 없다. 교통사고를 당한 2살짜리 민건이는 무려 10군데 이상 병원에서 이송을 거부당해 7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수술 했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응급이송체계를 아무리 갖추어도 수술할 의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인구수 당 의사가 OECD 평균의 60%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도 대부분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