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일상과 환자 비일상 접점 그린 〈유방암 환자의 군가〉
새 심사위원단, 의사 시선으로 본 다채로운 이야기에 감동
성석제 소설가 “소설 속 사건들보다 더 강렬한 이야기 만나”

의료계 신춘문예 ‘한미수필문학상’ 22번째 대상작으로 최상림 중앙대광명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의 〈유방암 환자의 군가〉가 선정됐다.

우수상은 ▲마지막 재회(이도홍 의정부마스터플러스병원 재활의학과) ▲애기, 엄마(이수영 화순전남대병원 대장항문외과 부교수) ▲말 한마디의 무게(정다정 경북대병원 이비인후과 조교수) 등 3편에 돌아갔다.

장려상으로는 ▲뽀뽀를 하재요(김기경 샘물호스피스병원) ▲죽음을 맞이하는 의사라는 직업(김연수 건양대병원 이비인후과) ▲철심 의사 분투기(문성호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부교수) ▲내 어린 고양이 유자(박진선 해븐리병원 내과) ▲폐경有感(박천숙 하단 미래아이여성병원) ▲구멍 뚫린 날(박희철 닥터박의원) ▲아기가 향수를 먹었어요(유은혜 웰케어클리닉) ▲의사생활하면서 정신이 번쩍 든 순간(유정주 순천향대부천병원 소화기내과 조교수) ▲너의 가족이 되어줄게(이신애 서울대병원 외상외과) ▲어떤 인연(이영준 삼성이영준비뇨기과의원) 등 총 10편이 선정됐다.

(왼쪽부터) 박혜진 문학평론가, 성석제 심사위원장, 장강명 작가
(왼쪽부터) 박혜진 문학평론가, 성석제 심사위원장, 장강명 작가

지난 12월 7일까지 진행된 제22회 한미수필문학상 공모에는 다양한 환자 이야기를 담은 수필 126편이 응모돼 9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한미수필문학상 심사는 올해부터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성석제 소설가가 위원장을 맡았다. 성석제 소설가를 중심으로 장강명 소설가와 박혜진 문학평론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단은 의사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에 감탄을 자아냈으며 만장일치로 중앙대학교 광명병원 영상의학과 최상림 선생의 <유방암 환자의 군가>를 영예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성석제 위원장은 “소설 속 사건들보다 더 강렬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며 “의사만 하기에 아까운 분들이 많았다”고 심사평을 전했다.

장강명 작가는 “일반인에게 병원은 아예 모르는 전문적인 현장이며, 의사들이 느끼는 감정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심사를 하면서 격렬한 드라마가 병원과 의사들 가슴 속에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의사분들의 수필을 통해 병원 밖 사람들이 병원 안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병원과 의사의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많이 접하지만 글로 보니 극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지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2001년 제정됐다.

대상에는 상금 1,0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3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대상 수상자는 ‘한국산문’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제22회 한미수필문학상 심사평

올해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된 글은 총 126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글이 응모된다는 사실이 글 쓰는 의사의 수가 조금씩이나마 증가하고 있다는 정량적 의미만 지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최적의 매체이자 최선의 매체이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편수가 환자의 자리에 서 보려는 의사들의 마음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는 것도 과장은 아니지 않을까. 이번에 응모된 126편의 글을 읽으며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라는 삼각의 결속체 안에서 의사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 깨달음과 부끄러움, 다짐과 반성을 섬세한 렌즈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각별하고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중 본심에 오른 작품은 30편으로, 환자이면서 의사이고, 의사이면서 보호자이며, 보호자면서 환자인 입장에서 쓴 글들의 증가가 눈에 띄었다.

제22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은 <유방암 환자의 군가>이다. 이 글은 암 환자에게 케모포트를 삽입하던 영상의학과 의사가 겪은 일화를 그린 작품이다. 케모포트를 삽입하기 위해 마취를 하고 기다리던 중, ‘나’의 귓전으로 환자가 부르는 군가 ‘멸공의 횃불’이 들려온다. 오늘 부르려고 어제 아들에게 배워왔다는 환자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는 게 군가잖아요.” “선생님, 저 살고 싶어요.” 암 선고 이후 행해지는 첫 번째 시술을 받고 있는 이 순간은 환자에게 있어 더없이 힘들고 두려운 한순간인 반면 의사인 ‘나’에게는 비교적 간단한 과정으로 끝나는 반복적 일상이다. 흑과 백이 만나는 것처럼 강렬한 대비를 담고 있는 한순간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건강한 육체로 합창하는 군가가 약한 육체의 여성이 홀로 부르는 노래로 전환되는 순간 발생하는 전복은 흑과 백처럼 갈라져 있던 두 사람을 뒤섞으며 ‘삶’이라는 하나의 색깔을 만들어 낸다. 지난한 치료 과정을 앞둔 환자의 마음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 의사의 일상과 환자의 비일상이 만나는 시공간으로서의 ‘병원’에 대한 성찰이 빛나는 글이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작품은 <애기, 엄마>, <말 한마디의 무게>, <마지막 재회>이다. <애기, 엄마>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던 중 추가 시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의사가 가능한 조치만 마무리한 뒤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의 역할을 포착하는 글이다. 수술 결과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자 보호자가 한 가지만 물어볼 게 있다고 한다. “뭐라고 설명해야 우리 애기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서른이 넘었지만 몸은 13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은 아들을 ‘애기’라 부르는 보호자의 말에서 지난 세월을 짐작할 수 있기도 하거니와 돌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통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일뿐만 아니라 실망과 낙담으로부터 환자를 지켜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글이다. 의사와 환자, 환자와 보호자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소중한 앎을 준다.

<말 한마디의 무게> 역시 보호자 및 환자와의 대화 속에서 의사의 말하기, 의사의 듣기, 요컨대의사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글이다. 10년 전, 아직 초보 주치의였을 무렵, ‘나’는 잊지 못할 사건을 경험한다. 환자에게 의사인 자신이 하지 않은 ‘희망의 말’을 마치 한 것처럼 전하는 보호자를 불러 잘못을 지적해 주었던 일이다. 그러나 보호자는 상황을 잘못 알고 있기는커녕 누구보다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그러니까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 없는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무게다. 치료는 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잊을 만하면 떠올라 자세를 곧추세우게 하는 그날의 기억은 마음을 잊고 사는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 재회>는 시의성과 현장성이 가장 돋보이는 글이자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화두를 담고 있는 글이다. 코로나 거점 전담병원으로서 요양원에서 온 어르신 환자들을 치료하며 화자인 의사가 보호자들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 중 하나는 연명치료에 동의하느냐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연명치료에 동의하지 않는 수많은 대답들 속에는 떨림과 자책으로 가득한 침묵의 목소리가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짓는 상황의 무게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묻고 답해야 할까.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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