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광명병원 영상의학과 최상림 임상조교수

“환자분 시술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마취할 때 조금 아프세요. 아픈 순간에는 제가 미리 말씀드릴게요.”

케모포트 삽입을 위해 환자 오른쪽 가슴 윗부분을 마취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마취가 되길 기다리던 중 환자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고향 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순간 눈이 동그래진 시술 방 간호사랑 눈이 마주쳤다. 공중보건의사로 군 복무를 마친 나는 훈련소를 4주 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저 노래가 군가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군인이세요?”

나는 환자분께 물었다. 파마머리를 한 50대 유방암 여자 환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인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대다수 사람이 곡의 초반만 알고 뒷부분은 얼버무리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군가가 아닌 ‘멸공의 횃불’이라는 군가를 50대 아주머니가 정확히 부른다는 것에 착안한 나 나름대로 합리적 의심에 기인한 것이었다. “아니에요” 환자분이 수줍게 답했다.

지금, 이 순간에 노래를 그것도 군가를 부르는 상황을 모두 궁금해하고 있었고 대표로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군가를 부르세요? “라는 내 질문에 환자가 답했다.

“군가는 무섭고 힘낼 때 부르는 거잖아요. 오늘 시술 받을 때 부르려고 어제 아들에게 배워왔어요.”

암 환자에게 항암제를 주입할 때 말초혈관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독한 항암제 때문에 혈관이 손상된다. 그렇게 되면 의료진도 매번 혈관주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이유로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에게는 ‘케모포트’라는 것을 삽입한다. 주로 환자의 내경정맥 또는 쇄골하 정맥을 통해 도관의 한쪽 끝을 심장 근처 큰 혈관까지 위치시키고 다른 한쪽은 케모포트에 결합하여 환자의 가슴 윗부분에 삽입한다. 그렇게 되면 추후 항암제를 주입할 때 이 포트에 바늘을 꽂은 후에 사용하게 된다. 반복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 그리고 제공하는 의료진 양쪽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장치인 것이다. 시술 자체가 오래 걸리지 않는 시술이라 숙달된 시술자의 경우에는 별문제가 없다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시술이다. 하지만 이 시술을 할 때 유난히 눈물을 흘리시는 환자분들이 많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어느 순간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차가운 시술 방 침대에 누워 온몸이 소독포로 덥힌 뒤 시술을 받는다는 것은 암 선고를 받은 그 날보다 어쩌면 더 무섭고 서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 이지현
일러스트 이지현

환자가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거릴 때 내 나름의 위로를 전한 적은 있어도 갑작스레 들려온 군가에는 당황스러워 어떻게 답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일상의 행동이 그녀의 일상을 깨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기억뿐이다.

어쩌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깨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혈액 검사의 이상함을 감지하는 진단검사, 현미경으로 암세포를 보는 병리, CT나 MRI에서 병변을 찾아내는 영상의학 의사들을 임상 의사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조율하여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 온종일 반복되는 수많은 검사와 많은 환자를 상대하다 보면 내가 열심히 일한 결과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의 당혹함을 미처 생각지 못할 때가 많다. 의학 드라마에서 나오는 실력 있고 환자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의사처럼 되겠다고 다짐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 하였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 일상의 굴레 속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환자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환자 한명 한명의 처지와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공감하는 것에 너무 깊게 빠져들면 이 일을 오래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 환자의 아픔은 마음에 묻고 차가운 머리로 다음 환자에게 향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머리와 마음의 적정한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은 갓난아기의 목욕물 온도를 맞추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내가 전공한 인터벤션은 실시간으로 환자 몸에 방사선을 투과하며 시술을 하는 영상의학의 한 분야이다. 대동맥류의 스텐트 설치, 막힌 혈관의 재개통, 간암의 경동맥화학색전술, 출혈의 응급 색전술, 혈관 도관 삽입, 몸속 고인 물의 배액술 등 다양한 시술을 한다. 대부분 나에게 입원한 환자가 아닌 다양한 임상 과로부터 환자에게 필요한 시술을 의뢰를 받아서 시행한다. 의뢰를 받고 이 환자가 지금 어떠한 질환을 앓고 있으며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시술 전 충분히 검토한 뒤 시술 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나의 환자가 아니니 환자와의 라뽀(환자와 시간이 지나면서 생성된 상호 간의 신뢰 관계)는 없는 채로 시술 방에서 소독포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염의 방지를 위해 환자를 덮은 소독포를 사이에 두고 안쪽과 바깥쪽은 다른 공기가 흐른다.

나의 일상과 환자의 일상 단절이 얇은 소독포로 경계 지어진다. 안쪽의 그녀는 차갑고 무서운 공기 속에 따뜻한 인사로 시술을 시작해 주길 기대한다. 바깥의 나는 앞으로 밀려있는 일정과 지금 해야 하는 시술에 정신이 사로잡혀 시술 전 환자의 인적사항 확인으로 인사를 갈음한다. 안쪽의 그는 아프지 않게만 시술 해주기를 바란다. 바깥의 나는 좀 아플 수도 있지만, 시술이 잘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쪽의 그녀는 시술 시간이 길어져 좀이 쑤시고 고질병인 허리가 너무 아프다. 이제 어떻게 돼도 좋으니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다. 바깥의 나는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 환자가 조금만 더 움직이지 않고 참아 주길 바란다. 안쪽의 그는 애써 담담한 척하지만 무섭고 떨린다. 바깥의 나는 환자분이 별말이 없으니 괜찮으신가 보다 생각한다. 그리고 안쪽의 그녀는 너무 무서워 결국 어제 아들에게 배워온 군가를 부른다. 바깥의 나는 그녀의 행동이 의아하다.

시술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몇 년을 맞아도 적응되는 법 없는 역하기만 한 항암제를 맞는 기구를 삽입하고 환자의 어깨를 조금 힘 있게 쥐며 “잘 끝났습니다. 이걸로 치료 잘 받으시고 쾌차하세요.”라고 했던 말들은 매 순간 환자의 회복을 마음을 다해 빌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반복되는 나의 루틴에 포함되는 행동이었을까. 둘 중 뭐가 되었든 크게 부끄럽지도 칭찬받을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가치를 얻는 것도 있지만 나의 가치관을 실행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과 내가 가진 의사라는 직업이 환자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자였길 바랐고 또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깨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라고 했지만 다행인 것은 아픈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하고 돕는 일 또한 우리의 일상이고 바람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 이지현
일러스트 이지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부터 부랴부랴 등원 준비를 시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정신없이 출근했다. 시술하러 올라가기 전 판독실에 들려 갓 내린 향이 좋은 커피를 한잔 손에 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터벤션 센터에 도착하니 췌장암으로 담도가 막혀 복통과 황달로 응급실로 내원한 60대 남자의 PTBD(경피적 경간 담즙 배액술)가 첫 시술이다.

“환자분 시술 시작하겠습니다. 마취할 때 조금 아프세요”라는 내 말에 “교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저 더 살고 싶습니다”라는 환자의 대답이 내 마음속에 묵직하게 꽂힌다.

소독포를 사이에 두고 나의 일상과 그의 일상 단절이 다시 만났다. 앞으로 형성될 우리와 그의 사이가 경계가 명확한 흑과 백이 아닌 중간 지점에 따뜻한 회색의 그라데이션이 번지기를 그리고 그가 앞으로의 길고 긴 싸움을 잘 마치고 본인의 일상으로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내 나름의 응원의 말을 전하며 시술을 시작했다.

“그럼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상소감 - 최상림 교수>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시인의 대사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늙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고 크게 서러워할 필요도 반대로 젊음을 무작정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깊게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합니다. 하지만 죽음의 과정과 그 결과의 허례허식이 불공평한 것이겠지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그 죽음의 과정이 힘들고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그들의 삶과 밀접하지만 밀접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들을 대하고 치료하는 일들이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시술하다 보면 가끔 환자가 툭 하고 던지는 말이나 큰 의미를 두지 않은 행동에 적잖게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무덤덤하게 반복되는 나의 행동과 환자의 일상의 어긋남이 만난다는 것을 깨닫는 때입니다. 이제 의사가 된 지 고작 10년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이러한 순간에 나의 감정적 소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가끔 있었습니다.

이번 수필은 그러한 고뇌의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 중 하나를 주제로 솔직한 마음으로 썼던 글입니다.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았습니다. 이러한 부족한 글을 읽고 과분한 결과를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러한 기회를 열어주신 청년의사와 한미약품에 감사드립니다. 프로 바둑 기사의 ‘복기‘처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수필을 작성하며 저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도 병원의 일상의 굴레 속에서 가끔은 멈춰 서서 일상 ’복기’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언제나 힘이 되어주시는 양가 가족들에게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글의 제목을 암 환자의 군가에서 유방암 환자의 군가로 바꾸라며 화룡점정을 찍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장난꾸러기 사랑하는 아들 건우에게 마음 깊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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