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마스터플러스병원 재활의학과 이도홍

이게 몇 년 만인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이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인 추석날이었다. 그새 아이들은 하나 빼고 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어 자기네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어른들만 따로 모여 앉았다.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아버지가 지갑을 주섬주섬 만지시더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등록증’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

“나랑 너네 엄마는 보건소 가서 이거 다 작성해 놨으니까,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마라.”

70세도 안되신 부모님이 예고 없이 말씀하시니 당황스러웠지만, 자식들이 병시중 고생할까 결정하신 것 같아 이 또한 내리사랑이라 여겼다.

연명치료. 올 한 해 무수히 내뱉었던 단어다. 그동안 수화기 너머로 이 단어를 들었던 자녀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사실 대부분의 보호자는 연명치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 연명치료에 대한 의학용어를 단숨에 쏟아 내며 당장 그에 대한 답을 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갔던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낯이 뜨거워진다.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의료진이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으면 그만큼 업무 강도가 줄 것이라는 얄팍한 마음 또한 숨길 수 없었다.

코로나 19 7차 유행의 정점을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코로나와 더 친숙해졌다. 코로나 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병상가동률이 초비상이었던 2021년 12월, 델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오미크론 쓰나미 경보에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었다. 보건당국에서도 병상 확보가 시급하던 그때, 우리 병원은 2022년 1년간 코로나 거점 전담병원으로 병상을 다 내놓았다.

코로나로 인해 두 번이나 코호트 격리를 겪어 코로나 환자 관리에 대해 예방주사를 맞은 병원 식구들이었지만 2월부터 폭증하는 환자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파고였다. 많게는 하루에 40여 명씩 우리 병원으로 신규 환자가 배정되었다. 사망률이 높게 예측된 요양 시설, 요양병원의 기저질환 어르신들이 대다수였고 환자가 입실하기 전 환자 별 역학 조사서 및 선별 질문지가 공유되면 의료진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연명치료 여부와 백신 접종력이었다.

오미크론 변이가 전국을 휩쓴 초봄이었다. 백신을 맞지 않은 80대 이상의 요양 시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치 백내장으로 자신들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듯 흉부 CT 검사에서 대부분 간유리 음영이라는 전형적인 코로나로 인한 폐렴 소견이 나타났다. 또한 산소포화도 저하도 동반되어 치료제 투여와 함께 산소치료는 일상이 되었다.

누가 ‘오미크론이 가볍다’ 했던가? 입원 환자 수가 100명이 넘어가면서 중증으로 악화되는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라 환자들의 산소요구도가 높아지며 점점 원내 가동 산소 발생기의 한도 용량에 육박하기에 이르러 전전긍긍했다.

요양 시설에서 확진되어 우리 병원과 같은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배정될 경우, 보호자들은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환자의 상태, 검사 결과를 주 보호자에게 매일 전화로 면담하는 것이 의료진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보호자분 어르신 폐렴이 악화되고 피검사에서 염증수치가 많이 증가했습니다. 지금 산소요구도도 점점 높아져서 비강캐뉼라로 분당 4리터까지 주다가 마스크 10리터로 올렸습니다. 점차 호흡수도 빨라지는데요. 이제 고유량 산소 주입기를 달아야 될 것 같습니다.”

“고유량 산소 주입기요? 그게 뭔가요? 그거 하면 이제 좋아지나요?”

“쉽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산소치료뿐 아니라 렘데시비르(코로나치료제)와 스테로이드에 항생제까지 쓰고 있어요. 그런데 고유량 산소 주입기를 적용함에도 포화도가 떨어지면 그다음은 기도삽관 후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됩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연명치료라고 합니다만 혹시 가족분들께서는 연명치료까지 동의하시는지, 아니면... 거부하시는지요?“

대부분 고령 환자의 보호자들은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면 환자 의무 기록 우상단에 DNR(+)라고 모든 의료진이 볼 수 있게 메모해둔다. 누구의 뜻이었을까? 치매 어르신이 그나마 판단력이 남았을 때 혹여 닥칠 자신의 어두운 미래의 선택지를 알렸을까? 아니면 자식들이 상의해서 다수결로 정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평소에 저희에게 말씀하셨어요’라고 답하는 보호자는 열에 하나였다. 그나마 자녀들이 여럿 있는 경우 무거운 짐을 나눠질 수 있지만 홀로 노모의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외동딸의 떨리는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코로나 감염에 가장 취약한 어르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요양 시설 접촉 면회가 금지되는 바람에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지난 2년간 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설상가상, 코로나 감염으로 위중하다는 변고를 들으니 마지막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는가. 병원 내부 회의에서 위독하신 분들께는 방역복을 착용해서라도 면회를 시행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청결구역에 위치한 진료실에서 각종 검사 결과를 모니터에 띄워 놓고 환자의 상태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한다.

“여기가 환자의 오른쪽 폐입니다. 정상 부분은 이렇게 검게 보이는데요, 어머님 폐는 이렇게 뿌옇게 그리고 하얗게 보이죠. 양쪽 모두 80% 이상 침범한 것 같습니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보호자가 보기에도 확연히 이상을 감지했는지 한숨과 함께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염구역으로 향했다.

“보호자분 일단 저랑 같이 병동으로 가실 거예요, 어머님 5분 정도 보시고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병동 앞에서 TV로만 보던 level D 방역복을 입으려니 보호자도 다소 긴장한 얼굴이 역력하다. 수년 만에 자식을 만나지만 방역복을 착용하니 환자 입장에선 직원인지, 보호자인지 구분할 방도가 없다. 청결구역에서 오염구역으로 이어지는 문들을 열고 중증 구역으로 이동했다.

수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삐삐’ 소리 내는 모니터 기계, ‘푹푹’ 거리는 고유량 산소 주입기 속에서 환자는 자식의 목소리를 알아차릴까?

“엄마. 저예요. 엄마 괜찮아요? 이렇게 되기 전에 자주 찾아갔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흐흑… 사랑해요…그리고 고마웠어요.”

치매 어르신은 멀뚱멀뚱 눈을 뜨며 라텍스 장갑을 낀 딸의 손을 만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마저도 50년간 쌓인 모녀의 정까지 막을 순 없었다. 엄마는 수십 년 전의 고사리 같은 딸의 손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제야 이 환자분도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아내였구나’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눈물의 재회. 그렇지 않길 바랐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고유량 산소 주입기는 쉴 새 없이 환자 비강으로 FiO2 100% 산소를 분당 60리터씩 넣어주지만, 결국 폐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환자의 횡격막과 주변의 근육들이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삐쩍 마른 노구의 호흡수가 점차 빨라지고 얕게 숨을 내뱉다가 어느 순간 숨이 멎을 그때, ‘숨졌다’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마주한다. 고유량 산소 주입기를 환자에서 떼어내며 ‘어르신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사로 마지막 회진을 돈다.

“2022년 3월 15일 14:30분 OOO 사망하였습니다.”

지난 1년간 수많은 환자들이 이렇게 세상과 하직했다.

대부분의 요양 시설에서 온 환자들은 이레에서 열흘 정도 입원치료 후 기존 시설로 돌아갔다. 코로나 19 감염으로 입원 시 전액 국가에서 부담했기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퇴원 권고가 떨어졌고, 합병증에 대한 치료는 환자와 보호자 몫이었다. 하지만 요양원보다 추가 비용이 더 드는 병원으로 전원이 어려운 가정들이 많았다. 요양원으로 복귀하시면 돌아가실 수 있다고 잔뜩 겁도 줬지만 자신들의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설득이 되지 않을 때, 괜히 자녀들에게 자책감을 주는 것 같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만나야 될 때가 있다면 헤어져야 될 때가 있는 법이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최선이며 최적일까?’ 지난 1년간 머릿속을 맴도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을 다짐으로 오늘도 질문한다.

“연명치료 동의하십니까?”

<수상소감 - 의정부마스터플러스병원 이도홍>

의대 동기이자 기숙사 옆방 친구였던 화순전남대병원 대장 항문외과 이수영 교수와 같이 나란히 수상하게 되어 기쁨이 배가 됩니다.

코로나 거점 전담병원의 주치의로 지난 1년, 이 기간에 환자들을 보며 느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잊히기 전에 글로 정리해두고 싶었습니다. 게으름으로 미루던 늦가을께 한미수필문학상 공지 메일이 다시 느슨해진 마음을 다 잡아주었습니다.

2022년 5차, 6차, 7차 3차례 대유행을 겪으면서 우리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요양 시설들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한 번 유행이 시작되어 확진자 수가 증가되어 변곡점에 이르기 전 취약시설인 요양원,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입원이 주를 이뤘고 사망자도 고연령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안타깝게도 무연고자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거듭된 변이로 저지선이 뚫리고 이미 진행된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가 나빠질 때, 인간의 지식과 의료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년 뒤,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 후에 이런 감염병이 재유행 시 막대한 의료비와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적절한지, 지난 3년간의 경험이 훌륭한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코로나 전선 최전방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준 모든 병원 직원들, 특별히 전우애로 똘똘 뭉친 진료부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1년 동안 수고한 저희에게 격려차 제 글을 좋게 평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님들을 비롯하여 청년의사 관계자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늘 제 곁에서 돕는 배필로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아내 영아. 그리고 두 딸 다윤이, 다정이, 저희 부모님, 장인 장모님 모든 가족에게도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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