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료원 정형외과 이경학 과장, 하이펙스 2023서 ‘ERAS’ 강조
"수술 전 8시간 금식‧배관액 착용 등 모두 잘못된 환자관리"

국립중앙의료원 정형외과 이경학 과장은 'HiPex 2023'에서 수술 후 합병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공유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정형외과 이경학 과장은 'HiPex 2023'에서 수술 후 합병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공유했다.

수술 8시간 전부터 금식, 수술 후 방귀가 나오기 전에는 식사 금지, 척추수술환자는 수술 후 무조건 6~8시간 누워있기 등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수술 전후 환자관리가 사실은 아무 근거가 없다?.

국립중앙의료원 정형외과 이경학 과장은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열린 HiPex 2023(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3, 하이펙스 2023)에서 ‘수술 후 합병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7가지 방법:ERAS 프로토콜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수술 후 회복력 향상(ERAS)’ 프로토콜을 도입해 실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를 통해 환자안전을 꾀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업무도 줄이는 모두가 윈윈하는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학 과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수술 전후 금식 방법 등 수술 후 합병증 관리가 사실은 환자에게 독이 되는 ‘미신’ 수준의 관리라며 제대로 된 수술환자 관리법은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수술 후 회복력 향상(Enhanced recovery after surgery, ERAS) 프로토콜을 시행하면 수술 후 환자의 신진대사(Metabolism)와 면역(Immunity)에서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수술 전 금식은 8시간 전을 기준으로 하지만 6시간 전까지 식사를 하고 2시간 전까지 물을 마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수많은 논문을 통해 증명됐으며 의료기관에서 믿고 있는 ‘8시간 전 금식’은 말 그대로 미신이라고 했다.

수술 후 식사와 관련해서도 보통 장음이나 방귀가 나오기 전까지 물도 주지 않고 있지만, 이 역시 미신이며 수술 후 최대한 빨리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했다.

오히려 수술 후 장시간 음식물이 장으로 가지 않을 경우 장의 혈류가 줄고 기능이 떨어져 장 내 균이 혈류를 타고 돌아다니는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수술 후 환자들이 계속 달고 있는 수액은 최대한 빨리 음식물을 먹이고 제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또한 수술 후 대부분 환자가 착용하는 배액관 역시 착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소개했다.

이 과장은 “소변 등을 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피를 빼기 위한 것이라면 안해도 된다. 배액관을 사용하지 않으면 병동에서 (배액관이) 저절로 빠져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막을 수 있어 (간호사나 전공의의) 업무량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액과 배액관 등을 달지 않는 것은 수술 후 환자의 조기보행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이 과장은 “수술 후 환자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행을 방해하는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통상 척추마취수술 환자는 수술 후 6~8시간 누워 있는 것이 상식이라고 하는데, 근거가 없다. 오히려 누워 있으면 두통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국립의료원에서도 (척추마취환자 수술 후 빨리 걷게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지만 시행 후 문제가 된 사례는 하나도 없다. 미국 노년학회 등에서 이미 문제가 없다는 논문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장에서 병실로 올라오면 ‘편희 쉬세요’라고 하는데, 쉬는 것이 오히려 환자 컨디션을 나쁘게 한다”며 “(수술 후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1942년도에 나온 시를 보면 ‘피가 굳고 골수가 흘러나오고 장애 똥이 쌓이고 방광에서 오줌이 세고 정신에서 영혼이 달아난다’고 적고 있다. (수술환자를 계속 누워있게 한다면) 80년 전 사람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이 외에도 ▲수술 전후 체온유지 관리를 위한 수술 전 워밍업 ▲수혈 최소화 ▲수술 후 항생제 최소화 ▲수술 후 필요한 경우만 산소 투여 등도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 항생제 투여와 관련해 “대학병원에서는 보통 수술 후 5일, 지역 병원에서는 7일 투요하는 곳도 있을 정도”라며 “항생제 투여 가이드라인을 보면 수술전후 24시간을 기준으로 1번 정도가 적당하다고 제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너무 과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ERAS 시행 결과를 살핀 논문들을 보면 대부분 30~50% 재원기간이 줄어드는 등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현장에서 보면 시장통 같던 병동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되는 것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장은 “ERAS 프로토콜 중 한두가지를 시행한다고 해서 변화가 오지 않는다. 최소한 80% 정도는 지켜야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과장은 “ERAS는 인공지능도 로봇도 돈도 시간도 들이지 않고 생각만 바꾸면 직원 업무량을 줄이고 환자를 이롭게 한다”며 “당장 오늘부터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환자, 직원 모두가 윈윈하는 길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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