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수료 탓에 찔러보기式 허가심사 신청 악용 사례도
업계도 '심사관 부족' 한목소리…수수료 현실화 고민해야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4년 회계연도 허가심사수수료(User fee) 인상을 결정했다. FDA는 지난 7월 28일 신약(전문의약품), 제네릭, 바이오시밀러, 의료기기 허가심사수수료를 확정해 발표했는데, 이 중 바이오시밀러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에 대한 수수료를 인상했다. FDA는 오는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해당 금액을 적용할 예정이다.

특히 신약 허가심사수수료가 사상 처음으로 400만달러를 돌파해 눈길을 끌었다. 2024년 신약 허가심사수수료는 404만8,695달러(약 54억원)로, 전년 대비 24.9%나 상승했다. 제네릭(ANDA)과 의료기기(PMA) 허가심사수수료의 경우, 각각 25만2,453달러(약 3억원)와 48만3,560달러(약 6억원)로 전년 대비 4.9%, 9.5% 상승했다.

이러한 FDA의 허가심사수수료 인상 결정은 국내 상황과 큰 차이를 보인다. 식약처 허가심사수수료를 명시한 ‘의약품 등의 허가 등에 관한 수수료 규정(식품의약품안전처고시)’에 따르면, 생물의약품(바이오의약품) 신약 허가 심사를 전자 민원으로 접수할 경우, 심사 수수료는 803만1,000원이다. 희귀의약품 허가 심사의 경우, 전자민원 기준 441만7,000원이다.

식약처의 허가심사수수료가 마지막으로 인상된 것은 지난 2020년이다. 2020년 10월 행정규칙 개정에 따라 그전까지 617만7,850원이던 바이오의약품 신약 허가심사수수료가 지금 수준으로 인상됐다. 2021년 전자 민원 접수 시 수수료 10%를 가산한다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대동소이하다. FDA에 비춰볼 때 식약처의 허가심사수수료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양 기관의 규모와 인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수수료가 차이나는 이유는 책정 기준과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FDA는 인플레이션, 심사 신청건수, 제조시설 수 등을 감안해 매년 업체로부터 받는 허가심사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다. FDA의 2024년도 바이오시밀러 허가심사수수료가 인하된 것도 지난해로부터 약 2,000만 달러의 운영비가 올해로 이월됐기 때문이다.

즉, FDA는 매해 필요에 따라 수수료를 결정하고, 전년 대비 더 많은 임상자료 심사가 예정돼 있다면 더 많은 인력과 비용 소요가 예상 되는 바 수수료를 올리는 식이다. 의료기기의 경우 신기술(De novo) 여부에 따라 수수료를 다르게 책정하기도 한다. 반면 식약처의 허가심사수수료의 경우, 기획재정부의 결정에 따라 이뤄진다. 인상 또한 물가상승률 내에서 이뤄진다.

문제는 해외 규제기관 대비 지나치게 낮은 의료 제품 허가심사수수료가 국가 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의 낮은 허가심사수수료로 인해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비용이 너무 낮을 경우 무분별한 허가 신청이 이뤄지고 그 결과 심사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규제기관과 비교해 허가심사수수료가 낮은 탓에 찔러보기식의 허가 심사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식약처 안팎의 지적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식약처로부터 심사를 받은 뒤 자료를 보완해 다음 번 허가심사 제출 시 반영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식약처 허가심사를 일종의 컨설팅처럼 악용하는 셈이다. 국내 수수료 인상에 대한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제품 허가를 위해 수수료를 내야하는 국내 업체들이 식약처 수수료 인상을 반대할 것 같지만 오히려 현실은 반대다. 국내 업체들 또한 식약처의 수수료가 FDA에 비해 너무 낮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고 오히려 적지 않은 업체들이 지금보다 높은 수수료를 내더라도 빨리 심사받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FDA의 경우 비싼 수수료를 낸 만큼 심사 결과도 빨리 나오고 전문 인력 채용이 자유로워 심사 결과에도 더욱 힘이 실린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RA(인허가) 관계자는 식약처가 FDA처럼 수수료를 높여 심사기간을 단축시키고 전문 인력을 확대할 수 있다면 업계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식약처 수수료 인상이 전문 인력 채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의료기기 등 모든 의료제품 업체들이 겪는 애로사항이 바로 국내 심사관 부족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심사관을 늘릴 수만 있다면 수수료 인상을 환영하며, FDA와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에 감면 혜택을 주는 게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처럼 업계의 많은 이들이 국내 허가 심사 역량 강화와 이를 위한 인력 충원 및 수수료 인상을 필수 과제로 꼽고 있는데,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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