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필자는 ‘의학과 문학’이라는 수업을 통해 ‘더 좋은 의사’가 되는 길에 대해 의대생들과 대화하고 고민해 왔다. 의학지식과 기술을 배우기에도 빠듯한 학생들에게 ‘의학과 문학’이라는 사치스러운 수업이 왜 필요한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질병 진단과 치료에만 천착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과 특이성을 이해하자, 그렇게 해서 질병이 아닌 ‘사람을 돌보는 의사’가 되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까뮈의 〈페스트〉를 읽었고,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읽으며 질병의 고통과 ‘환자됨’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영미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이영미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지난 20여년의 시간 동안 의대생들과 〈페스트〉를 읽으면서, 〈페스트〉 같은 팬데믹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는 그저 가상인데, 혹시라도 유사한 상황이 올 때 부조리한 세상에 어떻게 맞서 나갈지, 의사라는 직업적 소명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 것이었다.

새로운 팬데믹이 온다면 과연 우리들은 주인공 ‘리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설사 치료 방법이 없더라도 환자 곁은 떠나지 않고 그들의 옆을 지키는 인간애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의사(compassionate physician)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소설 속 허구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이 어느 날 우리 현실이 되었다. 2020년 COVID-19 팬데믹! 이때 우리가 가장 많이 접했던 단어 중 하나는 ‘전대미문(unprecedented)’ 였다. 그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리외’처럼 환자들 곁을 지켰고, 의료진과 사회는 소설의 핵심어인 “연대 의식”을 발휘하여 현실 세계에서 감동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

이번 ‘의대생 2,000명 증원’으로 야기된 의료대란과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면서 ‘전대미문의 뉴 팬데믹이 다시 찾아왔구나, 그것도 우리나라에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는 ‘부조리’, ‘부당함’, ‘인권 침해’이다. 이 단어들은 나를 카프카의 소설 〈The trial〉(번역서 제목: 〈심판〉 또는 〈소송〉)을 읽게 만든다.

이 소설은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됐으니 말이다"로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 K는 영문도 모르는 소송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소송을 해결하려면 할수록 자꾸만 더 그 굴레로 속박돼 버리고, K는 혼자 그 미로 속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헤매다가,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흐르고, 문득 정신을 차린 K는 죄가 자신을 잠식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여전히 이유도 없이 누군가에게 K는 살해된다.

나는 소설 속 K가 겪는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이고 엉뚱한 사건의 전개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음에 경악한다. 정부와 매스컴이 학생들에게 전공의들에게, 의사들에게 휘두르고 있는 폭력은, K가 이유도 모른 채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훼손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젊은 의사들에게 내려진 ’사직 금지 명령‘, ‘업무개시명령’, ‘면허정지’. 그리고 ‘밥그릇 싸움하는 이기적인 집단‘, ’환자를 버린 파렴치한 집단‘이라는 매스컴의 조롱과 폄훼는 의사들과 미래의 의사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자신이 기소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법정을 출두해야 하고, 그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상황은 K에게 무기력과 극단적인 당혹감만이 남게 한다. 손바닥 안의 개미 한 마리처럼 법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결국은 순식간에 그 존재조차 의심받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게 된다.

“나도 모르는 죄가 나를 잠식한다. 나는 사라지고 죄와 굴욕만 남았다”라는 말처럼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의사들에게 굴욕감으로 인한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직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잠재적 범죄인 취급을 당하는 전공의들의 인권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되새기며, 자식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 나라에서 왜 유독 의사양성교육만은 하루 아침에 손 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꿔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제대로 된 계획, 준비, 절차도 없이 의대생을 증원하면 작금의 의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가? 왜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수들의 의견은 묵살되는가?

의대생을 현장에서 교육하고 있는 교수들이 급작스럽게 증원된 2,000명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교수를 갑자기 구할 수 없고, 교수 인력뿐 아니라 교육에 투입돼야 할 모든 자원을 몇 년 사이 갖추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의학교육이 무너진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근거가 없다‘, ’설득력이 없다‘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이 근거가 있다는 것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근거중심의료‘는 단순히 통계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 수치로만 환자를 치료하라고 하지 않는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확보한 수치를 토대로 하되,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환자의 개인적 여건과 선호도를 고려하고 의사의 경험을 종합해 결정하라고 한다. 이는 통계로 나온 숫자만이 절대적인 의사결정의 근거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상황 속에서 조셉 K와 같이 황당하고 서글프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절망적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이 이대로 간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대한민국의 의학교육은 살해되는 것이다, K처럼. 정당한 이유도 없이,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정부의 2,000명 의대생 정원 정책은, 카프카의 소설 〈The trial〉의 마지막에 나오는 요제프 K의 죽음과 같이, 내가 젊음을 바쳐 일해 온 ’우리나라 의학교육에 대한 사형 선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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