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나 울산의대 교수(전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우리나라 의료 붕괴를 수습할 해법도 책임자도 안 보인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료개혁안이 그야말로 필수의료를 끝장내고 있다. 의대생 전체가 진급을 포기했고, 전공의가 대부분 사직을 해서 향후 6년간 배출할 신규 전문의도, 군의관도, 공보의도 없어진다. 이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의대 교수나 수련병원은 자연히 없어져야 할 존재들이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의료의 정상화는 향후 10년 내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계적 수준이라던 K-의료와 K 바이오 산업의 종말을 고하고,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망국적인 수준으로 황폐화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이제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미나 교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미나 교수

의사를 빼놓고 온 국민이 의사 늘리는데 압도적인 찬성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항상 그렇다. 의사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서 2~3배 많다는 나라에서도 국민들은 의사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의료 이용자인 국민은 당연히 의사 수가 늘기를 바란다. 따라서 의사 수 늘리기 찬반 여론조사로 의사 수를 추계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이에 근거해서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정부는 역사상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지난 수개월간 여론조사를 반복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의대 증원을 의사만 반대한다고 앞장섰던 언론이 이제는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에 찬반 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국민 여론을 호도하는데 이용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헌법상의 의무이며, 의료 자원을 확보하고 활용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국민들은 필수적인 의료 혜택만큼은 부족함 없이 받기를 원한다. 현실적으로는 의료에만 무한정 재정을 투입할 수도 없고, 의사 양성에는 1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적정한 의사 수는 통상 십수 년 전부터 정부가 추계해서 대비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적정 수’를 추계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경제사회적 여건에 따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뤄지지 ‘과학적’으로 계산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의 2,000명 증원 안은 과학적 산물이므로, 의료계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보다 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적정 의사 수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용자인 국민이 의사 수를 늘려달라 요구해도, 비용을 책임지는 정부가 제한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급속히 경제 발전을 하던 80년대, 90년대 의대 정원을 2배로 늘렸다가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2000년대 초 의대 정원을 351명 줄인 후 지금껏 동결했던 주체는 의사 단체가 아니라 정부였다.

해외 의사들에게 한국 정부가 내년 의대 정원을 67% 증원한다고 하면 한 번 놀라고, 10년 후 의사 수가 폭증해도 의료비 부담은 늘지 않고 의료서비스가 좋아진다는 대국민 홍보를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란다. 그 보다 더 황당해 하는 것은 5년간 증원했다가 정원을 원상 복귀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국민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건강보험이든 국민연금이든 국가 독점인데도 의사 수가 늘어도 의료비 상승이 없다고 하는 것은 더 안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이 있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과학에 타협이 끼어들 수 없는 것처럼 적정한 의사 수를 사회적 합의 없이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다. 국민이 나서서 의료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고, 특히 의료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사회적 타협안을 만들라고 정부에 주문해야 한다.

정부의 의료개혁안에 절망해 미래를 포기하고 집단으로 병원을 사직한 의사들은 돈만 아는 악덕한 파렴치범에 심지어는 불법행위를 한 범법자로 낙인이 찍혔다.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이처럼 필수의료 의사는 노동 3권이 없는 공공재로 취급하는 것 또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급여수가를 원가 이하로 통제하기 위해 비급여 진료, 실손보험을 만든 것은 정부이고,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국민이 비급여 진료, 실손보험을 의사들이 돈벌이에 이용한다고 지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전공의를 대체할 인력도 이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킬 권한도 없다는 진실을 고백하고, 이 사태를 유발한 정부의 의료개혁안 강행을 중단하도록 국민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의대 증원 배정을 1년 유예하고 의정 갈등에서 의정 협의 모드로 바꾸는 것이 더 이상의 혼란을 막을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필수의료의 현재와 미래인 의대 수련병원의 교수와 전공의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이들을 복귀시킬 유일한 권력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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