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아이얼런드 저/유진홍 역/군자출판사/3만5000원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오로지 역병과 질병, 죽음을 퍼뜨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의식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고통만 주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우리 몸의 잊혀진 아군 바이러스, ‘파지’를 소개하는 〈착한 바이러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번역은 관련 분야 국내 전문가인 가톨릭의대 감염내과 유진홍 교수가 맡았다.

책은 파지의 우연한 발견에서부터 파지 치료법으로의 응용,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반론으로 유사과학으로 빠질 뻔했던 위기를 보여준다. 또 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과학으로 나아가는 역정(歷程)을 그려낸다.

파지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의 줄임말로 박테리아만 감염시켜 죽이는 바이러스다.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무해하며 박테리아 세포에 유전자를 주입해 박테리아의 신진대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터뜨린 후 또 다른 박테리아를 찾아 나선다.

지구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박테리아에는 파지가 반드시 같이 있다. 파지는 지금 우리 몸에서도 수백만번이나 치명적인 박테리아를 파괴하고 있다.

지난 1917년 발견된 파지는 1919년 최초로 의학적으로 사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은 군인들을 괴저, 콜레라, 이질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양조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개발되면서 파지는 도외시되고 유사 과학으로도 빠질 위기에도 처했다.

그러나 파지를 연구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함께 최근 다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제내성균처럼 인류가 보유한 대다수 종류의 항생제에 저항성을 갖는 박테리아 균주의 수가 급증하면서 대응책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파지 치료법이 매번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박테리아에 파지를 투여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박테리아가 저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제 파지는 세균 감염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건강 문제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첨단 나노 의약품 개발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저자인 톰 아이얼런드(Tom Ireland)는 “이 책을 통해 바이러스가 꼭 나쁜 게 아니라 선한 의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전 세계는 내성 박테리아를 퇴치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억울하게 오해받는 이 바이러스는 최고의 희망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 책을 번역한 유 교수는 대한감염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유진홍 교수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감염학〉, 〈항생제 열전〉, 〈열, 패혈증, 염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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