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업무 범위 확대했지만 법적 근거 ‘미흡’
제도화된 전문간호사 활용 제안 “역할 확대해야”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로 인해 의료공백이 생기자 서둘러 시행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으로 인해 간호 현장 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업무 범위는 모호한데 법적 보호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미 제도권 내 있는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가 지난 11일 ‘환자 중심의 전문간호사: 변화하는 업무 범위와 발전 방향’을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정책세미나에서는 이같은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지난 2월 19일부터 사직하기 시작하자 일주일 뒤인 27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화를 위한 시범사업으로 3월 현재 의료기관 144곳에서 간호사 1만165명이 참여하고 있다.

간호사가 수행하는 진료지원 업무 실태조사를 했던 제주대 간호대 김민영 교수는 “의료현장 진료 공백 해소, 간호사 진료지원 업무 수행에 따른 법적 불안 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진행하는 시범사업이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업무 범위 명확화와 법적 보호 여부를 재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지적했다. 전담간호사나 PA간호사 등 병원마다 다른 명칭에서 그들의 법적 지위를 보여준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진료지원인력 양성 시 교육 질을 고려해야 한다. 또 업무 범위에 대한 법적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지난 11일 ‘환자 중심의 전문간호사: 변화하는 업무 범위와 발전 방향’을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정책세미나를 진행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수정 전문간호사협회장, 박혜린 복지부 간호정책과장,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 김윤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청년의사).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지난 11일 ‘환자 중심의 전문간호사: 변화하는 업무 범위와 발전 방향’을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정책세미나를 진행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수정 전문간호사협회장, 박혜린 복지부 간호정책과장,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 김윤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청년의사).

간협, 법적 보호 위해 간호법 제정 강조
이미 제도화된 전문간호사 활용 제안도

대한간호협회 최훈화 정책전문위원은 진료지원 간호사 업무 범위를 인정받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는 등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지금이 적기라고 했다. 간협은 21대 국회 회기 내 간호법 제정도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은 “정부가 의료개혁으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구현하려고 할 때 우리 간호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제안할 수 있다”며 “의료공백 대응을 위해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간호사 업무 범위를 먼저 인정받고 법적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간호사 업무 역량 강화와 역할 확대로 전문화와 자율성도 확대돼야 한다”며 간호사 업무 범위를 법적으로도 명확히 하려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간호사협회 최수정 회장은 진료지원 간호사라는 새로운 직종을 만들기보다 이미 법적 근거가 있는 전문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법 제78조에 명시된 전문간호사는 13개 분야로 2023년 9월 기준 총 1만7,346명이다.

최 회장은 “PA나 전담간호사는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인이 아니다. 그래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며 “가장 명확한 관리체계가 자격 또는 면허다. 전문간호사는 의료법 78조에 명확하게 자격과 면허 체계가 명시돼 있고 교육과정을 한국간호교육평가원에서 관리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간호 업무가 한시적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법적 문제 여지가 있다. 숙련도, 자격을 갖춘 정도에 따라 진료지원 업무가 배정돼야 한다”며 “이미 법적 제도화를 갖춘 전문간호사를 병원 내 배치하고 활용하고 있다. 기존 전담간호사 혹은 PA간호사를 전문간호사로 흡수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윤 당선인 “법 개정 어려우니 법령으로 보호해야”
복지부 “법령 개정만으로는 다툼 이어질 수 있어”

21대 국회 회기 내 간호법 제정이나 의료법 개정이 불투명하기에 보건복지부가 관련 규정을 개정해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인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법과 제도, 인증 기준 없이 의료기관별로 체계를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나중에 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며 “정부는 간호법이나 의료법을 개정해서 업무 범위를 정하겠다고 하는데 현재 의료법에 전문간호사와 관련된 규정이 있다. 복지부령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전담간호사라는 과도기적인 직종을 궁극적으로 전문간호사로 통합, 발전시켜 나가는 접근도 필요하다”도 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상위법인 의료법과 충돌할 수 있다며 부정적이었다. 복지부 박혜린 간호정책과장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제27조를 지적하며 하위 법령을 개정해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별도로 규정하면 추후 의사 업무 범위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박 과장은 “법적 다툼이 계속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법 개정을 통해) 조금 더 폭넓은 범주의 업무를 허용하는 형태의 규정이 있어야 법적 보호가 더 완전해진다”며 21대 국회 내에서 간호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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