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김주한 교수가 전자진료증 ‘라임카드’ 만든 이유

진료 전 신분증을 꼭 확인하도록 한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제도’가 시행됐다. 법 개정 후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가졌지만 의료기관도, 환자도 아직 준비 되지 않았다. 결국 의료 현장은 혼란에 빠졌고 정부는 오는 8월 20일까지 3개월간 행정처분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다.

반면, 본인확인 강화제 시행 후 벌어질 혼란을 예상해 미리 준비한 곳도 있다. 서울의대 의학과 김주한 교수가 교내 창업한 ㈜애브체인(AvChain)이다. 김 교수는 본인확인 강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당시 국회 본회의는 신속처리안건(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과 ‘간호법’ 처리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다.

김 교수는 준비 없이 제도가 시행되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하지만 의료계는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대한의사협회를 만나 자신이 찾은 ‘대안’을 제시했다. 그게 바로 전자진료증인 ‘라임카드(Rhyme Card)’다(관련 기사: 서울의대 교수, 본인확인 부담 덜어줄 '모바일앱' 무료 배포).

서울의대 김주한 교수는 지난 20일 의료기관의 본인확인 부담을 덜어줄 모바일앱 전자진료증 '라임카드'를 무료 배포했다(ⓒ청년의사).
서울의대 김주한 교수는 지난 20일 의료기관의 본인확인 부담을 덜어줄 모바일앱 전자진료증 '라임카드'를 무료 배포했다(ⓒ청년의사).

김 교수는 6~7개월 걸려 만든 라임카드를 본인확인 제도가 시행된 지난 20일 무료 배포했다. ‘맛보기용 무료배포’도 아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유료로 전환할 계획이 없다. 김 교수는 “본인확인 기능은 처음부터 무료로 계획했으며 앞으로도 무료로 배포할 것”이라고 했다.

라임카드는 블록체인 기술인 DID(Decentralized ID, 분산신원인증)가 적용됐다. 김 교수는 의협 지원을 받아 멤버십 클럽 운영을 위한 기술로 개발한 ID 카드를 의료기관용으로 확장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서 건강보험 수진자 본인확인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이 사라졌다. 의료정보는 수집되지 않고 환자 아이디 위변조도 불가능하다. 하나의 아이디로 모든 참여 병원을 연동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전자진료증을 통해 현재 시행된 본인확인 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모바일 신분증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모바일 신분증을 보여주면 눈으로 확인하는데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바일 신분증은 위변조가 너무 쉬워서 원본성이라는 게 없다”며 “고등학생 사이에서 (성인만 출입 가능한) 클럽에 가려고 위조된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사고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클럽 앞에서 눈으로만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은 원본과 사본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걸 눈으로 보는 건 본인확인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김 교수는 지금 의료현장에서 클럽 앞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디지털 세계에서는 코드를 컴퓨터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본인확인을 위해 의료기관이 별도 장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이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고 의료기관이 생성한 QR을 스캔하면 본인확인과 진료접수, 문진, 대기표 발행이 동시에 이뤄진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본인확인 제도로 의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다른 곳에 종속되지 않고 환자와 직접 연결되길 바란다. 의사가 발급한 전자진료증으로 환자와 직접 소통했으면 한다고 했다. “의사가 환자와 연결돼 있어야 그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소신이다.

특히 이번 기회에 본인확인에 필요한 아이디와 암호를 서버에 저장하거나 암기하지 않고 “직접 관리하는 게 중요한 세상이 왔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의 폰 안에 생성된 공개키(아이디)와 비밀키(암호)는 본인 외에는 접근할 수 없고 외부로 빼내지도 못하는 블랙체인 DID 기술은 이미 상용화됐다. 폰 안에 있는 암호를 꺼내지 않아도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시대에서는 ‘그 폰’ 자체를 잃어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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