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 회장(연세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전공의·의대생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권리와 의무가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연세의대 의료법윤리학괴 김소윤 교수
연세의대 의료법윤리학괴 김소윤 교수

인도, 중국 등 인구 대국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교육열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강한 경쟁에서 최우수한 학생들만 성공한다는 우리나라의 의대 입시. 아마 지금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는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자부해도 될 상태였기 때문에, 의료계와 의대생들의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도 높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주위의 관심과 응원에 힘입어 오직 의대 입시 준비에만 몰두하여 성취한 입학이었다. 15년 이상 온 가족이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고 들어온 의대. 그러나 의대생이 되어서도 많은 공부량을 감당하기 위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공부와 일로 피곤한 일상을 보내야 했으리라.

피부과나 안과 등 최상위 과는 아니더라도 마취과, 영상의학 등 인기과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대학생으로서의 낭만이나 취미, 일반교양을 쌓기 위한 활동을 할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테지. 또한 어렵게 전공을 선택해서 힘겨운 현실을 버티면서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도 안정된 미래를 설계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갑자기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에 필요한 인력이 필요하다고 의대 입학정원을 내년부터 2,000명씩 증원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황당했을 것이고,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에 회의감이 들고, 우리 사회와 기성 세대들이 하는 모든 결정과 일들이 납득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기성 세대의 의료정책을 전공하고 실천하고 있는 선배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고 어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미래의 의료에서 의사가 감당하고 있는 많은 권한을 간호사, 의료기사 등 타 직종에게 나누어 주고, 일부는 AI 의사가 하도록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의사 수 늘리는 정책에 적극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다.

정책에 대한 판단은 선거를 통해 많이 반영이 되었다고 생각되나, 현 정권에서 의료정책 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여 현실적으로 원점으로 돌이키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를 가장 잘 대비하는 것인가를 같이 논의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2024년 한 해를 그냥 온전하게 불태워 버리는 것은 본인과 가족, 사회 누구를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6개월 정도 정말 뼈아프게 살아낸 그 경험으로 우리 사회를 좀 더 성숙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진정한 엘리트로서의 자리로 돌아와서 그 자리를 지키면서 권리와 의무를 다시 논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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