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일상으로 들어온 로봇] ①용인세브란스병원
환아와 놀아주는 키즈로봇, 짐 들어주는 벨보이로봇
로봇 생태계 구축되려면 "미충족 수요 찾는 게 먼저"

의료현장에서 로봇은 그다지 새로운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로봇이 의사의 손을 대신해 환자를 수술하고 재활을 돕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병원 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에 청년의사는 로봇과 ‘소소한’ 일에 손발을 맞추고 있는 병원 현장을 찾았다.

키즈로봇은 7층 소아 병동에서 만날 수 있다. 키즈로봇은 가이드 로봇에 노란색과 파란색 기린 무늬를 씌웠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나 게임 등이 탑재된 '쥬니버' 메뉴가 있다(ⓒ청년의사).
키즈로봇은 7층 소아 병동에서 만날 수 있다. 키즈로봇은 가이드 로봇에 노란색과 파란색 기린 무늬를 씌웠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나 게임 등이 탑재된 '쥬니버' 메뉴가 있다(ⓒ청년의사).

"예전에는 아이들이 울면 '뽀로로' 보자고 했는데, 이제는 '키리니' 보러 가자고 해요."

용인세브란스병원 7층 소아 병동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친구가 있다. 바로 키즈로봇 '키리니'다. 노란색에 파란색 점박이 무늬가 그려진 키즈로봇 '키리니'는 어린 환자와 놀아줄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쥬니버' 메뉴를 이용해 동요와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키니리는 낮에는 환아들과 놀며 병실을 안내하고 밤에는 병동 순찰을 한다. 앞으로 소아 환자를 위한 정보 영상도 제공할 예정이다.

키리니는 지루한 병원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키리니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오전 8시 30분에 맞춰 구경하러 나오는 환아들도 있다. 키리니가 병동을 돌아다니면 환아들이 그 뒤를 따라걷는다. 이는 곧 걷기 운동이 된다.

소아병동 안세라 파트장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운동이 필요한 아이들은 로봇과 함께 병동을 돌기도 한다”며 “보호자들도 아이들을 달랠 수 있어 좋아한다. 아파서 병원에 온 아이들이라 울 때가 많은데 보호자들이 로봇을 보여주며 달랜다. 또 병실에만 있으면 답답하니 복도에 나와 로봇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의 가이드 로봇인 ‘안내양’은 커다란 스크린에 길 안내부터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능을 표시한다. 로봇으로 촬영한 사진은 SNS에도 올릴 수 있다(ⓒ청년의사).
용인세브란스병원의 가이드 로봇인 ‘안내양’은 커다란 스크린에 길 안내부터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능을 표시한다. 로봇으로 촬영한 사진은 SNS에도 올릴 수 있다(ⓒ청년의사).

용인세브란스병원에는 키니리를 비롯해 서비스 로봇 총 11대가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방역로봇을 도입한 이후 2022년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실증사업에 참여하면서 10대가 새로 들어왔다.

현재 용인세브란스병원에는 가이드로봇 2대, 혈액·검체·약제 이송로봇 3대, 수술 도구 이송로봇, 대용량 의료소모품 이송로봇, 벨보이로봇, 간호 카트로봇, 키즈로봇, 방역 로봇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관제실에서 로봇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관찰할 수 있다.

청년의사는 지난 12월 29일 용인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병원을 누비는 서비스 로봇들을 살펴보고 의료 현장에서 인간과 어떻게 협업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환자의 짐을 옮겨주는 벨보이로봇(왼쪽)과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도입됐던 방역로봇(ⓒ청년의사).
환자의 짐을 옮겨주는 벨보이로봇(왼쪽)과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도입됐던 방역로봇(ⓒ청년의사).

용인세브란스병원에는 환자·보호자를 돕는 로봇이 많다. 벨보이로봇도 그 중 한다.

벨보이로봇은 일부 병동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환자 입·퇴원 시 짐을 로봇에 실을 수 있다. 로봇은 실린 짐을 병동이나 주차장으로 옮겨준다. 큰 짐을 보관하는 공간과 서류 전용 선반이 따로 있어 원무팀에서 병동으로 서류를 전달하기도 한다. 스마트 팩토리에서 사용되던 산업용 이송 로봇을 커스터마이징해 사용하고 있다.

가이드로봇은 병원 1층 로비와 2층에 위치했다. 낮에는 주로 병원을 돌아다니며 방문객들의 길 안내를 맡는다. 사진 촬영 기능도 탑재돼 로봇으로 찍은 사진은 SNS에 공유할 수 있다. 방문객이 줄어드는 야간에는 주로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며 내원객이 찾기 어려워 하는 지하 2층 병동 약국으로 안내한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의료기관 중 최초로 지난 2021년 방역로봇을 도입하기도 했다. 방역로봇은 ‘스마트병원 선도 모델’ 감염 관리 과제를 위해 도입됐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고하거나 카메라로 마스크 미착용자를 인식해 경고한다. 야간에는 UV 살균 소독과 방역을 시행한다.

혈액이송로봇 '래비'(왼쪽)와 약제이송로봇 '피용'은 직접 혈액이나 검체, 약제를 배송하는 수고를 덜어줘 의료진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청년의사).
혈액이송로봇 '래비'(왼쪽)와 약제이송로봇 '피용'은 직접 혈액이나 검체, 약제를 배송하는 수고를 덜어줘 의료진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청년의사).

지하에 위치한 진단검사의학과와 약제팀 등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과 헬스체크업(건강검진센터) 등을 오가며 혈액이나 약제를 배송하는 로봇들도 있다.

혈액이송보롯 ‘래비’는 하루 4~5번 진단검사의학과 검사실과 헬스체크업 등을 오가며 혈액이나 검체를 이송한다. 수검자가 많은 오전에는 2차례 많은 양을 이송하고 중간에 필요한 시약이나 소모품 등을 나른다.

약제이송로봇 ‘피용’도 마감 시각에 맞춰 치료실, 주사실, 병동 등에 약을 배달한다.

이송로봇들이 혈액이나 검체, 약제를 배송하는 단순 업무를 맡으면서 의료진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대신 로봇 혼자 이송하기 때문에 비밀번호와 지정맥 인증을 도입해 보안을 강화했다.

김명신 임상병리사는 “선반을 열려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지정맥을 인증해야 한다”며 “누군가 강제정지 버튼을 누르거나 로봇이 경로를 이탈하면 곧바로 연락이 와서 다시 통제할 수 있다. 덕분에 직원들이 하던 일을 문제없이 맡기고 있다”고 했다.

약제팀 손가영 파트장은 “사람이 이송하던 일을 로봇이 맡다 보니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며 “로봇 대응 업무도 있어 일의 총량이 줄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업무의 방향성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잘 협업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편으로 약제를 보내면 언제 도착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송로봇을 이용하면)예상 도착 시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용인세브란스 디지털의료산업센터 박진영 소장은 의료현장에서 서비스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다양한 병원 환경에 맞춘 로봇 도입 사례가 늘어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용인세브란스 디지털의료산업센터 박진영 소장은 의료현장에서 서비스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다양한 병원 환경에 맞춘 로봇 도입 사례가 늘어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용인세브란스병원은 로봇에 호의적인 환자·보호자의 태도와 직원의 만족도에 주목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디지털의료산업센터 박진영 소장은 “로봇의 기능적인 부분보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로봇을 친근하게 생각한다는 점과 직원 만족도가 높은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용인세브란스가 시행한 로봇 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직원들은 서비스 로봇에 100점 만점에 전체 평균 72.7점을 줬다. 교직원들은 특히 키즈로봇(83.7점)과 벨보이로봇(82.1점)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외래 환자와 그 보호자는 가이드 로봇에 82.0점을, 소아병동 보호자들은 키즈로봇에 81.6점을 줬다.

박 소장은 의료 현장에 서비스 로봇 생태계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병원 환경에 맞춘 로봇 도입 사례가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여러 군데에서 로봇을 도입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 더 많은 서비스 로봇이 도입되려면 인프라가 부족한 병원 등 다양하고 특수한 환경에 맞춰 로봇을 운용돼야 한다”고 했다.

박 소장은 “병원 입장에선 인프라가 부족해 로봇을 도입하는 데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병원에 맞춰 IT 솔루션을 구축하는 기술이 무르익었기 때문에 병원 눈높이에 맞게 로봇이 도입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로봇 도입으로 어떤 부분을 해결할지 고민해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도 했다.

박 소장은 “병원의 미충족 수요를 어떻게 해결할지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예를 들어 '인력 부족으로 인한 반복 업무를 해결하고 의료진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방향성을 세우고 해결 방안으로 로봇을 도입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실망할 수도 있다. 로봇을 들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며 “명확한 목표와 방향성이 있어야 로봇을 운용하는 직원의 만족도도 크다. 그렇지 않으면 초반에 크게 실망해 도입이 좌절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 관제실에서 로봇 상황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청년의사).
중앙 관제실에서 로봇 상황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청년의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