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일상으로 들어온 로봇] ②삼성서울병원
산업용 로봇 개량해 200kg 물품 병동으로 이동
"다른 병원도 로봇 도입해야 삼성서울도 지속 가능"

의료현장에서 로봇은 그다지 새로운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로봇이 의사의 손을 대신해 환자를 수술하고 재활을 돕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병원 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에 청년의사는 로봇과 ‘소소한’ 일에 손발을 맞추고 있는 병원 현장을 찾았다.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는 밤 9시 30분부터 활동을 시작한다(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는 밤 9시 30분부터 활동을 시작한다(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학병원도 밤이 되면 한산 해진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에는 이 때부터 '그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병원 로비 불도 꺼지고 커피숍도 문을 닫는 오후 9시 30분,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복도에 하나둘씩 나타나는 '로봇 물류 사원'이다.

로봇들은 지하 2층에서 병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까지 이동한다. 무게만 200kg다. 사람이 할 일은 필요한 물품을 카트에 미리 채워 넣는 것뿐이다.

로봇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부르거나 카드키가 필요한 자동문을 대신 열어줄 필요도 없다. 로봇이 직접 신호를 보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문을 열 수 있다. 그렇게 병동에 도착해 지정된 장소에 물품을 배달하고,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온다.

로봇 물류 사원은 총 7대로 삼성서울병원 본관에 있는 병동 25곳에 진료 등에 필요한 물품을 배달한다. 그들의 업무는 새벽 4시까지 이어진다.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들이 AGV 스테이션에 정차해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들이 AGV 스테이션에 정차해 있다.

삼성서울병원 로봇 자동 물류화 시스템은 병동에서 발생하는 재료 낭비를 줄이기 위해 표준 수량을 정립하는 사업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병동에서 사용되는 재료를 계산해 하루에 병동별로 필요한 물품들을 카트 단위로 정리했다.

다음은 카트를 병동으로 배달하는 문제가 남았다. 단순한 업무에 특화된 로봇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됐고 지난 202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스마트병원 선도모델 개발 사업'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오는 3월부터는 본관뿐 아니라 새로 오픈하는 암병원 병동에도 이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청년의사는 지난달 28일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매일 병동을 오가며 병원의 물류를 책임지는 로봇의 여정을 따라가 봤다.

(왼쪽부터)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 AGV가 병동에 싣고 가는 카트
(왼쪽부터) 삼성서울병원의 물류 배송 로봇 AGV, AGV가 병동에 싣고 가는 카트

삼성서울병원에서 쓰이는 로봇은 ‘AGV(Automated Guided Vehicle)’로 산업용 로봇을 개조했다. 검체나 약제 등 가벼운 물품을 배달하는 의료 서비스 로봇은 있지만 200kg에 달하는 무거운 물건을 나르기엔 적절하지 못해 산업용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공장과 병원의 환경이 달랐다. 산업용 로봇은 공장 내에서 움직이는 반경이 좁지만 병원에서는 건물 여러 층을 오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엘리베이터 탑승 등 수직 이동 지원은 물론 엘리베이터와 복도 간 단차를 극복할 수 있는 바퀴 크기 재설계, 음성 안내 기능 삽입, 엘리베이터·자동문과 연계되는 커뮤니케이션 기능 개선 등이 필요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산업용 로봇을 개량했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델은 2세대로 L자 형태다. 1세대는 판 형태의 저상형 모델이다. 앞뒤 구분이 없는 1세대에 비해 2세대 로봇은 방향 전환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안전을 위해 모양을 바꾸고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우선 정면에 카메라를 설치해 AGV가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라이더 센서 3개를 부착해 장애물의 거리를 측정하고 AGV가 싣고 가는 카트 문이 열렸는지도 감지할 수 있다. 범퍼 센서를 탑재해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도 대비했다. 속도는 초당 0.8m 정도다.

AGV가 물품이 담긴 카트를 싣는 매직카트 스테이션(왼쪽)과 AGV 스테이션은 나란히 붙어있다(ⓒ청년의사).
AGV가 물품이 담긴 카트를 싣는 매직카트 스테이션(왼쪽)과 AGV 스테이션은 나란히 붙어있다(ⓒ청년의사).

AGV는 본관 지하 2층에 마련된 ‘AGV 스테이션’에서 충전하며 대기하다 오후 9시 30분이 되면 바로 옆에 있는 ‘매직카트 스테이션’으로 이동한다. 매직카트 스테이션에는 병동에서 필요한 치료재료 등 물품이 담긴 카트가 대기하고 있다. 성남시 물류창고에서 카트에 담길 물품을 미리 정리한 후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하는 형태다,

카트가 섞이더라도 주파수로 ID를 식별하는 전자태그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를 카트와 AGV에 설치해 이송할 카트를 제대로 찾아가도록 했다.

카트를 실은 AGV는 마그네틱 타입의 가이던스 라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 라인을 설치한 이유는 병동 등 좁은 통로에서 200kg이나 되는 카트를 싣고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인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AGV는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한다. 이를 위해 AGV와 엘리베이터 간 시스템을 연계했다. 도착한 병동에서도 병동 앞에 위치한 ‘Smart Door’의 셋톱박스로 신호를 보내 문을 연다. 이어 병동 안에 있는 라인을 따라 카트를 보관하는 곳에 도착하면 AGV의 업무가 완료된다.

이 모든 과정은 ‘스마트 통합 관제’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있다. PC뿐 아니라 태블릿, 모바일로도 가능해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즉시 대응 가능하다.

병동문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셋톱박스인 'Smart Door'(빨간 표시)가 AGV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병동문을 열어준다(ⓒ청년의사).
병동문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셋톱박스인 'Smart Door'(빨간 표시)가 AGV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병동문을 열어준다(ⓒ청년의사).

로봇을 활용한 자동 물류화 시스템은 무엇보다 병원의 효율성을 높였다. 병동에 필요한 표준 수량을 마련해 병동 재고와 비용 지출을 줄였으며 재고 관리 업무와 관련한 병동 간호사의 업무 부담도 줄었다.

삼성서울병원이 병동에서 재고 관련 관리를 맡는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걸리던 재고량 파악과 물품 정리 업무가 사라졌다. 기존에는 재고량 파악에 평균 29분, 물품 정리에 46.2분을 썼다.

혼잡한 주간 시간을 피한 야간 배송으로 수술 환자의 병동 도착 시각과 물품 도착 시각이 분리돼 수술 환자 케어에도 여유가 생겼다.

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은 “간호사들의 부담 중 하나가 어려운 환자를 받는 것뿐 아니라 부수적인 일들인데, 이를 덜어낼 수 있었다는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며 “특히 차지(Charge)간호사 같이 숙련된 고급 인력의 불필요한 업무를 줄일 수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엘리베이터가 부족해서 낮에 병동으로 물품을 이송했다. 그러다 보니 환자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돼 환자 입장에서 불편함이 컸으며, 실제로 여러 트러블도 있었다”며 “이번 사업의 부수적인 효과 중에는 환자가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없앤 것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은 의료현장 내 로봇 도입 활성화를 위해 로봇 제조 기업과 병원이 협력하고 정부가 로봇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 차원철 디지털혁신센터장은 의료현장 내 로봇 도입 활성화를 위해 로봇 제조 기업과 병원이 협력하고 정부가 로봇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 삼성서울병원).

차 센터장은 이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려면 삼성서울병원뿐만 아니라 더 많은 병원이 로봇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차 센터장은 “로봇 자동화 물류 시스템에 대한 문의는 많았지만 다들 지켜보는 단계"라며 “병동별 표준 물량을 계산하고 물류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많은 병원이 동감한다. 우리 병원만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병원에도 도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 센터장은 “혼자서 로봇을 도입하는 것보다 다양한 병원이 함께 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해도 도움이 된다”며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야 시장이 형성된다. 다른 병원도 로봇 도입에 참여해야 삼성서울병원의 시스템도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로봇 제조 기업과 병원이 협력하고 정부가 병원의 로봇 도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센터장은 “로봇 산업 관계자는 병원을 어려워하며, 가끔 ‘보따리 장사’ 취급받아 힘들어한다. 반면 병원은 로봇을 어려워한다”며 “병원 로봇에 대한 논의는 수술로봇에 집중돼 있다. 기술적으로 훨씬 쉬운 서비스·물류 로봇에 대해 병원과 업체들이 모여 공론화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병원에 로봇을 도입하기 위한 시드머니(종잣돈)을 제공하는 등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해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로봇화·지능화 정도에 따라 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어떤 형태로든지 인센티브를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 잘하는 곳은 더 잘하고, 미진한 평가를 받은 곳도 로봇 활용을 더 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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