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현 동안미소의원 원장

그날도 어김없이 암병원의 길고 복잡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병원의 복도는 환자들의 이야기와 운명이 교차하고, 각자의 고통과 희망이 얽히고설킨 곳이다. 그 무게만큼 나의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고, 그것을 이겨내려 괜스레 발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분명히 지쳐있었다. 눈부시게 비치는 햇살에 무심코 내다본 창밖에는 이름 모를 여름꽃이 피어있었다. 따뜻한 햇볕 아래 살랑거리는 여름꽃 풍경을 보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나를 그때로 돌려보냈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외과 주치의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자신의 병마와 맞서 싸우며, 매일같이 시련과 도전을 맞이했다. 하지만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바람처럼, 때로는 우리의 바람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녀는 50대 초반, 삶의 한가운데에서 위암과 복막전이(배 안을 덮고 있는 막에 암이 퍼진 상태)라는 너무도 무거운 진단을 받고 우리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그녀의 병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런 경우 수술을 통해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회복이 이루어진 후에는 더욱 험난한 항암 치료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 같은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보다 절망이 더 깊게 새겨져 있고, 나에게는 항상 부담이었다.

이윽고 문을 열었을 때, 그녀의 공간에서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녀의 야윈 얼굴에서는 병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왔지만,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내가 환자들에게 갖고 있던 이미지와 달리 여름 햇살 같은 밝음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제 주치의신 거죠? 제가 멀리서 왔고, 병원도 낯선데 잘 부탁드려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절망에 물들어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혹시 현재 상태를 잘 모르고 있나?'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를 묻고, 설명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또다시 대면하면서도 담담하고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내가 설명하는 동안 그녀는 진지하게 경청하며,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금잔화를 닮아 있었다. 밝고 아름답지만 숨겨진 슬픔과 아쉬움이라는 꽃말을 간직한 여름꽃.

이윽고 수술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새벽의 고요 속에서 수술 전 상태를 살피고자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잠을 잘 못 잤는데 괜찮겠죠?"
아무리 밝은 그녀라 해도 목소리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한잠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꿈처럼 지나가 있을 거예요."

어깨를 토닥이며 건넨 나의 말에 그녀는 약간의 안도감을 찾은 듯 보였다. 수술은 복잡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수술 전 검사 결과처럼 복막에는 전이가 보였지만 다른 장기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의식을 찾았을 때, 통증과 수술 후 연결된 여러 장치에 신음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역시 그녀답게 매일 방문할 때마다 표정은 점점 더 밝아졌고, 미소가 늘었다.

수술 부위 소독을 하면서 조금 오래 머물 때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현재 격려를 받기만 해도 모자를 텐데, 그녀는 나에게 얼마나 고생이 많냐며 격려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수술 후 넷째 날, 갑작스러운 복부 통증과 열로 그녀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고통을 줄이는 치료와 함께 긴급히 진행한 CT 검사에서 정작 수술 부위는 괜찮았는데, 가슴에 작은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추가 검사 결과, 이는 기존 위암이 퍼진 것이 아니라 별도로 생긴 유방암이었다.

지금도 심각한데 정말 하늘도 무심하게 '중복암'까지 겹친 것이다. 앞으로 힘든 항암치료를 이겨내기 위해 희망을 북돋아주지는 못할 망정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은 내겐 정말 무거운 짐이었다. 의사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이전에도 겪어 본 상황이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어 자주 오지 못하는 그녀의 남편에게 먼저 전화로 나쁜 소식을 알렸다. 내 말을 듣고 이어진 짧은 침묵, 이윽고 뗀 그의 목소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부디 아내에게는 아직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남편의 선한 얼굴과 아내를 아끼던 모습이 기억이 나 더욱 안쓰러웠다. 향후 치료 계획이 정해질 때까지 일단 환자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회진을 가서 그녀가 이끄는 밝은 분위기에도 나는 잘 웃지 못했다. 혈액종양내과와 협진을 하며 치료 방침 설정을 위해, 여러가지 검사들이 추가되었다.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예정되지 않았던 검사가 추가되니 당연히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수술 부위 소독 중에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선생님. 나 어디가 더 안 좋은 거죠? 선생님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게요.”
다음 날, 치료 방침이 정해졌고 유방암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그녀는 놀라움보다는 담담한 수용을 보여줬다.
"어휴. 유방암 수술하면, 그럼 더 안 예뻐지겠네."
그녀는 여전히 위트를 잃지 않았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고, 그녀가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

한편으로 중복암이라는 비전형적인 암의 경과가 있어서 수술 전 뼈스캔과 양전자단층촬영을 진행했다-이 검사들은 뼈와 신체의 다른 부분에 암이 퍼져있는지를 보는 영상 검사이다-. 복도에서 검사를 하러 가던 그녀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이전과 달리 불안함이 느껴졌다.

"또 안 좋은 것이 나오면 어쩌죠?"

그녀의 물음에 힘들지 않은 검사니까, 씩씩하게 다녀오라고 격려하며 손을 잡아주는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검사의 정식 결과 판독은 하루 이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내가 먼저 영상을 들여다 보았다. 창밖은 여전히 맑은 여름날이었지만, 어느덧 먹구름이 나만을 뒤덮고, 여름비로 내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먼저 나온 뼈스캔 결과는 불행하게도 뼈전이가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바빠서 저녁이 되어서야 그녀 곁으로 갈 수 있었다. 차라리 일이 덜 끝나서, 더 늦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녀의 곁으로 가는 길,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녀는 수술 부위 실밥 제거와 소독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피하는 나를 눈치챘다. 여느 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선생님, 저 괜찮아요. 말씀해주세요.”

나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고, 허리뼈에 안 좋은 소견이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상태를 설명했다.

"아, 그래서 요즘 내 허리가 아팠구나. 이제 이유를 아니 시원하네요."라고 그녀 특유의 유머와 함께 미소를 나에게 건넸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수술 부위는 깨끗이 나았다는 작은 위로뿐이었다.

다음 날, 양전자단층촬영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마치 대학 합격 여부를 확인하는 수험생처럼 실눈을 뜨고 판독 결과를 확인했다. 설마 잘못 봤겠지 하고 이번에는 두 눈을 힘주어 뜨고 봤지만 당연히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위암의 뇌전이 의심'이란 문구 앞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에게 비할 수 없지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내게도 큰 시련이었다. 병실에 들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 덕분에 괜찮았다는 상투적인 인사가 오고 간 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선생님. 검사 결과가 나온 거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정적이 우리를 감쌌다. 그녀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검사 결과는 나중에 다시 듣겠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조금씩 떨리는 뒷모습에 인사를 전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나는 물러났다.

그녀와 가족의 의견을 종합하여, 결국 추가 항암 치료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날 밤, 그녀는 당직 근무 중인 나를 찾아와 자신의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길 요청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검사 결과를 화면에 띄우고, 현재 상황에 대해 그녀의 속도에 맞춰 설명을 했다. 그녀는 검사 영상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뇌 전이 부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이렇게 꽃이 피었네요. 어쩜 이렇게 예쁘면서도 나쁜 녀석일까요?"

나는 그녀의 말 속에 드리워진 심정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가 직면한 한계와 그녀가 겪어야 할 고통과 관계없이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녀의 퇴원 전날 밤이 되었다. 그녀의 소망대로 퇴원 후에는 고향 집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병실을 방문했다.

"치료받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집에 가시면 이 답답한 병원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나의 모습에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

"천사 같은 선생님을 못 만난다니 벌써부터 쓸쓸한데요?"

그녀의 말에 비로소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수술 일정 때문에 그녀의 퇴원을 지켜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과 함께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사실 그동안 환자의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를 토닥이는 정도가 전부였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첫 만남의 악수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참 그녀답다’ 싶었다. 그 순간,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 닿았고, 내 등을 두드리는 손길은 내가 더 좋은 의사가 되길 바라는 그녀의 응원이었다.

‘꽃 같던 그녀는, 이제 저 멀리 어딘가에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있을까?’

병원 복도 창밖으로, 따사로운 햇볕이 여름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꽃들이 마치 그녀를 대신해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것 같아 지친 나의 마음에 위안이 스며들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꽃을 바라보다가 다음 환자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녀의 응원대로 더 좋은 의사가 될 것이기에, 무겁기만 했던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가벼워져 있었다.

수상소감 안상현 동안미소의원 원장

23회 한미수필문학상에서 제 글이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7회 한미수필문학상에서 "7분 24초의 통화기록"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지 15년이 넘게 흘러 다시 수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환자들의 아픔과 희망,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함께 했던 경험을 글로 적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환자들과의 경험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그분들과의 이야기가 제 머릿속에서 잊히거나 휘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많은 성찰과 배움을 얻게 됩니다.

"창 밖에 핀 여름꽃은 당신인가요?"가 의료계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공감과 위로를 제공하고, 점점 황폐해져 가는 의사-환자-사회 관계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저에게 큰 보람이자 기쁨일 것입니다.

이번 수상의 영광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미약품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항상 저를 응원해주는 아내와 딸 현서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수필 속 주인공 환자분을 잊지 않고 더 좋은, 더 나은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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