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준원 부교수

‘띠링’
휴대폰 알림벨이 울린다.
‘평안입니다.’

낯익은 메시지의 첫 문장이 보인다. 형준이 엄마가 보낸 메시지다. 형준이는 22살이지만 소아청소년과에 다니고 있다. 형준이는 부신백질이영양증으로 12년 전 진단받아 서울 쪽 병원을 다니다가 집 근처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나와 만나게 되었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은 희귀질환으로 긴꼬리지방산의 대사에 이상이 생기면서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비롯한 여러가지 전신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형준이를 만났을 때 이미 질환이 꽤 진행된 편이라 거의 누워 지내는 상태였다.

외래에서 만나는 형준이 엄마는 씩씩하고 밝아 보이셨다. 전임의를 마치고 내려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교수님 이라며 깎듯이 대해주시면서 정기적인 외래에 빠지지 않고 매번 오셨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진료가 그렇듯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보호자와 이야기하거나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는 어렵다. 형준이는 희귀질환에 점차 증상이 악화될 것이 예상되었고 완치를 위한 치료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외래에서 그간 상태가 어땠는지 간단히 묻고 몇몇 증상 조절을 위한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일상적인 진료의 풍경이었다.

한번은 형준이가 호흡기 증상이 심해 입원을 했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의 병세가 악화되면 밥을 삼키기 어려워지고 호흡도 쉽지 않다. 중환자실 치료를 거치며 형준이 부모님께 위루관과 기관절개를 추천드렸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이 아니더라도 삼킴이 어렵고 호흡이 어려운 아이들은 위루관을 해서 영양도 공급하고 기관절개를 해서 호흡도 용이하게 해준다.

물론 자기 아이의 목과 배에 기관절개나 위루관을 선뜻 넣겠다는 분들은 흔치 않다. 형준이 부모님도 마찬가지셨다. 아이 손가락의 거스름만 봐도 아픈 것이 부모 아닌가. 당연히 이해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의학적인 필요성을 강조하며 부모님께 꼭 하셔야 한다고 회진 때마다 설명드렸다. 결국 몇 년 지나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위루관과 기관절개를 시행하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그래도 형준이가 더 편해하는 것 같다며 위안을 삼으셨다.

이후 형준이 병의 경과가 점차 나빠지고 형준이 엄마의 걱정도 많아지면서 연락처를 알려드리게 되었다. 보통은 연락처를 잘 알려드리지 않지만 급작스런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알려드렸다.

2022년 초 미국으로 연수를 오게 되면서 과 내의 다른 교수님들께 진료를 부탁드리게 되었다. 그래도 형준이 엄마는 미국에 있는 나에게 간혹 형준이의 소식을 전하거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셨다. 그때마다 메시지의 첫 마디가 ‘평안입니다’였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나의 안부를 묻는 인사지만 왠지 형준이 엄마 자신에게 보내는 인사로도 느껴졌다. 물론 소식들 중 평안하지 않는 내용도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감사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형준이가 입원하면 여러모로 고생일 텐데도 감사하게 치료받고 있거나 퇴원한다고 연락하셨다. 형준이 엄마 본인이나 아빠가 아파도 치료를 잘 받아서 감사한다고 하셨다. 나도 비슷한 상황에서 감사한다는 말이 쉽게 나올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2023년 여름에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형준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외래로 오셨다. 형준이가 많이 보고 싶어 했다며 반겨주셨다. 오랜만에 만난 형준이는 스물둘의 청년이 되어 있었고 키도 더 커진 것 같았다. 형준이 엄마는 형준이 상태가 좀 좋아진 것 같다며 휠체어를 준비해서 마실을 다녀야겠다고 하셨다. 휠체어처방전을 작성해서 드리고 잘 다녀보시라고 했다. 그렇게 두어 번의 외래를 본 후 어느 날 핸드폰 벨이 울렸다. 형준이 엄마였다.

‘평안입니다.’라는 낯익은 인사가 아니라 ‘부고’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부고? 누가 돌아가셨나? 하며 메시지를 확인하니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형준이가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져 의자에 앉았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중에서도 대뇌소아형은 기대수명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살을 넘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막상 스물둘의 형준이가 하늘로 갔다고 하니 잘 믿겨지지 않았다.

형준이의 부고가 오기 몇 주 전부터 형준이 엄마의 문자가 몇 번 왔었다. 질문은 아니었고 형준이가 진단받고 이후에 돌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짧은 글로 보내주셨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이 모계유전이기 때문에 남몰래 속을 태우며 미안해 하셨고, 형준이가 희귀질환을 앓으며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과 가족들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게 되었다는 내용 등이었다. 십여 년 이상 형준이를 돌보며 어려운 일들이 많으셨겠지만 그 힘듦을 감사함으로 풀어내고 계신 것이라 느꼈다.

외래에서 형준이 엄마의 밝은 모습만 봤던 나로서는 그 이면에 있는 어려움과 고민들이 가슴에 와 닿으며 ‘평안입니다’란 인사를 하는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장례식장은 형준이 집 근처에 위치한 병원에 있었다. 빈소는 조용했다. 신을 벗고 들어가 형준이의 영정을 맞이하니 형준이가 하늘로 갔다는 실감이 났다. 국화를 한 송이 놓고 고개를 숙여 눈을 감았다. 의사라고 하지만 완치가 되지 않는 병 앞에서는 딱히 해준 것이 없는 것 같다는 미안함, 희귀질환이라고 이미 해줄 것이 없다고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 아들을 앞서 보낸 형준이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 등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다.

눈을 떠 형준이 부모님을 바라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부모님들은 아마도 한참을 울었을 퉁퉁 부은 눈으로 내 손을 잡아 주셨다. 그래도 형준이가 하늘로 가기 전에 가족들과 보고 싶은 분들은 만날 수 있었다며 엷은 미소를 띠며 이야기해 주셨다.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서며 형준이가 나도 보고 싶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연수를 다녀올 때까지 형준이가 기다려 준 건가 생각이 드니 고맙고 미안했다.

‘띠링’
며칠 후 휴대폰 알림벨이 울렸다.
‘평안입니다.’

형준이를 보낸 후 메시지를 보낸 형준이 엄마의 첫 인사는 동일했다. 형준이가 이 땅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형준이는 하늘로 보내고 가슴에 묻은 엄마의 마음을 내가 감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그 인사는 나와 형준이 엄마 본인에게 하는 것을 넘어 형준이에게 건네는 인사 같기도 했다. 여기서는 아프고 누워서 지내야 했지만 하늘에서는 맘껏 뛰어다니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고 항상 평안하게 지내라는.

형준이 이전에도 치료하던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건 매번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문득 전공의 시절 처음으로 떠나보낸 아이 아빠의 당부와 또 다른 희귀질환으로 떠나보낸 아이 엄마의 손편지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를 거울삼아 다른 아이들을 잘 치료해달라는,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의사이기에 눈물만 훔치고 있으면 안된다. 아픈 아이들을 위해 가슴으로는 아파하지만 머리로는 냉철하게 도움되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 봐야한다. 형준이를 보내며 다시 한 번 그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기대와 바램에 부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들을 위해 의사의 책무를 다하며 따뜻한 마음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평안입니다.’

수상소감 강준원 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온지 벌써 20여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과의 상황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변했지만 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은 여전히 있음을 매일 느낍니다. 동시에 여러모로 나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도 매일 알게 됩니다. 어린 생명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 질병으로 아픈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눈물로 돌봐 주시는 가족분들, 그리고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모든 의료진들이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신 청년의사와 한미약품,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끝으로 나의 힘이 되는 가족, 아내 은지와 딸 서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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