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천식알러지센터 소장

평양의 하늘은 맑았다. 심양을 거쳐 14시간 만에 도착한 평양을 바라본 나의 첫 소감은 이랬다. 서울에서 차를 몰아 달려도 두어 시간이면 족한 길을 이렇게나 멀리 돌아오니, 그간 일과 연구에 바빠 한 번도 제대로 생각지 못했던 분단국가라는 내 시대의 현실이 체감된다.

나는 지난 9월 27일부터 약 일주일을 평양에 머물렀다. 통일부 정책사업의 하나인 ‘북한 의료진 교육사업’에 초청받은 것이 그 이유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미처 고민해볼 새도 없이 대뜸 참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의 이름난 의료진을 만나볼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했던 것이 그 이유였고, 북한의 의료 현실을 견학해보고 싶었던 것이 두 번째이며, 무엇보다도 내 분야의 일로 북한에까지 초청되는 것이, 내가 이 분야에서 지금껏 성실히 일하여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승낙을 해놓고 나니 그제야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그간 다소 경직된 국가로 비춰진 북한이지만 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나름의 노력을 해 왔을 것이다. 교육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의사로서 흥미로운 견학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교육 사업”이라는 표면적인 목적도 좀 부담스럽다. 혹자는 한국의 현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바삐 속단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날 사람들은 나름 북한 의료계의 권위자들일 텐데 교육이라니. 그냥 교류 정도로 타이틀을 바꾸자는 제안은 내내 머릿속에만 맴돌고 끝내 하지 못했다.

평양에 도착한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이라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려고 아침 일찍 양각도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대동강 둔치와 그 주변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정비되어 있어서 그 유유함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엔나를 흐르는 다뉴브 강의 흐름을 연상케 했다.

만경대와 김일성 주석 생가를 거쳐 평양 시내를 구경하고 나니 그제야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 와있다는 실감이 났다. 평양에는 교통신호등 대신 교통보안원이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고 차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 없이 통제되고 있는 평양 시내를 보고 있자니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 시내에 가득한 자동차들이 마치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평양의학전문학교(평양의전)에 도착하여 북한의 인민 의사 칭호를 받은 흉부외과 전문의 류환수 선생의 환대를 받았다. 류환수 선생은 평양의전에서 40년을 근무해 온 분으로 언변이 뛰어나고 품위가 있었다.

현직으로는 유일한 인민 의사이자 과학적 성과가 뛰어나 공훈 의사라는 칭호도 겸한 분이다. 나 역시 한 평생 한 분야의 공부를 해온 만큼 그것이 다소 신기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국가에서 부여하는 칭호라는 것은 쑥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섰다.

점심 식사 후 한숨 돌리고 난후, 본격적으로 공동 컨퍼런스가 시작되었다. 40여명의 소아과 의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참석한 의사들의 명찰에는 하나같이 ‘정성’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그것을 보니 우리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어쩌면 등한시해버리는 것을 이들은 표면화하고 선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그렇게 매우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집단이 함께 하여 이론 토의(강의)가 시작되었다.

기대했던 바와 다르게 북측의 의사들로부터 질문은 없었다. 임상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대화와 소통이 가능했지만 북측 의료계에서는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듯 했다. 연구적인 부분에서는 토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측의 박미란 선생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소아과 학회를 하며 초록집을 출간한다고 하였다.

기관천식 치료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양측이 동일했다. 그러나 지속성 천식치료의 가장 중요한 장기간 유지요법(maintenance therapy)에 있어서는 관점의 차이가 확연했다. 내가 궁금하게 여겼던 장기유지요법에 대한 설명이 없어 질문했더니, 그때까지 쾌활하고 똑 부러진 인상을 보이던 박미란 과장이 대뜸 “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닙네까?”하고 퉁명한 소리를 했다.

남측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장기유지요법에 사용하는 흡입용스테로이드(Inhaled steroid)가 없어 유지치료를 하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나중에서야 확인한 사실이지만 북한 최고의 대학병원에서조차도 유지치료와 완치에 대한 개념이 적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들이 주목하는 ‘효율적인 의료’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인 것은 이들의 반응이었다. 장기유지치료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이라고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하는 것, 그것은 자조적인 것을 넘어 체념에 가까운 반응이다.

사실 의료계의 업무라고 해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우선이다. 다만 어찌되었든 생명을 대하는 일인 만큼 인간을 모든 판단과 가치의 최우선으로 놓을 뿐이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이것이 우리일의 기본적인 정체성이다.

하지만 이곳의 의사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서로 교류하는 일정 내내, 이러한 차이점이 우리로 하여금 북한의 의료 현실에 대해 우려와 연민을 느끼게 했다. 우리로서야 최대한 조심한다고 언행을 삼갔지만 저들의 열등감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가끔 도전적인 질문, 우리를 떠보는 듯한 언행, 그래봐야 남측 의료 수준도 완벽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끌어 가려는 분위기가 잦아졌다. 그럴수록 내 마음에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짙어갔다. 그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같은 의사가 살피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들을 이해하랴 싶었다.

남한의 지원으로 평양의전 부속 소아병원이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온 김에 환자들을 한 번 보고 싶던 차에 진료 한번 보시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진홍이라는 초등학생 또래의 천식 환자를 마주했다. 한눈에 봐도 또래보다 작고 까맣게 보여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심한 천식을 앓고 있었다.

오랫동안 전신적 스테로이드(Systemic steroids)를 사용하여 성장 장애의 징후가 뚜렷했다. 북측 의사에게 물으니 폐렴으로 입원 중이라 했다. 소아의 경우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천식발작이 가장 흔한 것인데 그런 환자들을 모두 폐렴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명확한 천식 치료 가이드라인만 있었어도 무난하게 관리 받으며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으리라.

며칠 동안의 경험으로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현실을 눈으로 보고 나니 의사로서 느끼는 감회는 무거웠다. 북한에 비해 남한의 의료수준이 뛰어나다는 우월감, 또는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서로 협력해야할 당위성을 절감했다.

진홍이는 씩씩한 아이였다. 오래 앓은 아이답지 않게 눈망울이 말똥했다. 자신의 상태를 염려하거나 자신의 병에 대한 예후를 궁금해 하는 기색도 없었다. 아이들은 이렇다. 의사를 자기 병의 든든한 지원군 또는 믿음직한 영웅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늘 내가 의사인 것이 새롭다. 비록 오랫동안 곁에서 이 아이를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따스한 마음을 담은 손길이야 아낄 것이 없었다.

예정되었던 평양의전 부속 소아병원의 컨퍼런스는 무사히 끝났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많이 발전된 조건에서 활발한 연구와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기를 늘 바랄 뿐이다.

얼마 전 소아천식 공동연구차 내몽골 지구를 방문하였다. 산업화가 한창인 사막 도시에 호흡기 질환이 급격히 늘고 있었다. 환경과 기후로 인한 질환을 여러 나라가 공조하여 연구하니 이제 의료도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통합되어 가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준비하는 딸아이도 함께 했다. 본격적인 의사가 되기 전에 여려 경험과 견문을 통해 봉사하는 마음을 갖겠다는 본인의 의지였다.

일정을 주도한 것은 우리 한국 팀이었으나 참가자 중에는 연변 일대의 젊은 의사들이 많았다. 말씨나 연배 특히 까맣고 작은 체구를 보니 평양에서 만난 진홍이가 아른거렸다. 저 만한 또래려니…나는 일정 내내 그 젊은이들과 자주 어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현지에서 의료봉사에 바쁘던 딸에게도 이런 내력을 이야기했다. 아비이자 선배로서 뭔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이런 경험을 전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딸아이도 북한 어린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 눈치였다.

문득 나는 이곳 드넓은 내몽골의 평원을 바라보았다. 제2, 제3의 진홍이를 위해 딸과 함께 북한 어린이들을 돌보는 미래를 꿈꾼다.

수상소감 김창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천식알러지센터 소장

수상의 기쁨을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과거 통일부 정책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북한의료진 교육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평양의전을 방문했을 당시 보고 느낀점과 소감을 기행문과 보고문학 삼아 수필로 써 낸 것이 수상까지 이어져 기쁩니다.

북한 의료 현장을 견학하고 그곳 의료진들과 컨퍼런스를 하면서 직접 진료를 한 장면과 함께 민족적 동질감과 의료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분단국 국민만이 가져볼수 있는 양가감정을 표현해본 글이었습니다.

학회나 의학교류를 위해 많은 나라를 방문했지만 한국말로 대화할수 있는 국가는 북한이 유일합니다.

평양에서의 며칠의 경험은 지금도 선명하며, 나의 경험과 지식이 북한의 천식아이들을 위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었습니다.

대학병원 교수로 천식알러지센터에서 진료와 연구를 하며, 우수논문상이나 학술상도 받아봤지만 문학상 수상은 또다른 감동과 보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정년이 몇년 남지 않았는데 이번 수상은 나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한미수필문학상 주최측과 주관해준 청년의사에 고마움을 전하며, 본 행사가 우리 의료계에 문학적 감수성과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주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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