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희 도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진료원장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근무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기존에 7년가량 근무하던 지역에서 나를 따라 이동한 환자들이 내 전체 환자 중 상당수를 차지한다. 자가용이 있으면 몰라도 그 지역에서 현재 병원까지의 거리는 왕복 2-3시간이 걸리는, 꽤 오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위치다.

이렇게까지 환자들이 나와 함께 치료를 이어가려 노력한다는 것은 나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사자들에게 직접 확인해 봤을 때 환자들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환자 A : “선생님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믿는다가 100%라면 한... 3%”
환자 B : “전 선생님을 믿을 수는 없어요.”
환자 C : “저는 선생님을 다이어리라고 생각해요. 무생물이요.”

환자 A와 함께 한 시간은 4년 정도다.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말이 통해서 좋다고, 다른 사람들이랑은 말이 안 통한다고 했던 A가 나에 대해 가지고 믿음은 3%라고 말했다. 자신도 당황스러웠던 건지 A는 멋쩍게 웃었다.

환자 B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서울의 유명 과자점에서 한정판 초콜릿과 멋진 케이크를 예쁜 손 편지와 함께 주며 "선생님, 파이팅!"이라고 응원해 주던 환자다. 나를 믿지 못한다고 말한 뒤에 미안했는지, 다음 진료 시간에 앞으로 선생님을 믿으려고 노력하겠다는 편지를 정성스레 써왔다.

마지막으로 환자 C도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절대 나누지 않을 이야기들을 한 사이였지만, 그건 내가 무생물이라 가능했던 거였다. 세련된 이미지의 무표정한 C가 던진 ‘다이어리’라는 말에 나는 묘하게 의기소침한 심정이 되었다.

환자들이 나를 신뢰할 것이라는 생각엔 근거가 없진 않다. 여느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그러하듯이 우리는 만날 때마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환자들이 자신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함께 발견해 왔다.

게다가, 환자들이 나를 따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와 준 것은, 그들이 그만큼 나를 의지한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내가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머쓱해졌지만, 한편으론 환자들의 입장에선 참 불안했겠구나 싶다.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면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와 면담을 할 때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전혀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거나 눈물이 나오면 불안해했던 것이구나.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지라, 환자 입장에서도 그런 상황이 답답하거나 혼란스러웠을 수 있다. 실제로, 나를 믿지 못한다고 말하던 어떤 환자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퍼했는데,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자신이 나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에 깊이 상처를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도 믿지 않지만, 믿을 수 없기에 그들은 슬퍼하고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환자의 기밀을 누구에게도 누설하면 안 되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꽤 오랜 기간 함께 한 치료자조차도 그들은 믿을 수가 없다.

나의 전공의 1년 차 시절, 처음 의국에 들어가 느꼈던 당혹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윗년차와 교수님들은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이 속해있는 거대한 시스템은 인간적이지 않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박탈되는 환경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랫년차의 감정을 신경 써준다는 사치를 부릴만한 환경은 절대 아니었다. 쏟아지는 업무와 급변하는 환자들, 응급실과 병동에서 쏟아지는 콜에 나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윗년차들은 나를 맹렬히 트레이닝시켰다.

아침 회진을 돌고 나의 선택과 판단들을 윗년차들이 평가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만은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잠도 못 자고 온 병원을 돌아다니고 면담하며 보낸 어제 하루에 대한 성적에 대해 1시간 동안 신랄하게 평가받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눈물이 나거나 화가 나기 일쑤였는데 그런 감정을 달래주는 때도 가끔은 있었지만 대개는, 스스로 추스르고 오늘의 업무를 해치우려 출동하곤 했다.

나의 감정을 달래줄 수 있는 대상은 의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수직적인 사회 안에서 가끔 하는 회식은 업무의 연장 선상일 뿐, 아랫년차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아주신다면, 그 시간에 병원에 남아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더 맞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 맘 때의 나는 인간에게 다소 적대적이었고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으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외로웠다. 그러나, 가끔 위로가 되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조증 상태의 화가 할아버지 환자에게 내 색연필을 내어드렸을 때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시던 순간, 난폭한 치매 할머니 환자가 증상이 호전되어 매일 꼬집어 뜯기만 하시던 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넌 코만 하면 되겠다.'라고 말하여 간병인과 함께 빵 터지던 순간, 외래에 약을 타러 왔다가 나와 마주쳤을 때 반가워했던 환자들의 얼굴, 직접 농사지은 참외를 고맙다며 한 바구니 가지고 오셨던 보호자분.

나의 노력에 감사해 주는 사람들, 나에게 진심 어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존재는 내가 수용 받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계속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인간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며 경계 태세가 되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 그런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이완이 되는지 극명하게 느껴봤기에 나를 믿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 또한 이해한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곳이 아니다. 무언가 믿었다간, 의지하려고 했다간 실망하고 상처받을 게 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과거의 내가 그러했듯이 믿지 않는 게 맞는 거다.

그러나 나는 안다. 환자들은 두려운 마음을 안고서도 나를 믿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 또한 그들이 나를 믿을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의 관계 안에 변화는 계속 일어나는 중이다.

환자 A와 나는 한 팀이 되어 노력한 결과로써 3%라는 신뢰를 형성했으며, 나는 이를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A와 관계를 맺은 인물 중 가족을 포함해서 아직 거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현재까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자 B는 나에게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나는 B가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B에게 확인시켜 주는 중이다.

B는 우리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상대방보다 자신의 욕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 나가는 중이다. 평소 진료실에서 눈물이 나면 무척 당황해하던 B가 지난 치료 시간에 눈물을 담담히 닦으며 의연하게 나의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환자 C는, 나를 다이어리에서 안전한 장소(safe place)로 승격시켜 주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하고 힘들었기에 집에서만 머무르던 C는 현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몰아치는 업무량과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중이다.

과거에 내 환자들에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그들에게 전달하려 하는 나의 마음이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는 본능적으로, 환자에게 다가간다. 나의 환자들은 훌륭한 스승님의 가르침보다도, 무서운 선배의 위협적인 지시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이끈다. 그들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겪은 일들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함께 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밀해진다.

함께 울고 웃는 순간들은 점점 늘어가고 깊은 감정을 나누다 보면 친밀함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자라나 버리니까. 환자마다 친밀해지는 속도도, 친밀함을 표현하는 형태도 다르지만, 그것은 결국 믿음이 자라나고 있음을 뜻하기에 나는 그런 변화를 감지할 때마다 안도한다. 환자들이 나와 함께 해주었던 순간들이 그랬듯이, 그들이 치료자와 나누는 친밀함이 해독제로 작용하여 그들을 방어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나듯 믿음이 자라나면 그들은 더 이상 나를,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개인일 때 취약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면 든든하고 의지가 되며 편안해진다. 환자들이 과거에 혼자라고 느꼈던 나를 돌봐주었듯이 이제는 내가 그들을 돌봐줄 것이다.

수상소감 박미희 도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수상 소식을 확인하던 당시, 저는 병원에 출근하여 원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진료 시작 10여분 전이었던 것 같아요.

컴퓨터 모니터를 곁눈질하며 메일을 확인하던 제가 어! 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보고 책상을 넘어와 진료실 모니터를 보던 원장님은 저와 함께 기쁨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임미정 원장님과 함께 한 지난 2년이 저에게는 큰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어렴풋이 느끼기만 할 뿐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우뇌같은 저에게 좌뇌 역할을 해주시는 원장님이 있었기에 새로운 공부도 용기를 내어 시작할 수 있었고, 감정을 언어화하여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이렇게 상도 타보고 수상 소감도 말해봅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구나, 그렇기에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고마운 선물이구나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원장님이 저를 바꾸어 놓으신 것처럼, 지금까지 만나왔던 환자분들은 제가 환자를 좋아하는 의사가 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좋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 그리고 도담 정신건강의학과 식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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