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석 신제일병원 원장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을까요?“

가쁜 숨을 몰아쉬던, 환자는 병실을 나가던 내 손을 꼭 잡았다. 검고 거친 피부, 움푹 파인 볼과 앙상한 손가락 그리고 주위를 떠도는 오래된 냄새가 곧 다가올 할아버지의 죽음을 암시해 주는 듯했다. 마지막을 향해 쏜살같이 지나가던 시간도 잠시 멈춘 그 순간, 간절한 염원을 담은 그분의 새까만 눈동자만이 어두운 병실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2차 병원의 내과 의사로 20년 넘게 근무하다 보니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유언 같은 소원을 자주 듣곤 한다. 보통의 그것은 낯선 곳으로 여행,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소망 그리고 맛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갈망 등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 같은 것들이기도, 또는 가족들과의 평범한 아침 식사, 매일 지겹게 출근하던 직장으로 복귀,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아마 죽음의 순간을 마주한다면 내 소원도 그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할아버지의 소원도 별반 다르지 않게 그 언저리 어디쯤엔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예상은 한참이나 빗나가고 말았다.

소원이란 말을 막상 꺼냈지만, 할아버지는 주저하고 있었다. 어쩌면 담도암이 폐까지 전이되고 흉수까지 차 거친 숨을 고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격자무늬의 병실 천장을 응시하던 그분의 눈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

”부탁을 말씀해 보세요. 가능하면 들어드릴게요.“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던 난 대책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긍정의 신호에 마디숨을 내쉬던 그분도 용기를 내서 예상치 못한 소원을 천천히 꺼내놓았다.

"실은 어렸을 때 철부지 짓을 좀 했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모두가 그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등에 문신을 새긴 적이 있습니다. 그걸 지우고 싶어서요.“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이나 그도 아니면 편안한 죽음에 대한 욕심도 아닌 그저 몸에 새긴 작은 문신을 없애고 싶다니. 의아했지만, 사연이 있을 법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이윤지는 몰라도 왜 진즉에 없애지 않고 이제 와 그걸 지우려고 하시나요?“

회한이 섞인 눈빛을 허공에 고정한 채, 긴 한숨을 내쉬던 할아버지께선 그간의 삶에 대한 감춰진 이야기를 내 앞에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제 삶이 너무 고달팠습니다. 젊은 날 한때의 방황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좁을 수밖엔 없었어요. 계절이 지나는 것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모른 채 지나가 버린 시간은 제게 문신에 대한 존재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 서니...”

문신을 떠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고 굽이치던 그 분의 삶, 종착역에 다다라서야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때 생각난 것이 등에 새긴 젊은 날 어둠의 표식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죽고 나면 염(殮)을 할 텐데 문신이 맘에 걸려요. 제 딸에게는 못났던 아빠의 과거를 보이고 싶지 않아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심정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누군들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보여주고 싶을까, 하지만 약속과는 다르게 난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엔 없었다.
할아버지의 병환이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산소 공급장치를 코에 낀 채 언제라도 숨이 멎을 수 있는 분을 피부 시술 때문에 병원 밖으로 모시고 나간다는 건 불가능해서였다. 다음날부터 할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은 더 강해졌고 급기야는 식사를 거부하면서까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어휴! 법 없이도 사셨던 분이 그깟 문신이 무슨 대수라고. 제발 몸 상하기 전에 식사라도 좀 하세요.“

침상 곁에 계시던 할머니의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다행히 며칠 동안 계속된 할머니의 끈질긴 설득과 간호사들의 달램으로 고집을 꺾으셨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께선 회진 때면 늘 내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할아버지의 등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오랜 침상 생활로 생긴 욕창 때문이었다.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엎드리게 한 후 등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지우기를 열망하던 어떤 문신이나 젊은 날의 잘못에 대한 표식은 아니었다.

긴 시간 반복되어 긁히고 헤어진 상처 위에 덧대어 생긴 노을을 닮은 붉고 두꺼워진 피부뿐. 쉼 없이, 오랜 세월 묵묵히 짐을 지고 나른 탓에 그곳엔 아버지로서의 무게만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난 그분의 등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여 드렸다. 그러자 말없이 사진을 보던 그분은 빙그레 웃음을 띠셨고, 며칠 후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50년이 넘도록 자신과의 선한 싸움을 싸운 할아버지, 과거를 되돌릴 순 없었지만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온 그분의 삶이 진한 여운을 남기는 밤이었다.

돌아오는 길, 나도 그간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분명 그 길 위에는 화려한 꽃들도, 잘 자란 나무도 그리고 예쁘게 꾸며진 조형물들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군데군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응달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의 문신과 같은 것이 숨겨져 있었다. 감추고 싶고, 드러내 보이기 싫은 그리고 차마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들이.

벌써 내딛는 발 앞엔 어둠이 내린다. 앞으로 남은 길을 가면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덕지덕지 문신으로 뒤덮인 길은 아니어야 할 텐데. 오늘 밤의 진한 여운이 가시기 전에, 과거에 대한 후회로 점철되거나,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며 감추기에 급급한 길 대신,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길을 선택해야겠다.

비록 힘겨운 싸움이겠지만 그로 인해 생긴 상처와 딱지들로 잘못 새겨진 문신들이 가려질 만큼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길의 끝에 섰을 때 뒤를 돌아보며 웃을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길 소원한다.

어느덧 내가 향한 길 위엔 어스름한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가을은 제법 이른 저녁이 온다. 노을이 서서히 내려앉은 그 길 위엔 오래전 할아버지의 등에서 보았던 검붉은 세월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지고 있었다.

수상소감 박관석 신제일병원 원장

상을 받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네요. 먼저 기쁨을 선사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한미약품에 그리고 글을 계속 쓰도록 힘을 준 애독자, 제 아내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지방 소도시 내과 의사의 주 고객은 노인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의 임종을 곁에서 지킬 때가 많았고, 또 유언 같은 마지막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중 기억에 오래 남은 말이 있어 수필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등에 문신을 새겼던 한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젊은 날의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흔적을 없애 달라던 그분의 유언을 들으며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어떤 것들에 미련이 남을까? 그리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까? 현재의 나에게 던지는 이런 여러 가지 물음 앞에 서게 되었고, 글을 쓰며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답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었을지도.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란 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중략)

그 누군가는 내 삶을 보며, 그리고 내가 남긴 족적(足跡)에서 무엇을 읽고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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