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 박지욱신경과의원 원장

길 떠날 시간을
내가 택할 수 없으니,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네
이 암흑 속에서.

사랑스러운 사람, 잘 자요!

밤 인사(구테 나흐트 Gute Nacht)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중 제1곡

“당신 누구야? 의사면 다야?”
“저는 주치의삽니다.”
“주치의? 니같은 인턴 나부랑이 말고 박사를 불러와 박사말이야!”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나? 환자 동생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환자 데리고 실험하는 것 집어치워, 죽은 사람 데리고 장난치지 말란 말이야!”

악을 쓰고 대드는 이 사람의 거친 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배어 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나를 잡고 흔드는 동안에 뒤에 서있는 보호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날 더러 식물인간이 되어도 좋으니 환자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그들이 아닌가?

“누가 죽은 사람 데리고 장난친다는 겁니까?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못 들은 척해야 하는데 그만 내가 말을 되받고 말았다.

“그러면 느그들이 다 죽은 사람 델고 인공호흡기 돌리네, 좋은 약 쓰네 카면서 하루에 입원비를 수 십 만원이나 받아 처먹고 결국 환자 서서히 죽이는 짓거리가 아이고 뭐란 말이고? 어디서 눈까리 까디비고 치다보고 있어, 새파란 기. 니 몇 살 처묵었어?”

‘참아야지’
마음 속으로 큰 숨을 한번 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까지 나랑 환자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그 보호자는 일군의 무리 맨 뒤에 서있다.

“저기 계시네, 아드님!”
“……예……”

다 기어가는 목소리다.

“어찌된 겁니까? 최선을 다해보기로 해놓구선, 지금 이 사람이 나타나서 말하는 건 뭡니까?”

이 사람이라는 말에 그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거칠게 나에게 몸을 부딪쳐온다.

“야, 야! 나한테 이야기해라!”

대답 대신 애써 그를 외면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집안 어르신들이 객사(客死)하면 안 된다캐서예. 다들 상의해서 이제 그만 집으로 모시기로 결정했심더. 지송하고예……”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 그렇게 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아직 마지막 순간이 아니다. 포기하기는 이르다. 환자는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고, 아직은 살아있다. 물론 스스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혈압도 낮다. 이런저런 약과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바이탈은 간신히 유지하고는 있지만 언제 마지막이 올 지 나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지금 객사를 모면하겠다고 호흡기를 떼어내고 투약을 중단하고 퇴원하면 환자는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둘 것은 분명하다. 그게 정말 객사가 아닌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환자에게서 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은 환자를 죽으라고 내팽개치는 것입니다. 보호자분들의 답답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안됩니다. 만약에 환자분이 심장마비가 오고 돌아가실 것이 거의 분명해지면 원하시는 대로 집으로 모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남자는 내게 고함을 고래고래 지른다. 밤 10시 중환자실 앞에 사람들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그것으로 일이 잘 무마되었는가 했는데, 새벽 3시에 당직실의 어둠 속에서 삐삐(휴대용 무선 호출기)가 울렸다. 중환자실 안으로 보호자들이 들어와 난동을 부린다는 연락이다.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그 남자다. 나를 불러오라고 간호사들을 닦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제 밤보다 술에 더 많이 취해 있다. 아예 환자의 침상 앞에서 큰소리를 내며 난리를 피우고 있다.

나는 그를 애써 외면하고 환자 곁으로 갔다. 호흡기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환자의 가슴에 공기를 밀어 넣고 있다. 심전도 그래프도 정상이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 환자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한바탕 소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어찌 해야 하겠는가?

바로 그때였다. 환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냐, 환자는 완전히 혼수상태인데… 이 상황을 절대 알 리가 없어. 종종 중환자실에 보이는 그런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 혼수상태의 환자들도 종종 눈물을 흘리기도, 하품을 하기도, 그리고 빙긋 웃어 보이기도 하잖아? 아냐! 그래도 혹시 환자가 다 듣고 있는 건가? 그럼 이건 좋아질 징조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남자가 이젠 인공호흡기 앞으로 다가가서 호흡기를 제거하라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격한 감정의 파도가 이젠 내게 넘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내일, 아니 오늘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당신하고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그는 나와 옥신각신하려고, 아니 끝장을 보려고 이 시간에 중환자실로 처들어 왔다. 보호자가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텐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호흡기 떼주까요?”
“그래, 이지 알아들어 묵나? 빨리 떼라.”
“그래요, 그럼 보호자가 직접 떼소! 이것 떼면 환자가 숨 못 쉬어서 죽는 것이니 보호자가 직접 하소. 그리고 한가지 더, 이것은 간접 살인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경찰에 연락할 거요. 경찰 입회 하에 호흡기를 뗄라면 떼소.”
“뭐, …. 이 새끼가, … 살인?”

살인, 그 말에 화가 폭발한 그는 내 멱살을 잡았다. 잠자코 멱살을 그에게 맡긴 채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도, 나도 모른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분노로 가득한 그의 눈 속에서 나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도 나도 서로 방향만 다를 뿐, 저 끔찍한 죽음과 맞서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애원하고 우격다짐을 해본들 죽음은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가 정한 길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해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길로 가기 전에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하지 않겠는가!

자 이제 어떡할까? 멱살 다음 순서는 주먹인데. 주먹으로 서로의 눈을 쳐버릴까? 그도 아니면 힘껏 서로를 내동댕이쳐버릴까? 그렇게 해서라도 죽음이 자신의 흉폭함을 깨닫고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양보를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향한 날 선 눈빛을 거두고 서로 안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을 텐데…

바로 그때, 언제 왔는지 모를 딸들이, 여태껏 잠자코 서서 이 거친 장면의 목격자가 되어준 딸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래 누구인들 부모에게 이러고 싶을까? 다만 희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쌓이는 입원비 중간 정산 청구서 때문에, 무겁고 팍팍한 현실이 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니 그런 것이지.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에도 수십 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얼마나 서러울까? 죽음이 서럽고, 가난이 서럽고,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실 어머니가 불쌍하고……

엉엉 우는 딸들을 따라 가족, 친척 모두가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꼭 한 번은 목놓아 울고 싶었다는 듯. 그 울음소리에 내 멱살을 움켜쥔 우악스러운 주먹에 힘이 빠져나간다. 누군가 나서 그의 손을 내 멱살에서 떼어낸다. 이제 보호자들은 조용히 나간다. 그 남자도 뒤를 따라 눈물을 훔치며 나간다. 우락부락해 보였던 그의 어깨는 메마른 가지처럼 힘없이 흔들린다.

환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양측 모두 같은 것을 원했다. 한쪽이 져야 다른 쪽이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보호자의 반대편에 서야 했다. 우리가 환자들의 편에 서있다고 믿기 때문에. 환자는 말도 못하고 의식도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모르고 있는 허깨비 같은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는 한다. 과연 나는 잘 한 것인가? 새벽에 벌어진 이 싸움에서 얻은 작은 승리가 순리적으로도 잘된 일인가?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잘 된 것이고, 무엇을 위해 잘 못된 것인지 말이다.

불콰해진 목을 쓰다듬어본다. 조금 쓰라리긴 하다. 시간이 벌써 네 시가 다 되어간다. 내일 아침에 잘 일어나야 할 텐데… 목 한번 캑캑거려보고, 물 한잔 얻어 마시고 당직실로 올라간다.

‘환자분 오늘은 그냥, 잘 주무세요……’

밤 인사가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다. 비상구 계단 끝에서 새벽이 기지개를 켠다.

수상소감 박지욱 박지욱신경과의원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막상 상을 받게 되니 보호자에게 그런 막말을 한 제자신이 참 부끄럽기만 합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30년 전의 진료 환경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만 해도 뇌졸중 진단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환자 대부분 수일 내에 사망하거나 살아남아도 식물인간 아니면 평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원상 회복은 꿈도 못 꾸는 불치병이란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지요.

제가 전공의 1년차로 일하던 시절은 이제 새로 출범한 신경과가 뇌졸중을 치료가능한 병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던 때였습니다. 저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심정으로 환자를 돌보다 보니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환자에게 가장 소중한 보호자들조차 안중에도 없었네요.

사실 이런 저의 태도 때문에 보호자들과 갈등을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보호자들에게 할 수 있었던 건 나만 옳다는 생각, 어쩌면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저 같이 부족한 의사가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상을 주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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