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윤 정신과전문의

앗, 하는 순간에 열 개도 넘는 빈 반찬통이 찬장에서 우르르 쏟아진다. 얼마 전까지 갈비찜이며 장조림, 내가 좋아하는 물김치와 우엉볶음 등이 들어있던 반찬통이다.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전부 다른 반찬통이 다시 쏟아지지 않게 가지런히 쌓으면서 마치 내가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양과 색깔이 각각 다른 블록을 빈틈없이 쌓는 그 게임 말이다. 그 순간 날카로운 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지금 우리 애가 이렇게 게임만 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세요?”

내 앞에서 항의하는 어머니의 아이는 부모와 싸우고 자해한 후 집을 나갔다. 원래 모범생이었던 아이는 엄마 아빠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학원 선생님에게 했다고 한다. 진료실에 먼저 도착한 어머니는 나중에 아이가 오면 아이에게 게임을 더 하지 말고, 차라리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에 운동을 하도록 말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한다.

가출하기 전에 학원 선생님에게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호소이다. 부모가 절대로 그 존재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집을 나간 것일 테고.

그런 아이에게 원하지도 않는 운동을 게임 대신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어머니는 듣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 상황에서 정답은 누구나 알지 않을까. 지금은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그 어머니가 방문했을 때 나는 학원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부모는 듣지 않는 말을 들어주는 학원 선생님. 그런 학원 선생님이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지 나에게 부모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는 부분이 있었으면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좌절되는 동안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도 알았으면 했다.

신참 전문의의 순진함이 낳은 오판이었다. 어머니는 학원 선생님이 부모와 상의하지 않고 아이와 상의해서 수시와 정시 전략을 짰고, 공부에 대해 전혀 압박하지 않고 아이에게 맞춰 주는 편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집을 나가는 자식을 앞에 두고 부모는 입시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대학으로 귀결되는 결말에 숨이 막혀왔다. 비교적 젊은 나이의 내가 못 미더웠던 것일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의사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이 위선으로 들렸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해도 요지부동인 그녀.

작은 체구의 어머니는 만날 때마다 점점 더 견고하고 거대해져서 진료실을 꽉 채웠다. 마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노련한 승부사 같은 느낌이었다.

의사로서의 나의 능력에 의심이 점점 커질 무렵이었다. 면담이 약속된 날 아이는 오지 않았고 어머니만 왔다. 이 시간에는 도저히 뺄 수 없는 학원을 갔다고 했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를 늘어놓으며 앞으로는 학원 시간 때문에 규칙적인 상담도 어렵다고 어머니가 말하는 순간, 나는 어머니의 카운터파트에서 쫒겨나 체스판의 말로 전락했다.

아, 아이도 이런 느낌을 받았겠구나. 주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답답함. 누군가의 의지로만 움직여지는 불쾌함.

그래서 아이는 게임에 몰두했구나. 내가 전략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는 게임 속에서의 삶. 게임을 할 때는 내내 긴장이 고조되다가 해소되는 순간의 짜릿함이 있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 목적지를 향해 달리지 못하고 꽉 막힌 고속도로에 계속 서 있다가 잠시 들른 휴게소 같은 곳이 아이에게는 게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잠시 쉬어가는 정도는 괜찮아도 자해하는 방식의 이탈은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하는 이 치료는 한계가 있다. 나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진료의뢰서를 썼다. 부디 나보다 더 유능하고 연륜 있는 선생님을 만나 아이가 다시 적당한 속도로 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어머니가 진료실을 떠나고 난 뒤 나는 멍하니 있었다. 지금 나는 환자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기권을 선언한 것이 아닐까. 그 이후 한동안 열패감에 시달렸다.

공부 잘 하는 아이를 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리 엄마는 매번 나의 인생에 개입했다. 그때마다 나는 정색을 하며 맞섰다. 어쩌면 나는 혼자서도 이만큼 잘해낼 수 있다고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했고 조촐한 가정이 생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배우자와 함께 구축한 이 세계에서 먹고 자고 입는 것을 해내려고 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못 이기는 척 엄마가 주기적으로 공수하는 반찬을 받고 있다.

모유 수유하는 딸을 위해 엄마는 며칠에 걸쳐 신경을 써서 장을 보고, 새벽에 반찬을 만들어서 반찬통에 종류별로 차곡차곡 담은 후 따뜻한 상태로 딸네 집에 가져다준다. 그렇게 독립을 외쳤던 내가, 이 반찬을 잘 먹어야 우리 아이한테 좋은 영양분이 가겠지 하며 매번 엄마의 반찬통을 맛있게 비워낸다.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나, 그리고 그런 나에게 고생하더라도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

젖을 먹는 아이는 빈틈없이 나와 밀착되어 있다. 부모로부터 잠시라도 분리되면 생존이 불가능한 아이도 언젠가는 나에게서 독립할 날이 올 것이다. 대체 부모 자식 사이의 독립이란 무엇일까, 아니 완전한 독립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러면서 몇 년 전의 그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한다. 전업주부인 그 어머니는 왜 아이를 하나만 낳았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아이를 낳고 나서는 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어머니에게 매번 좋은 성적을 받아오는 그 아이는 어떤 존재인지.

왜 이런 것을 나는 그때 그 어머니에게 물어봐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정답만을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되풀이했던 과거의 나.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어렵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된 현재의 나.

깨달음은 늦게 오고 후회는 동반된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 후회스러운 지점은 누구나 있다. 나는 잘 몰랐고 미숙했기에 넘어져 울 수밖에 없었던 지점을, 내 자식은 무사히 통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라면 안 들 수가 없다. 그러기에 부모의 잔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때로 없어야 할 강압이, 고성이, 충돌이 동반된다.

상담하는 동안 내가 의사로서 그 어머니에게 했던 이야기는 내가 딸로서 나의 엄마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왜 그냥 지켜봐주지 않는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기회를 줄 수는 없는지, 혼자 할 수 있는데 왜 번번이 간섭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어머니에게 듣지 못했던 이야기는 아마도 나의 엄마의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어머니에게도 나의 엄마에게도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 나 또한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진료실에서 만날 모든 어머니로부터 온 마음을 다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

수상소감 성혜윤 정신과전문의

육아를 하는 시간은 제 인생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롭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예전과 똑같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의사로서도 엄마로서도 어느 쪽으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소식은 그런 저에게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었고, 앞으로 의업에 복귀해서도 예전만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격려이자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직 어려서 엄마가 상을 받은 것도 모르는 아이와 좌충우돌하며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남편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수필의 시작이 되었던 어머니께 늘 감사하고 죄송하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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