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현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열 명 중 세 명은 결국 안구를 적출합니다.”

나는 아이들의 눈에 생기는 암인 망막모세포종을 진료한다. 이만 명이 태어나면 한 명에서 생기는 병이다 보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보통 열다섯 명 남짓의 환자가 발생한다. 저마다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눈 속에 하얀 점이 보여서 오기도 하고, 사시로 알고 지내다 병원을 찾기도 한다. 소위 ‘큰 병원’인 대학병원을 찾은 부모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이의 눈 속에 덩어리가 있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인터넷에서 잔뜩 글을 읽은 터다. 눈에 암이 있으면 안구를 통째로 들어내는 안구적출술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이미 알고 있다. 평균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생후 일이 년 내에 망막모세포종이 진단되는데, 어느 부모가 그 어린아이의 눈을 잃을 수 있다는데 걱정이 없을 수 있을까 싶다.

요즈음에는 열 명이 망막모세포종으로 진단되면 한 명의 부모가 안구적출술을 첫 치료로 결정한다. 삼십 년 전에는 달랐다. 그때는 열 명 중 여덟 아이의 부모가 수술을 선택했다. 이제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으로는 항암 치료가 있다. 항암 치료를 결정하면 일단 몇 개월간 치료를 받을 때는 안구적출술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마냥 선택을 미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항암제에 듣지 않는 새로운 종양이 생길 때 다시 드러난다. 한두 번은 항암제를 바꿔볼 수 있지만, 결국에 더 쓸 약이 없어지면 안구적출술을 할 수밖에 없다. 약에 듣지 않는 암이 눈 밖으로 전이되면 눈을 잃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도 보호자도 다시 첫 선택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수술을 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랬다면 수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받느라 아이가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받았던 항암 치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현대 의학의 기초는 근거중심의학이다. 임상 연구를 통해 과학적인 근거를 찾고, 그에 따라 의학적 판단을 내린다. 망막모세포종에서도 이전의 연구를 통해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다. 영어 알파벳으로 A부터 E까지 질환의 중증도를 나누게 되는데, 좋은 쪽에 속하는 A 병기의 경우 치료를 하였을 때 안구적출술을 하지 않고 눈을 지킬 확률이 90%가 넘는다.

반면에, 나쁜 쪽에 속하는 E 병기의 경우에는 50%가 채 안 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A 병기의 경우에도 10% 정도의 아이들은 종양이 재발하고 항암 치료에 실패해서 결국에는 안구적출술을 받게 된다. 오히려 처음에는 기운이 빠지는 진단을 받았던 E 병기의 종양을 가진 아이 중 반은 안구를 지키는데 말이다.

외래 진료실에서 눈 검진을 하고, 입원하여 전신마취 하에 다시 검진을 하고, MRI (자기공명 영상)까지 찍고 나면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오른쪽 눈에만 있는 E 병기의 망막모세포종을 가진 아이라고 하면, 치료를 잘 마쳤을 때 안구를 지킬 확률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50%이다. 마침 망막의 중심부를 침범하고 있어 시력 예후는 굉장히 불량하다. 빛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아빠와 엄마를 옆에 앉혀 두고 컴퓨터 모니터에 검사를 하나씩 보여주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돌이 갓 지난 여자아이는 검사를 위한 금식에 지쳐 짜증내며 울기만 한다. 울음소리를 뚫고 눈을 잃어버리더라도 아이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지만, ‘딸 바보’인 아빠는 듣지 않는 투다. 그의 눈에는 반도 안 차 있는 물컵이 아니라, 반이나 차 있는 물컵이 보일 것이다. 항암 치료를 하면 그 예쁜 눈을 지킬 수 있는데, 안구적출술을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딱히 보호자를 마음 약하다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50%의 확률인 상황에서 하는 선택에는 사실 확실한 결정을 이끌어낼 근거가 없다. 동전 던지기나 홀짝 맞추기처럼 본인의 선택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판은 판돈이 좀 크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눈이 걸려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밤새 뒤척이며 고민을 해도 선택의 순간에는 주저하게 된다. 울음도 터져 나오고, 누구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원망도 가득하다. 안구적출술은 선택을 하기 전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단순하다. 결막을 절개하고, 눈 주위의 근육을 자르고, 시신경을 자르고, 동그란 안구 보형물을 넣고, 다시 결막을 꿰매면 끝이다. 물론 중간중간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그 일은 의사의 몫이니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누구는 항암 치료를 하기 싫어서, 누구는 눈을 잃게 하기가 싫어서, 각자의 선택을 하게 될 뿐이다. 동전을 던졌고, 자신이 보았다고 믿기로 한 면을 따라 선택을 한다. 앞면이 맞는지 뒷면이 맞는지를 아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 무기력함이 나는 처음부터 싫었다. 안과 전공의 1년 차 때, 유독 이름을 바꾼 아이들이 많았다. 한 달마다 입원을 하는 터라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이름이 달라진 아이들. 어린 나이에 암에 걸린 아이의 운을 바꿔주고 싶은 어느 어른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망막모세포종은 운이 나빠 생긴 병이 아니라, 무작위로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원인이다. 그것까지 운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엎지른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일어난 유전자 변이를 이름을 바꾼다고 돌릴 수가 없다. 부모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법원에 가면 할 수 있는 이름 바꾸기라도 한 것이겠지. 세상에 던져진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없으니.

50%의 확률은 동전 던지기이지만, 그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이 된다. MRI에도 초음파 검사에도 잡히지 않는 1 밀리미터도 안 되는 작은 종양을 발견해서 레이저로 없애는 것이 우선의 급선무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뛰어난 의사는 누구인지 알 수 없겠으나, 마음만 먹으면 가장 열심히 들여다보는 의사가 될 수는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처럼, 나는 여기에 속하였으니 내 몫의 일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의 부모 옆에 있는 나의 존재가 그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 때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조금 길게 생각하면,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만든 약으로 우리 아이들을 치료해야만 하는 것일까?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고민은 의사와 보호자 모두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약을 우리가 만들고 우리 아이들에게 처음 사용할 수도 있을까? 이 지점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의사인 의사-과학자가 필요한 순간이다.

세포 실험하고 생쥐 실험하면서 보냈던 사람들이 어느 한두 질환에 푹 빠져서 그 질환만 생각하며 지내다 보면 새로운 돌파구가 반드시 열린다. 현대 의학의 역사에는 그러한 사례가 꽤 많다. 앞으로도 무수히 반복될 것이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기 싫어 안과 의사가 되기로 선택했다. 그런데, 안과 의사로는 유일하게 아이가 죽는 것을 일이 년에 한 번씩 봐야 하는 망막모세포종을 보는 의사가 되었다.

우는 아이는 밉지만 아이의 빛나는 눈이 예뻐서 아이의 눈을 보는 소아안과 의사가 되었는데, 일 년에 열 개의 눈을 적출하는 의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망막모세포종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십여 년 전 내가 선택한 연구하는 의사의 길.

다소 치기 어린 마음에 한 그 선택이 나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다. 아이들의 부모가 했던 선택이 그랬듯, 내 선택에도 함께해 줄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너무 늦지 않게 새로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이 아이들과 부모에게 더 높은 확률의 근거가 되었으면.

수상소감 조동현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했던 고민을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또 감사합니다. 다만, 수상 소식을 듣고 글을 읽어 보니, 역시 부끄럽기만 합니다.

보호자들이나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만한 부분이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글에도 쓴 것처럼 엎지른 물을 담기는 어려우니 창피함도 민망함도 감당해야 하겠지요.

저는 일주일에 의사로 사는 시간이 열 시간 정도 됩니다. 외래를 세 시간씩 화요일, 금요일 오전에 보고, 목요일 오후에는 수술실에서 3-4시간 정도 눈 검사를 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하고 실험하면서 과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 연구를 하고 있는데, 별다른 재주도 없이 의사-과학자의 길로 뛰어들어 때로는 고민도 됩니다.

더 많은 분이 이 길을 선택하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또, 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한두 개의 질환을 마음에 두고 쭉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는 결국에 그 질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망막모세포종 열심히 진료하고 열심히 연구하면서 살겠습니다. 투박한 제 글에 담긴 그 마음을 알아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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