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 프로젝트 참여자 인터뷰 ①
"의료 사태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전공의 진심 전달되길"

응급실. "드물게 생명이 태어나기도 하고 대다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자 "아파서, 급해서, 시간이 늦어서, 걱정돼서" 찾는 곳이다. 수많은 삶이 오가고 "수많은 이야기가 지나간다."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 건너편에는 자살을 시도한 자녀를 죽게 두라며 분노하는 부모가 있다. 쓰러진 노인이 업혀 오는 사이로 행려 환자가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연이 스쳐 가는 곳을 변함없이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 응급의학과 의사다. "다양한 질환을 접할 수 있어서, 온오프(근무시간)가 명확해서, 환자와 많이 대화할 수 있어서, 응급실이 좋아서" 이곳에 왔다. 환자를 위해 감히 "전설의 명의"를 꿈꾸고 기꺼이 "인생 최악의 순간 만나는 의사"를 자처한다.

"누군가를 살려냈지만 끝내 살리지 못한 순간도 있었어요. 감사 인사를 받다가도 멱살 잡히기도 해요. 기쁠 때도 있지만 억울한 날도 많아요(익명)."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 4월 15일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을 발간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 4월 15일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을 발간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이 발간 한 달을 맞았다. 사직한 전공의 등 응급의학과 의사 54명이 참여했다. 대형서점 입점 전부터 의료계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 1쇄 5,000부를 완판했다. 책은 의료진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청년의사는 대한응급의학의사회를 통해 프로젝트 운영진과 작가 11명을 만나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응급의학의사회를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본격화된 건 지난 3월이다. 책 발행일은 4월 15일. 불과 한 달 만에 원고를 모아 350장 두께 단행본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한 김상훈 운영위원장(전문의)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뭉쳤으니까 나올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응급의학과 사람들이 성격 급하거든요. 일 생기면 빨리빨리 해결해야 하는 성미에요. 대부분 글 써 본 적도 없고 책 만들어 본 적은 더더욱 없는 사람들인데 출판사 개설 신고니 ISBN 번호 발급이니 하나하나 독파하듯 해나갔죠. 꼭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 치료할 때처럼요. 응급실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원고 교정과 검수, 제작까지 모두 직접 했다. 인쇄소에서 받은 가제본 오탈자를 검수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전공의 7명으로 꾸린 편집부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 꼼꼼히 들여다봤다. 의사에게 익숙한 글을 넘어 일반 독자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작가들과 소통하며 의학 용어는 풀어쓰고 복잡한 의학적 상황도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다.

글의 '수위'도 편집부가 신경 쓴 부분이다. 정부 필수의료 정책이 빚은 의료 사태 한가운데 모집한 원고였다. 작가진 대부분 사직한 전공의다. 여기에 응급의학과는 연이어 벌어진 무차별 폭력 사건과 소송전에 지쳐 있었다. 편집부 S팀장은 자칫 "'나쁜 일'만 다루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고 털어놨다.

"제가 일하는 곳이지만 응급실은 사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이 벌어져요. 처음에는 나쁜 일을 다룬 원고가 더 많이 들어오리라 예상하고 조율할 방법을 고민했죠. 막상 받아보니 비판과 감동 사이 딱 적절한 지점에서 원고가 어우러지더라고요. 작가님들이 절묘하게 중심을 잡아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대부분 휴대폰 메모나 일기 외 글은 처음 써보는 '신인' 작가진이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체득한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며 '출판 팁'을 모으던 전공의들도 이제 갓 나온 책이 "꼭 내 새끼 같아서" 단 한 명이라도 더 알아주고 읽어주면 좋은 출판인이 됐다. 그래서 이 책이 "이번 의료 사태를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응급실 의사의 진심을 건네는 책(김상훈 위원장)"이자 "내가 사랑하는 응급실이 받아 온 오해를 해소하고 괴리감을 줄이는 책(S 팀장)"이 되길 바란다.

(출처: 게티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응급실 의사의 삶은 다사다난하다. 기적의 명의가 되기도 하지만 저승사자로 불리거나 "인생 최악의 순간 만나는 의사"이기도 하다('인생 최악의 순간에 만나게 되는 응급실 의사', 보문산 메아리). 자해로 실려온 자녀를 '죽게 두라'는 부모에게 "그래도 살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어느 설날 이야기', 전호).

때로는 환자, 때로는 보호자로서 응급실을 찾은 기억을 되짚으며 더 나은 의사가 되겠노라 다짐하기도 한다. 병든 부모를 모시니 "다리가 후들거리는" 보호자가 되고 "(의사로서) 겪은 수많은 상황이 내 안에서 하나하나 되살아나" 회한의 눈물을 애써 삼키기도 한다('그렇게 우리는 응급실에서', 데네브).

'소아응급센터의 VIP'의 작가 익명(필명)은 평범한 아버지로서 코로나19 시기 자녀의 투병 경험을 적었다. "감염병과 사투, 소송의 위험, 밤낮이 바뀌는 삶"에도 굳건했던 결심은 아픈 아이를 둔 보호자 처지가 되자 "처음으로 응급의학과 선택을 후회"할 정도로 흔들린다. 이전에는 "발열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환아를 응급실에 데려오는 것도, 열을 떨어뜨리고자 주사를 요청하는 보호자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던" 의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내 아이가 아프니까 비로소 보호자의 걱정과 다급함이 온전히 이해됐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는 '이 정도는 응급실에 오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런 점이 걱정돼서 오셨군요'라고 헤아리는 의사가 되고자 합니다."

한편, 소아 중증 환자의 전원을 풀어낸 '전설의 명의가 될 수는 없더라도'의 작가 반짝별(필명)은 긴 시간 말없이 기다린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응급실에 급한 환자가 오면 의료진은 물론이고 응급실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고생을 나눠요. 환자도 마찬가지죠. 그날도 이 환자가 전원하느라 다른 아기 환자들이 3~4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어요. 상황을 설명해 드리니 보호자 분들이 다 이해하고 기다려주셨어요. 그렇게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전부터 글 쓰는 일을 마음에 품어온 그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의료 사태 장기화 속에 "화를 내거나 술자리 한탄 같은 이야기"를 풀 수도 있지만 "응급실이 좋아서 응급의학과에 온 마음"을 독자에게 더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엄청나게 특별한 마음을 가진 다른 존재"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도 했다.

"응급실 사람들 평범해요. 매일매일 곁에 머물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처럼 보통의 사람이죠. 누구나 그렇듯 주어진 상황에 늘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를 바라요. 안 되면 낙담했다가도 내일을 보며 하던 일을 계속 해 나가요. 언젠가 마주한 응급실 의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응급실을 선택한 전공의 그리고 지금도 응급실을 지키는 모든 의료진이 같은 마음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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