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 교수(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

세노바메이트는 우리나라 회사인 SK바이오팜에서 개발한 항발작약물이다. 난치성 국소뇌전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국제적으로 시행된 2상, 3상 임상시험을 통해 미국에서 2019년 11월, 유럽에서 2021년 3월에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 임상시험 연구들에서 정확한 숫자는 확실치 않지만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 150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난치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발작 조절 효과와 높은 무발작 비율로 뇌전증의 치료에 있어 게임체인저, 돌파구로 기대를 받고 있는 약물이다. 사적인 의견이지만 몇몇 미국이나 유럽 의사들에게서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확인을 위해서는 세노바메이트는 반드시 사용해 봐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허경 교수(사진 제공: 세브란스병원)
허경 교수(사진 제공: 세브란스병원)

이런 효과를 반영하듯이 2023년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매출은 2,708억원으로 전년대비 60.1% 증가했다. 세노바메이트는 2021년 매출 782억원을 기록했고 2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한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세노바메이트는 사용 가능하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국내 도입에 대해 최근에 개발된 몇 가지 항발작약물들을 소개 하자면 독일에서 개발한 라코사마이드는 2008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승인 뒤 2010년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낮은 수가로 회사가 동의하지 않아 비급여로 사용돼 높은 약가 때문에 실제 매우 소수의 뇌전증 환자에서만 사용됐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철수하고 국내 회사에서 제네릭으로 2016년에 허가를 받아 이 시점 이후에나 실제 처방될 수 있었다.

일본에서 개발한 페람파넬은 2012년 미국과 유럽에서, 2015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승인받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약가 협상 뒤 쓰이고 있다. 벨기에에서 개발한 브리바라세탐은 2016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를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에 허가를 받았으나 심평원과 약가가 타결되지 않아 현재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약물이다. 결국 특허가 끝나는 시점인 2026년에나 제네릭으로 출시될 가능성이 높다.

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구조 약물로 쓰는 디아제팜 직장 젤, 미다졸람 비강 스프레이, 디아제팜 비강 스프레이 등은 외국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저약가 정책으로 외국계 회사들이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추구와 의료 비용의 증가를 고려할 때 저수가 정책을 정부가 펼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가를 무조건 내려서 책정하는 것은 코리아패싱을 증가시킬 것이다. 양질의 치료를 통한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정부의 매우 중요한 역할인데 이런 정책만을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코리아패싱을 적게 하기 위한 약가의 인상을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역량 밖이다.

실제 약물의 사용 가능은 차치하고서라도 상기한 것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인가받고 보통 2~3년 사이에 우리나라에 신약을 신청하게 된다. 그러나 SK바이오팜은 2019년과 2021년 미국과 유럽에서 인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약 허가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SK바이오팜은 "당사는 인허가나 마케팅 등 국내 출시를 위한 인력이나 조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세노바메이트 도입 지연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큰 시장인 미국은 SK바이오팜이 직접하면서 우리나라는 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으니 조직을 만드는 것은 이익 면에서 회사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이 문제를 고려 한다고 할지라도 판권을 국내 회사에 미리 이전했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회사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2024년 1월에서야 세노바메이트의 국내 판권을 이전 받은 동아ST의 향후 계획은 2025년 중반 식약처에 신약 허가 신청을 한다는 것인데, 식약처 심사 기간, 심평원의 약가 협상 시간, 개별 병원 도입 시간을 고려하면 순조로울 경우에도 미국과는 7년, 유럽과는 6년이 넘는 시간 차를 두고 2027년 말에나 우리나라 의사들이 세노바메이트를 처방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들도 그때야 세노바메이트를 복용할 수 있을 것이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의 국내 도입 지연에 대해 "국내의 약가 체계나 수가 등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세노바메이트의 약가는 하루 대략 5만원 이상에 이르고, SK바이오팜이 다른 회사에 판권을 넘긴 유럽에서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가가 미국 약가보다는 저렴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에 현재 가장 약가가 높은 항발작약물은 단독 약물로 고용량을 사용하는 경우 하루 3,500원 정도이다.

약물 개발을 위해 큰 비용을 들인 회사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저약가로 책정돼 초기에 판매하게 된다면 기존의 사용 가능한 혹은 앞으로 도입될 다른 나라들의 약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의 “온정”, “인심”이나 “배려”의 자세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도입 지연이 소수의 환자의 이익 보다 회사의 이익을 통해 국익에 더 도움될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생각으로 이해하면 될까… 참 애달픈 얘기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도 일정 부분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들이 참여해 인가를 받는데 일조했고, 우리나라 굴지의 회사에서 개발된 약물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도 심정적으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SK바이오팜과 보건복지부에 오랜 동안 세노바메이트의 도입을 위해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를 통해서, 혹은 개인적으로 대화를 해왔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세노바메이트의 신속한 도입을 위한 회사의 조치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듣지 못했고 적극적인 정부의 중재 노력을 볼 수 없었다.

내세우는 이유는 회사 쪽에서는 신약 신청을 담당할만한 인력이나 조직이 없었고 추가 임상시험이 끝나야 한다고 하고, 정부 쪽에서는 사기업의 일이니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받은 약물이 국내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고, 후자도 국민의 건강에 큰 책임이 있는 정부가 가져야 할 태도도 아니라고 본다.

회사 입장에서 세노바메이트의 도입이 늦어지는 실질적 이유는 저약가 문제로 인한 손해와 자국의 뇌전증 환자를 위하는 마음의 부족(미국 허가 시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유럽처럼 판권을 빨리 넘기지 않고 지연시켜 우리나라에서는 2024년 1월에나 판권 이전한 것으로 알 수 있다)일 것이고, 정부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약물 때문에 사기업에 압력을 준다는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SK바이오팜 및 동아ST의 세노바메이트의 신속한 도입을 위한 빠른 조치와, 정부의 신속한 중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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