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의사회장이 본 의료현안 ① 의정갈등
황규석(서울)·이승희(제주)·이주병(충남)·최운창(전남)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은 16개 시도의사회장을 차례로 만나 의료 현안과 의대 정원 증원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은 16개 시도의사회장을 차례로 만나 의료 현안과 의대 정원 증원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의정 갈등이 출구 없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정부 의대 정원 증원 등 필수의료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지 100일이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 전면 재검토와 함께 정부와 동등한 위치에서 필수의료 정책을 논할 기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2,000명 증원만큼은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은 16개 시도의사회 회장을 만나 의료 현안과 의대 정원 증원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면과 서면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각 의사회 회장은 지역 상황에 비춰 현재 의정 갈등과 필수·지역의료 해법을 제시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 제주특별자치도의사회 이승희 회장, 충청남도의사회 이주병 회장, 전라남도의사회 최운창 회장이 질문에 답했다(인터뷰 진행 순).

-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로 의·정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를 타개할 해법이 있을까.

황규석: 의료 문제는 지금 선후가 바뀌었다.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손 보고 건강보험 이외 재정으로 필수의료를 지원하고 선한 의도로 행한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를 강화하면 필수의료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다. 그러면 의대 정원을 증원할 이유도 없다.

이승희: 제주도는 5개 의료기관이 응급의학과를 설치하고 총 41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다.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응해 도내 응급의료체계나 육지 병원과 전원·회송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수도권과 달리 급여 수준이나 생활 여건이 좋지 않아 섬으로 들어오는 의사 수가 적다. 3차 병원이 없어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에도 한계가 있다. 필수의료 수가를 보장하고 각종 위험에 대해 국가가 보장해야 보다 나은 의료체계를 만들 수 있다.

이주병: 지역 의료 문제는 의대 정원이 아니라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유지·운영할 유인책이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다. 충남도 천안이나 당진, 서산처럼 대기업이 들어선 도시는 인구도 유입되고 의료기관도 늘고 있다. 지자체가 기업 유치를 위해 편의를 제공하듯 지역의료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방세 감면 등 세제 혜택과 공공기숙사 건립 같은 직원 고용 방안을 지원해야 한다. 막연하게 의대생만 늘리고 '슈바이처 박사'를 외치며 인술만 주장해선 안 된다.

최운창: 의정 대립이 계속되면 승자 없이 모두 패배하는 싸움이 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내년 정원은 우선 동결하고 공식적인 협의체를 구성해 국민 누구나 납득하는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청년의사).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청년의사).

- 정부 의료 정책에 반대해 사직한 전공의를 위해 시도의사회 차원에서 고려 중인 지원책이 있다면.

황규석: 국가 공권력이 의사회 자금 흐름은 물론 변호사까지 참고인 조사하는 형편이다. 직접 지원보다는 현명한 대안을 찾고 있다. 전문과·대학별 동문회를 통한 지원을 장려하려 한다. 투쟁 기금의 경우 모든 전공의에게 일률적으로 분배하기보다는 정말 경제 형편이 어려운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쓰겠다.

이승희: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다양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예측도 어려워지는 만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할 생각이다. 반환된 투쟁 기금은 사직 전공의 대표들과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제주도의사회에서 자체적으로 모은 성금도 있다. 이를 함께 활용할 생각이다.

이주병: 학부 때 받은 학자금 대출 이자도 내기 버겁거나 육아 비용으로 힘들어하는 전공의들이 많다. 그러나 정부가 각종 트집 잡기에 불법이라면서 지원을 방해하는 상황이라 우리도 지원한다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전공의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합법적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

최운창: 사태 초반부터 의대생·전공의 대표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거의 모든 전공의를 대상으로 법률·재정 지원을 준비 중이다. 만일 사태가 여기서 더 길어지면 광주·전남 지역 의료기관과 사직 전공의를 연계하는 취업 알선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그때까지 사태가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의사회가 배분받은 투쟁 기금은 지역 내 4개 수련병원에 전액 지급했다. 전공의 대표들이 이 중 일부를 다시 의대에 기부했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낌없는 후배 사랑을 실천한 전공의들에게 감사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사회 이승희 회장(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
제주특별자치도의사회 이승희 회장(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

- 의협은 의사 정치 세력화를 강조하고 있다. 시도의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황규석: 각 지역 정치인과 개별 접촉이 제일 중요하다. 의사가 만드는 의사만을 위한 정당은 오히려 의사를 고립시킨다. 어떤 형태로든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서울시의사회는 의료기관 노조 설립 관련 헌법 소원도 검토하고 있다. 의료기관 당연지정제 아래서 의사는 사실상 국가가 고용한 피고용인 위치 아닌가. 노조 설립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면 당연지정제를 풀어줘야 법리에 맞다. 이런 부분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승희: 간호법에 이어 이번 의대 정원 증원 사태로 정치력 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회원이 느꼈을 것이다. 제주도의사회 차원에서도 지역 정치인과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이주병: 의협이 10년 넘게 정치 세력화를 외쳤지만 가시적 성과는 거의 못 냈다. 선거철에 의사 회원과 그 가족 숫자를 강조하는 '티켓 파워'는 정치 세력화로서는 매우 추상적이고 허구에 불과한 방법이다. 실제 당선자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10만원 정치후원금조차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시도의사회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정치후원금 납부부터 강조해야 한다.

대정부·국회 활동에서 국회의원을 만나고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법안을 만들고 의료 정책을 추진하는 각 당과 의원실 보좌관과의 정책 토론을 추천한다. 그런 교류가 정책적 연대감으로 이어진다. 신뢰가 쌓여야 정책에서 충돌해도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회무보다 잿밥에 관심인 이들이 제법 많다. 그저 사진 찍고 정치 경력을 위해 국회를 드나들면 안 된다.

최운창: 평소 국회의원과 소통하고 후원으로 아군이 돼야 한다. 기회가 되면 직접 출마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 지역에서 의협 전임 회장이 출마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교사 삼아 정치 세력화에 더 노력해야 한다.

충청남도의사회 이주병 회장(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
충청남도의사회 이주병 회장(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

- 새로 출범한 42대 임현택 의협 집행부에 대한 기대나 조언은.

황규석: 의협 집행부와 16개 시도의사회 회장단 소통이 더 원활해지길 바란다.

이승희: 집행부에 젊고 의욕 있는 임원이 많다. 굳이 조언하지 않아도 현안에 슬기롭게 대처하리라 믿는다. 제주도의사회는 의협 집행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한 목소리 내고자 협력하겠다.

이주병: 업적을 남기겠다고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메시아는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날 수 없다. 회원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아가길 바란다.

최운창: 어느 집행부보다 강력한 투쟁을 표방했다. 늘 회원만을 위해 존재하는 강력한 의협이 되길 바란다. 가는 길이 옳고 정당하다면 전남도의사회 모든 회원은 신임 회장을 강력히 지지하겠다.

전라남도의사회 최운창 회장(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
전라남도의사회 최운창 회장(사진 제공: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

- 마지막으로 회원에게 한 마디.

황규석: 회장을 위한 의사회가 되지 않고 회원을 위한 결과물을 어떤 형태로든 보여드리겠다. 서울시의사회장으로서 우리 젊은 의사들이 받은 상처를 보듬고 국민의 따뜻한 시선을 되찾는 데 일조하겠다.

이승희: 의사회는 회원 관심을 받아야 성장한다. 회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의사회는 도태된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주병: 의료 현안에 관심 가져달라. 하루 10분 만이라도 의료 전문지 헤드라인을 살펴보면 좋겠다. 이게 시작이다.

최운창: 초유의 의료 농단 사태에 의사는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내몰렸다. 우리가 하나 돼 권리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최강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견고히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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