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익 서울의대 명예교수

전공의 근무이탈이 의대정원 증가로 촉발된 의료사태를 크게 확대시켰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에 있는 전공의들이 한국의료와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모든 관련 사항을 시시콜콜 법령으로 완벽하게(?) 제도화해 운영하고 있는 전문의 수련제도에 빈틈이 있는 것인가. 법령으로 제도를 경화시켜 의료사회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사항이 쌓인 결과인가. 한국의료의 장래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불안이 원인인가. 미래에 대한 불안 문제는 논외로 하고 현행 전문의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전문의제도를 개선하지 않고는 한국의료의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한익 서울의대 명예교수
조한익 서울의대 명예교수

전문의제도는 본래 의사집단에서 추가적인 훈련을 받은 동료의사의 능력을 평가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의사면허를 취득해 의사가 되면 원칙적으로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전문의 자격증이 추가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수많은 의료 행위 중에서 의사가 배움 과정에서 습득하지 못한 의술을 시행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특정분야를 추가로 수련 받아 그 능력이 향상됐음을 동료의사들이 인정하고 의료기관에서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모아 진료하도록 하는 것이 전문의제도의 기본 틀이다.

이런 바탕 위에 수련 분야와 기간, 수련기관, 수련 내용, 수련지도전문의, 전문의시험과 전문의 자격인정 등등 수많은 관련사항에 관한 지침이 마련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70여 년간 많은 내용이 법령과 정부 규칙 그리고 각 전문 의학학술단체의 내부 규정 등으로 마련돼 이들에 따라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전문의 제도는 의원 명칭에 대한 지침으로부터 시작됐다. 일반의사는 ‘ㅇㅇ의원’ 특정분야 훈련(?) 경력이 인정되면 ‘김ㅇㅇ내과의원’ 등으로 의사들을 행정적으로 등급화 하는데 전문의 제도를 활용했다. 전문의제도의 기본 성격에 맞지 않게 규제를 위한 제도로 활용되면서 전문의를 의사위의 고급 인력으로 오해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상당부분이 법령으로 정해져 딱딱하게 경화된 전문의제도가 의료 환경의 변화에 제때에 대처하지 못했다. 일부 전문 분야에 비정상적인 수요 폭발과 의료 인력의 쏠림 현상, 반대로 필수 의료 분야 인력 고갈과 의료기관의 소멸 등에 전문의 제도가 대처할 수 없어 의료의 왜곡 등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전문의제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흐물흐물하게 운영해 물 같이 필요한 부분에 전문 인력을 그때그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의료법에 ‘전문의’라는 단어 하나만 남기고 모든 법령에서 전문의 제도에 대한 규정을 모두 삭제하고 대한의학회와 산하 전문 학술단체 그리고 수련기관에 전공의 수련 등 전문의 제도 운영을 위임해야 한다. 전공의 관련 사항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 유례가 드문 복지부장관이 주는 전문의 자격증 대신에 전문학회 회장과 전문의 인증위원회 위원장이 공동으로 서명한 자격증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전문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살리는 방법이다.

둘째로 너무 세분화된 의학 전문 분야 사이의 철벽을 헐어 수련과정에서 타과 인정기준, 북수 전문의 제도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되돌아보면 1960년대 외과에서 흉부외과 등 외과계열 전문 분야가 분리 탄생될 때 사용한 방법이 그 시대에 필요로 하는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해 유연하게 전문의 제도를 운영했었다.

셋째로 전공의 수련기관, 수련 내용, 수련기간 등에 대한 학술단체의 규정을 최소화하고 수련기관장과 수련담당교수 지도전문의 등이 재량으로 전문의 시험응시자격을 확인하도록 위임해야 한다. 전문의 응시자격 등은 수련기관이 책임지고 전문학회는 수련기관을 도와 수련 내용의 질을 점검하고 전문의시험을 통해 수련 성과를 평가한다.

즉 현행 전문의 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는 의사면허를 관리하는데 집중하고 전문의 제도는 민간에 과감히 위임해야 한다. 전공의의 수련 내용이나 근무환경 등도 각 전문분야 담당학회와 의료기관이 소통 협력해 개선토록 하고 정부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정부 보건정책상 특정 전문의의 수요가 있으면 의료기관에 수련비용을 지급하면서 전공의 수련을 위탁하면 된다.

대한의학회와 학술단체를 신뢰할 수 있는가. 각 전문 분야가 자기 분야 전문의의 회소가치를 높이고자 산아제한(?) 같은 시도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지난 몇 십 년을 되돌아보면 우려되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학계도 현재는 구성원이나 운영 면에서 의학 수준만큼이나 성숙돼 전문의 수요공급을 환경변화에 맞게 적정선에서 운영할 수 있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전문의 제도를 산만하게 운영하면 의료의 질이 저하될 수 있지 않은가. 의료의 질 관리는 사전에 시설이나 인력에 대한 규정을 만드는 것 보다 사후관리 평가로 되먹임해서 유지토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체로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사전조치를 강화하는 규정을 만드는 데는 열심이지만 사후관리제계가 미흡하다. 의료의 질은 시설 인력 등 조건보다 운영에 달려 있다. 사전 조치는 효과도 의문이고 필요 없는 비용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의료의 질 향상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특정전문의 만이 특정 의료행위를 하도록 만든 규정 때문에 각 분야 전문의 수의 적정성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고 필요 없는 의료비용을 높이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돼야 할 것은 면허를 가진 의사는 능력이 있으면 모든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전문의는 특정분야의 의료행위를 추가로 수련했음을 동료의사들로부터 인정받은 의사이다. 의사가 전문의 자격이 없어도 근무하는 의료기관의 진료 책임 의사들에 의해 수련 경력과 능력이 인정되면 특정분야의 의료행위를 수행하는데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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